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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컨슈머에 고개숙인 은행원
민원 접수되면 해당 지점 인사고과에 악영향
일각 "당국의 무리한 민원 줄이기 정책"
2016-03-17 15:19:00 2016-03-17 15:19:00
[뉴스토마토 김형석기자] #서울의 한 은행 영업지점에 근무하는 김모씨(44)는 요즘 '블랙컨슈머'(악성민원) 때문에 골머리를 썩고 있다. 때로는 직원에게 상품이나 경품을 요구하기도 한다. 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본사나 금융감독원에 신고를 한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
 
하지만 직원들은 이에 적절히 대응할 수 없다. 본사나 금감원에 신고가 들어가면 해당 지점에 낮은 인사고과가 매겨지기 때문이다.
 
17일 은행권에 따르면 시중은행들은 분쟁조정 신청 등 소비자가 금감원에 신고가 접수되거나 본사에 신고가 접수되면 해당 영업점 직원의 핵심성과지표(KPI)에서 낮은 점수를 매긴다.
 
KPI란 지점장과 직원의 성과평가 기준을 말한다. 그 결과가 인사고과, 성과급 산정, 포상 등에 활용된다. KPI 점수가 낮으면 그만큼 승진과 연봉에 악영향을 미친다.
 
이에 일각에서는 은행들이 최근 늘어나는 민원을 줄이는 일선 직원을 희생시키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최근 몇년간 금감원에 접수된 분쟁조정 신청 건수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은행연합회가 발표한 지난해 금감원에 접수된 은행권 분쟁조정 신청 건수는 2189건이다. 이는 지난 2012년(1544건)보다 41% 증가했다.
 
은행별로는 우리은행(000030)이 431건으로 16개 은행 중 가장 많았다. 이어 국민은행(378건), 농협(322건), 신한(286건), KEB하나(172건), SC은행(161건), 기업은행(024110)(148건), 씨티은행(126건) 순이었다.
 
하지만 이 통계에는 허수가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일부 블랙컨슈머가 민원을 중복해 접수하기 때문이다.
 
우리은행의 경우 지난해 431건 중 한 고객이 상속관련 내용으로 136건의 민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SC은행도 161건의 민원 중 신규는 60건에 불과했다. 나머지 100여건은 중복민원인 셈이다.
 
금감원은 또한 올해 하반기부터 적용될 소비자보호 강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이 방안에는 금융회사의 민원·분쟁 유발 등에 대한 금전적 책임(감독분담금)을 부과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에 은행들은 자체적으로 민원을 감축하기 위한 시스템 정비에 나서고 있다. 상품 판매 등 전 과정에 걸쳐 평가 범위를 확대하고 민원과 불완전판매 담당 부서에 대한 교육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블랙컨슈머 대응에 대해서는 여전히 미흡하다.
 
은행권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블랙컨슈머에 대응보다는 민원줄이기에 치중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금융기관 간의 공동대응책을 마련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민원줄이기에 나서면서 은행직원들이 블랙컨슈머에 대한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한 은행 영업점에서 직원이 고객을 응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김형석 기자 khs8404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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