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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권 사장"전기 안전 사각지대 없애려면 전기안전관리법 꼭 필요"
취임 2년만에 전기화재 점유율 4% 줄여…"전기산업진흥과 안전은 별개로 관리"
2016-04-06 15:35:17 2016-04-06 15:35:47
[뉴스토마토 이해곤기자] 집에서 쉬고 있던 저녁 갑자기 정전이 됐다. 이유도 모른채 갑갑한 어둠 속에서 몇 시간이 흘렀다. 겨우 전기가 들어왔지만 그 사이 냉장고 속 몇몇 음식들은 상해버렸고, 처리해야 했던 급한 업무들에는 손도 대지 못했다. 늦어버린 일처리로 이곳저곳 양해 전화를 돌린 뒤 상한 음식을 치우고 나자 '내가 왜 이런 고생을 해야 하나'하고 화가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이에 대해 하소연을 할 곳이 딱히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서 받은 피해는 누가 보상해주나' 하는 궁금증도 생겼지만 이내 울분을 혼자 삭혀야 했다. 
 
"지금은 소비자가 전기 관련 정전이나 화재로 피해를 입어도 대부분 그냥 넘어갑니다. 이에 대한 손해배상 절차가 너무 까다롭고 힘들기 때문이죠. 소비자가 피해 정도와 원인을 규명해야 하고 공급자가 인정하지 않으면 소송까지 진행해야 하는데 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이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전기안전관리법'입니다."
 
이상권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은 <뉴스토마토>와의 인터뷰에서  '전기안전관리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법조인으로 시작해 18대 국회의원을 거쳐 한국전기안전공사의 수장으로 취임한지 2주년을 맞은 이 사장은 법조인 출신답게 국민들을 위한 새로운 법 제정에 힘쓰고 있다. 
 
흔히 말하는 '낙하산 인사'라는 꼬리표가 붙을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현장에서 발로 뛰는 그의 모습을 보면 그런 말을 쉽게 꺼내기 힘들다. "낙하산이 뭘 알겠냐고 얕보던 이들도 최근에는 전기안전공사가 체질이 아니냐는 말까지 하더군요" 취임 2주년을 맞이한 이 사장의 이 말에서 그가 그 동안 전기안전에 대해 얼마나 큰 관심을 가졌는지 알 수 있었다. 
 
-이제 취임 2주년을 맞았다. 전기화재의 비중이 크게 줄었다.
 
2년 동안 가장 역점을 뒀던 부분이기도 하다. 취임 당시 전기화재 점유율은 21.7%였다. 모든 화재에서 전기가 원인인 것이 10건 가운데 2건에 달했다. 이 수치를 1년이 지나서 19.7%로 줄였다. 2%포인트를 낮춘 것이다. 이후 지난해 또 다시 17.5%까지 낮췄다. 전기안전공사가 1974년 문을 연 이래 42년 동안 10% 가량을 줄였는데 이 가운데 4.2%포인트를 2년 만에 줄였다. 
 
-매우 큰 성과로 보인다. 비결은 무엇인가.
 
전기 화재의 원인은 합선과 발열, 부주의 등인데 이를 막기 위해 정말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했다. 일례로 계량기 관련 사고를 모두 수집해 분석했다. 업체별 계량기를 모두 분석해 이 결과를 한전에 알려줬다. 문제점이 있는 제품은 개선되기 전까지 사용하지 말라는 권고도 덧붙였다. 가전제품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전기제품은 필수적으로 열이 발생하는데 이 부분이 바닥 접촉면과 가까운지, 발열재를 사용했는지 등을 우리 연구원에서 분석하고 통계를 만든다. 이러한 통계가 모두 모이면 화재 예방 정책을 수립하는 기초가 된다. 단순 통계는 의미가 없다. 이를 바탕으로 예방까지 이어져야 한다. 또 다른 부분은 부실검사를 없애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허위 진단이 밝혀지면 단순 징계가 아닌 중징계에 처했다.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경우에는 안전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전기화재 예방에도 많은 힘을 쏟았고 지금은 '전기안전관리법' 제정에 힘쓰고 있다.
 
현행 전기사업법은 사업자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법이다. 즉 전력산업 진흥을 위해 제정됐고 운영 중이다. 전기사업법 74조에 겨우 전기재해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전기안전공사를 둔다고만 명시돼 있다. 국민 안전을 위해서는 국민들, 전기 소비자를 위한 새로운 법 체계가 필요하다. 사업자 중심의 법으로는 안전규제를 제대로 지켜갈 수 없다.
 
-자세한 내용은 무엇인가.
 
가장 먼저 소비자 피해 구제 부분이다. 소비자가 전기로 인한 손해를 입을 경우 입증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 어떤 경우는 의료사고 보다 더 전문적이고 힘든 부분이 있다. 그래서 손해배상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거의 없다. 때문에 전기전문가, 법률가, 소비자단체 등 각계 전문가들로 구성된 '전기사고 피해중재위원회'를 만들고자 한다. 소비자들이 이곳에 사고 중재를 신청만 하면 원인을 밝히고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할 수 있다. 피해액에 대한 기준도 만들 수 있고, 합의와 중재가 수월해진다.
 
국가의 책무도 새롭게 규정돼야 한다. 현행법으로만 따지면 국가가 안전관리에 대해서는 계획을 세울 의무가 없다. 이를 명확히 해야 한다. 특히 변화해가는 전기산업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전기안전관리법은 꼭 필요하다. 전기를 직접 생산하고 판매하는 프로슈머를 비롯해 에너지를 스스로 해결하는 에너지제로빌딩, 에너지자립섬 등도 늘어나고 있다. 이 경우 전기 안전 관리 주체가 모호해진다. 전기안전의 사작지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의 전기사업법에는 전기 안전에 관한 정책 수립에 대한 내용이 없다. 
 
-전기안전관리법의 필요성은 정말 큰 것 같다.
 
19대 국회에서 처리가 안된 것은 전기안전공사의 권한 확대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런 부분들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전기안전공사의 권한과 관련한 부분을 대폭 수정했다. 아예 없앴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소비자의 권리, 국가의 책임 규정, 사각지대 해소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번 20대 국회가 구성되면 6월에 법안을 제출할 계획이다.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와도 정말 오랜 기간 논의를 거쳐왔다.
 
-공공기관이면서도 수익에 연연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본(本)경영을 시행하고 있다. 기본에 충실하자는 의미다. 전기안전공사는 전기재해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다. 수익을 내기 위한 기관이라는 말은 어느 곳에도 없다. 준정부 기관으로 기본 업무가 수익사업에 밀리면 안된다. 기본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면 존재의 의미가 없다. 
 
-하지만 기술 수출을 비롯한 성과도 꽤 있는 것으로 안다.
 
기본 업무에 충실하면 수익은 자연적으로 따라온다. 전기안전공사는 안전관리대행업, 안전진단업이 주 수익원이다. 예전엔 독점이었지만 지금은 민간과 경쟁하고 있다. 국민 안전을 위해 전기안전관리에 대한 기술력을 높여갈수록 신뢰도는 높아지고 자연스럽게 수익도 늘어나고 있다. 기술력이 높아져 해외 수출도 이뤄졌다. 지난해 11월 베트남에서는 우리 기술력과 시스템이 도입된 전기안전법 개정이 이뤄졌다. 이 말은 전기안전공사가 베트남 정부를 대신해 안전 검사를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베트남을 시작으로 아시아 진출도 가능할 것이다. 또 카타르 정부가 발주한 진단용역 사업 입찰에서도 프랑스의 알스톰, 독일의 지멘스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경쟁을 했다. 입찰 금액을 절반으로 줄인 알스톰에게 사업을 내줬지만 성공보다 휼륭한 실패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기술력이 세계에서도 인정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임기가 1년도 남지 않았다. 꼭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임기 안에 전기안전관리법을 제정하고 전기화재 점유율을 15%까지 낮추는 것 두 가지다. 현실적으로 점유율 15%가 되면 그 밑으로는 정말 내려가기 힘들다. 15%가 되면 지금 방식으로 할 수 있는 최저 수치라고 볼 수 있다. 앞으로는 ICT 기반 상시 원격 감시 시스템과 빅데이터 기반 관리 등을 통해 선진시스템으로 가야 한다. 올해 관련 연구를 계속 진행하고 있다. 

대담=권순철 경제부장
정리=이해곤 기자 pinvol1973@etomato.com
 
 
이상권 한국전기안전공사 사장이 지난 1일 서울 광화문에서 뉴스토마토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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