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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우리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오류
2017-01-18 08:00:00 2017-01-18 08:00:00
전재경
서울대 글로벌환경경영전공 겸임교수
우리 사회는 술김에 저지른 잘못에 대해 관대하다. 술이나 약물에 취해 멍해지는 것을 '명정상태'라고 부르는데, 흐리멍텅해진 의식과 달리 겉으로는 멀쩡하다. 당사자는 잠이 들지 않은 상태에서 몇 시간이고 평소 습관대로 직무를 수행한다. 하지만 나중에 그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다. 예컨대 술 취한 사람은 명정상태에서 자기 집을 곧잘 찾아가지만, 다음 날 자기가 집에 언제 어떻게 왔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그 사람이 집에 가는 동안 절대 잠들지 않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명정상태에서 저지른 잘못에 대해 사회는 관대하지만 법은 그렇지 않다. 명정상태에서 범한 행위야 고의가 없었겠지만, 술이나 마약에 취한 행위는 본인의 선택에 따른 것이므로 법은 명정상태의 원인(음주나 마약 복용·주사)을 처벌한다. 이를 '원인에서 자유로운 행위'라고 규정한다. 자율의사에 따라 술이나 마약에 취할 것을 선택했으니 법은 그 원인에 대하여 책임을 묻는다. 우리는 '원인에서 자유로운 행위' 때문에 패가망신하는 사례를 세계 도처에서 자주 본다.

명정상태는 술이나 마약 등의 물질로 인해 초래되지만, 특정 이데올로기 즉 관념 때문에 정상적인 언행을 못하고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들도 있다. 확신범은 '양날의 칼'처럼 본인의 신념이 잘못된 경우도 있고, 그를 비난하는 사회가 잘못된 경우도 있다. 서울 도심에서 촛불을 밝히면서 저항권을 행사하는 사람들과 이에 맞서 태극기를 흔드는 사람들은 서로 '잘못한다'고 비난한다. 누가 잘못하는가는 역사가의 몫이다.

다른 한편 지도층 인사들 중에는 사회적 비난이 두려워 '겉 다르고 속 다른' 이율배반의 행로를 걷는 사람들이 있다. '양고기를 내걸고 뒤에서 개고기를 파는' 상술, 즉 양두구육(羊頭狗肉)도 명정상태나 확신범 못지않게 사회를 망가뜨린다. 양두구육에 대해서는 문화의 격차가 있다. 이혼과 외도 사이를 고민하는 사례가 그렇다. 영국의 헨리 8세는 외도 대신에 아들을 낳지 못한 왕비들을 내쫓거나 단두대로 보냈다. 이슬람 문화에서는 외도라는 개념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명정상태나 확신범 또는 이율배반도 아니면서 이기주의나 조직의 논리 또는 타성에 젖어 오류를 범하는 아전인수도 흔하다. 나치시대 히틀러 일당이 유대인들을 학살하는 것에 묵인 또는 동조한 사람들도 같은 유형에 속한다. 아전인수에 익숙한 사람들은 "내 논에 물을 대겠다"는 주관적인 목적을 합리화시키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논에도 물을 대야 한다는 객관적인 진실을 무시한다. 이러한 사례는 입법이나 행정에서 종종 발견된다.

농토를 두고는 행정기관의 아전인수가 눈에 거슬린다. 한국사회는 '농자천하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관념 덕분에 예부터 농지는 특별한 지위를 누렸다. 산업과 무역환경이 변모해 오랫동안 쌀값이 제자리를 걷고 농사를 지어도 이익이 나지 않는 한계농지가 점차 늘어감에도, 농지불가침의 원칙이 추상같아서 농지법은 비농업인의 농지 소유를 엄격하게 제한한다. 그러나 식생활의 변화와 고령화 등으로 인구가 감소하는 농업농촌의 현실에 당면하면서 정책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일본은 6차 산업화를 추진했고 우리나라도 이를 도입했다.

부재지주(관외지주)를 경계하고 토착 농업인에 의한 영농을 강조하지만, 농사지을 인구는 점차 줄어든다. '농지은행'과 같은 제도는 농지불가침의 원칙을 우회해 측면으로 돌파한다. 농지는 원래 인류가 원생상태의 자연을 개간하여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농지는 농부의 복지와 함께 야생생물들의 복지를 위하여 쓰일 수도 있다. 두루미로 유명한 일본의 이즈미(出水)가 그렇고 한국의 순천만이 그렇다.

강원도의 경우에는 경제자본이 부족하여 생태자원으로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룩할 것이 요청된다. 철원의 농민들은 두루미를 마스코트로 삼아 관광을 활성화시키고 싶어 한다. 두루미 서식지를 '야생생물 보호구역'이라는 규제로 묶는 것보다 논과 저수지를 두루미용으로 공여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두루미가 서식하는 논을 ‘두루미네 논’으로 공유화할 필요가 있다.

이 때문에 농지법은 자연환경자산을 보전하기 위한 '논의 공유화'(국민신탁)를 허용했다. 공유화되어도 영농은 계속된다. 그럼에도 강원도청은 "야생생물 보호구역에 사는 두루미만 '자연환경자산'이고 그 바깥에 사는 두루미는 자연환경자산이 아니다"는 논리로 공유화를 거부한다. 현지 농민들도 환영하는 사업을 강원도청은 외면한다. 관성에 젖어 법을 구부릴 일이 아니다.

전재경 서울대 글로벌환경경영전공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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