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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성년후견제, 저소득 노인·장애인 이용도 활성화 해야"
"후견신탁이 대안…재산사용 목적 특정하면 행위능력 제한 없이 효과"
"재산 분쟁에 너무 치중…사회적 약자 보호 공백"
2017-05-10 06:00:00 2017-05-10 06:00:00
[뉴스토마토 이우찬 기자] “내게 언제라도 치매가 올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서울가정법원 가사소년 전문법관 출신인 이현곤 변호사(48·사법연수원 29기)는 성년후견제의 활용 방안에 대해 이같이 답했다. 한국은 65세 이상 인구 10명 중 1명이 치매에 걸리는 사회다. 누구나 치매를 맞닥뜨릴 수 있는 ‘치매 위험사회’에서 더 이상 노후를 가족 구성원들에게 방치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성년후견제가 지난 2013년 7월 시행된 뒤 올해로 4년째를 맞았다. 지난해 접수된 후견사건은 1299건으로 2014년(768건)보다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수요는 늘어났다. 하지만 돌봐줄 가족이 없고 빈곤 사각지대에 있는 어르신이나 장애인들이 효과적으로 제도를 활용하기에 부족하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이 변호사를 만나 성년후견제의 현실을 짚어봤다.(편집자주)
 
-성년후견제 도입 4년이다. 어떻게 평가하나.
 
성년후견제에 대해 인식이 전반적으로 확대됐다. 시민들이 많이 접하게 됐고, 성년후견인제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이런 부분은 긍정적이다. 다른 부분에도 후견이 필요한 분들은 굉장히 많다. 예를 들어 치매 노인·발달장애인·정신지체 장애인 등이 성년후견제제 이용 대상자인데, 실제 이 가운데 제도를 이용하고 있는 사람은 소수다. 신격호 회장 사건은 전형적인 케이스 중 하나다. 노인들이 치매가 왔을 때 가족들 사이에 재산분쟁으로 이어지는 것은 굉장히 많다. 재벌이라 크게 보도된 건데 그 같은 사건들은 많다.
 
-최근 재산 다툼에 따른 성년후견인 사건이 급증하고 있다.
 
옛날에는 장남한테 재산을 미리 물려주고 장남이 부모를 모시고 살았다. 요즘에는 그렇지 않다. 수명이 늘어났고 자식들이 부모를 모시는 풍습도 거의 사라졌다. 노인들이 재산을 죽을 때까지 보유하려는 경향이 강해졌다. 미리 자식한테 재산을 물려주지 않는다. 문제는 그렇게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가 치매가 오면 벌어진다. 재산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진다. 가족들 사이에 그동안에는 부모의 뜻을 따르다가도 부모가 정신적으로 온전하지 못하게 되면 재산을 노리는 자식도 생긴다. 주인 없는 돈이 돼버리고 분쟁으로 이어진다. (기존 민법에 있었던) 금치산·한정치산제는 기본적으로 가족 내에서 문제를 해결하라는 제도다. 예전에는 가족 문제를 법으로 해결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측면이 많았다. 사회구조가 바뀌면서 가족이 더 이상 보호할 수 없는 개인주의 사회가 됐고, 후견제도가 필요할 수밖에 없게 됐다.
 
-유명 바이올리스트 유진박에 대해 최근 성년후견 심판이 시작됐다.
 
이 케이스가 굉장히 중요하다. 성년후견제가 처음 고안되고 입법을 시작할 때는 주로 발달장애를 가진 부모들이 생전에는 (자식을) 책임을 질 수 있는데 사망하면 누가 책임지느냐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됐다. 그런 분들의 염원이 모아져 입법이 됐다. 사건 대부분이 현재 치매 노인 사건이다. 발달장애인들이 이용하는 제도가 돼야 하는데 이 부분이 미흡하다. 법·제도가 그런 사람들 욕구를 잘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물론 치매 노인에 대해서는 당연히 후견제가 필요하다. 나아가 발달장애인과 지적장애인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게끔 기반을 닦아야 한다.
 
-일부 장애인단체는 성년후견제에 대해 부정적이다.
 
그렇다. 왜 권리능력·행위능력을 제한시키느냐는 거다. 이런 문제 때문에 발달장애인 대상으로는 특정후견에 치우쳐 있다. 특정후견의 문제는 잘못된 행위를 했을 때 (특정후견인이) 취소를 할 수 없다는 거다. 정신장애 등을 가진 사람을 휴대폰 이용 대출을 하도록 유인해 가입하게 했다면 취소시켜야 하는데 특정후견은 그렇게 할 수 없다. 장애인 인권과 관련해서는 한정후견·성년후견으로 가면 너무 사람의 행위능력을 제한한다고 보기 때문에 특정후견을 선택하게 되는 문제가 있다.
 
-발달장애인도 만족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후견신탁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부모가 재산을 물려줘도 관리를 할 수 없게 되면 아무 의미가 없다. 신탁제도는 신탁회사에서 재산을 보관해서 특정한 목적으로만 사용할 수 있게 한다. 이 제도를 활용하면 행위능력을 제한하지 않고도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 세월호 참사로 부모를 잃은 어린이에 대해 신탁 사건이 최근 있었다. 이 사건을 맡았는데, 미성년 후견제를 활용했다. 세월호 보상금이 나왔는데 후견인한테 함부로 맡길 수도 없어 신탁을 했다. 아이가 성년이 될 때까지 (은행이) 재산을 온전히 보전하면서 특정 목적으로만 사용할 수 있도록 계약을 맺었다.
 
2015년 6월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있는 서울가정법원 지하2층 청연재에서 법관 및 가사조사관, 금융기관 관계자, 전문가 후견인 등이 지난 2013년 도입된 '성년후견제'와 관련 현 제도를 개선 및 보완하기 위해 성년후견제도에 대한 간담회를 갖고 있다. 사진/뉴시스
 
-65세 이상 치매유병율이 10%에 이르는데.
 
한국처럼 고령화 속도가 빠른 나라가 없다. 노령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지금은 후견 사건이 너무 재산다툼 문제에 치중돼 있다. 실제 저소득층 치매 노인이나 이런 부분에도 후견이 이뤄져야 하는데 공백상태와 같다. 결국에는 정신장애인이나 재산관리 능력이 부족한 저소득층 노인분들이 후견제를 통해 도움을 받고 사회생활을 (원만히) 할 수 있게 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돈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재산으로 제도를 이용해야 하고, 돈이 없거나 부족한 사람들은 공적 부조로서 제도를 만들어 줘야 한다. 독거노인이 치매 노인이거나 정신장애를 가지고 있을 때 국가서 나오는 기초생활수급 연금이나 장애인연금조차도 누가 빼먹는 경우가 많다. 돈이 줄줄 새는 거다. 국가의 복지 재원 자금이 제대로 쓰이게 하기 위해 후견인이 필요한 것이다.
 
-성년후견인으로 지정된 자가 부정을 저지를 수 있다.
 
아직까지 국내는 제도 시행 얼마 안 돼 그런 사례가 나타난 것 같지는 않다. 일본에서는 후견인 횡령 사건이 종종 일어나고 있다. 후견인 부정행위를 방지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신탁이다. 재산을 은행 등 공적기관에 맡겨서 특정한 목적 외에는 재산을 처분하지 못 하도록 하는 것이다. 후견인 권한 범위에 대해 감독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가정법원 인력이 부족한데, 인력을 확대하거나 별도의 감독청을 만드는 등 대비해야 한다.
 
-성년후견제가 법률시장의 돌파구가 될 수 있나.
 
재산 관리가 복잡하거나 법적 분쟁이 있으면 변호사나 법무법인이 후견인으로 선임되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변호사시장에서 (수익 면에서) 도움이 될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다. 후견인 중 대부분은 가족이다. 보수의 문제다. 제삼자가 후견인으로 선임되면 후견인 보수를 본인이 지급해야 한다. 무한적 확대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본인 돌봐주는 가족을 후견인에서 배제하게 되면 본인한테 과연 얼마나 도움이 될까라는 문제도 있다. 무조건 제삼자를 후견인으로 하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적정한 균형은 있어야 하는데, 아직까지는 가족 후견이 많고 전문가 후견인은 너무 낮은 건 사실이다.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다. 공공후견인이 많이 지원돼야 하는데 국가 예산이 투입돼야 하는 문제다.
 
-선진국과 비교해 우리가 참고할 만한 사항은 무엇인가
 
독일에서 전문후견인은 국가에서 보조금을 지원받는다. 공공후견제도가 굉장히 발달했다. 일본은 한국보다 10년 정도 앞섰다. 일본은 지방자치단체, 지역 커뮤니티 위주로 후견 사업이 활성화 되고 있다. 한국은 사건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고령화 속도가 제일 빠르다. 전문후견인 제도가 많이 늘어날 필요가 있다. 지금 구조에서 예산이 투입되지 않으면 늘어나기는 어려워 보인다. 복지예산이 올바르게 적재적소에 이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 후견제도가 같이 병행돼야 한다. 쓸 떼 없는 비용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비장애인들은 라이프 생애 주기를 설계해야 한다. 자신도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치매가 올 수 있고, 내 의사를 마음대로 결정할 수 없는 때가 올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정신이 온전할 때 후견계약을 미리 설계할 필요가 있다.
 
이현곤 변호사. 사진/뉴스토마토
 
이우찬 기자 iamrainshin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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