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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이상이 대표 "세 모녀 사건, 본질은 작동하지 않는 사회보험 때문"
"증세, 정치인 개인 아닌 정당이 결단할 문제…저출산 문제, 실질적 복지로 해결 가능"
"사람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 돈 떨어질 일 없어야"
2017-05-12 06:00:00 2017-05-12 06:00:00
[뉴스토마토 김지영 기자]1990년대 말 의약분업 도입과 의료보험 통합에 앞장섰던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제주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위기감을 느꼈다. 두 정책에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의 반발이 심했고 의료계는 총파업에 응급실 문까지 닫던 상황이었다. 이에 이 대표는 여권의 ‘거물’들을 전부 찾아다녔지만 두 정책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보인 정치인을 없었다. 그러다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났다. 노 전 대통령을 도와 대선을 치룬 후 이 대표는 3년간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몸담았다. 건강보험연구원장으로 재직하면서 보장률을 50%에서 65%까지 끌어올리는 안을 밀어붙였다. 이후 이 대표는 복지국가소사이어티란 이름의 시민단체를 만들었다. 복지국가 건설을 목표로 정책적 제언을 하고, 시민들을 만나 설득하는 게 일이다. 이 대표에게 복지란 사람에 대한 투자고, 복지 없이는 성장도 불가능하다.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사진/이상이 대표 제공
이하 일문일답.
 
-우리나라에서 가장 취약한 복지 분야는 어디라고 보는지.
 
근본적으로 보편적 복지가 취약해 국민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 보편적 복지야말로 사람에 대한 보편적 투자다. 이게 이뤄져야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지고 경제가 성장한다. 경제가 성장하려면 자본과 노동이 필요하지 않느냐. 그래야 부가가치도 생산되고. 우리 사회에서 절실한 건 자본이 아니다. 10대 재벌 금고에만 560조원이 쌓여있다. 노동이 문제다. 창의성의 질이 떨어지고 노동자 다수가 사장되고 있다. 사람에 대한 투자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에 대한 투자가 바로 복지다. 복지투자 없는 성장, 분배가 없는 성장은 불가능하다.
 
-보편적 복지란 개념 자체가 너무 광범위하고 추상적이다.
 
핵심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난 소득 보장이고, 다른 하난 사회서비스 보장이다. 이 중 사회서비스 보장이 더 우선이라고 본다. 보육, 교육, 의료, 요양, 이 4대 서비스는 생애주기별로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국가가 모든 국민에 사실상 무상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이 분야의 질을 높이면 일자리도 많이 만들어진다. 또 사회안전망이 튼튼해져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떨어진다. 연대의 원리에 의해 보호받는다고 느끼기 때문에 창의적이고 도전적일 수 있게 된다.
 
-소득 보장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주머니에서 돈 떨어질 일이 없어야 한다. 그 핵심이 4대 사회보험이다. 소득이 단절될 때, 이를테면 고용보험은 실업 때, 국민연금은 은퇴 후에, 산재보험은 산업재해 때, 질병보험은 병에 들었을 때 국가가 소득을 보장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질병보험이 없고, 산재는 사각지대가 크다. 국민연금도 국민의 3분의 2는 못 받는다. 이 사각지대를 없애야 한다. 사회보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사회안전망이 무너진다.
 
-아직까진 사회보험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 같다.
 
송파 세 모녀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엄마가 식당일을 하다가 팔을 다쳐서 월 150만원 받던 일자리를 일었다. 기초생활수급, 건강보험료에 초점이 맞춰졌지만 본질은 고용보험이다. 고용보험만 작동했다면 구직급여를 통해 최소 생계가 가능했다. 그것도 안 되니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이런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국민연금은 보험료를 납부하는 국민이 전체의 50%도 안 된다. 20년 뒤에도 여전히 절반 이상은 연금을 못 받는다는 말이다. 사회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지금 먹고 살 것도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적어도 소득이 없거나 소득활동이 어려운 사람들에 대해선 정부가 대신 보험료를 내줘야 하지 않겠냐.
 
-그런데 복지든, 사회보험이든 확대하려면 돈이 든다. 증세와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한데.
 
정부와 국회도 같은 고민을 할 것이다. 단지 서로 미루고 있는 것이다. 누가 국민을 설득할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지 말이다. 방울을 달 리더십, 새 정치세력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정치체제가 개편돼야 한다. 정치인 개인의 결단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정당의 결단을 요구하는 상황이 돼야 한다. 뜻을 같이하는 정당이 많으면 그 정당들이 연합체를 구성해 입법을 추진하면 된다. 그 결과를 국민이 지지하면 다음 선거에서도 선택받을 것이다. OECD 평균 수준의 복지국가로 가자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음에도 해내지 못 한다면 민주주의의 희망이 없는 것이다.
 
-국민의 동의를 구하는 게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해낼 수 있다고 본다. 이미 그런 민심이 촛불과 함께 터져 나왔다. 촛불 민심의 본질은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에 대한 분노가 아니다. 그건 촉발시킨 계기고, 배후의 본질은 ‘이대론 안 되겠다’는 위기감이다. 외환위기 이후 20년간 신자유주의 체제가 빚어놓은 승자독식 격차사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터져 나온 것이다. 새 정권에 제2의 촛불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어떤 불의한 세력에 대한 심판이 아니라 포지티브하게 희망과 미래, 기대와 열망을 표현하기 위한 혁명이 될 것이다. 그 혁명이 새 정권에 용기를 줄 것이라고 본다.
 
-복지의 수준을 높이는 것만큼 사회서비스에 대한 정보의 격차를 줄이는 것도 시급해 보인다.
 
그 격차를 좁혀주는 게 사회복지 공무원들이다. 누구라도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동등해야 한다. 그게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시장에 맡기면 격차는 더 커진다. 공무원을 더 많이 뽑아야 한다. 가령 보건소에서 복지시책을 한다면 주로 중산층 학부모들이 이용한다. 철분제, 엄마카드 같은 선물을 나눠준다 하면 기밀하게 정보를 파악해 혜택을 누린다. 그런데 저소득층은 그런 게 있는지도 모른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안 해서다.
 
-그런데 공무원을 늘리는 데 대해선 여론이 부정적이다.
 
그 인식을 바꾸기 위해선 기업 간 임금격차와 복지격차를 좁혀야 한다. 우선 1980년대 대졸자들은 공무원을 안 했다. 공사장 일용직이 더 벌었다. 비정규직의 개념도 없었고 누구나 원하면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땐 대기업과 중소기업도 격차가 거의 없었다. 한 직급 정도 차이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인력 이동도 활발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게 불가능하다. 100대 80~90 정도 되던 대·중소기업 간 생산성 격차가 지금은 100대 40 수준이다. 복지격차도 심각하다. 공무원에 대한 박탈감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기업들이 제공하는 복지를 폐지하는 게 어떨까 생각한다. 그걸 정부가 제공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중소기업도 다닐만해지지 않겠나. 자본은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노동자의 양보를 받아내야 하는 문제다.
 
-우리나라의 낮은 출산율도 문제로 지적된다. 어쨌든 복지를 늘리려면 세금을 더 걷어야 하는데 경제활동이 가능한 인구는 점점 줄어들고 있으니.
 
복지로만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지금까진 생색내기용 복지 위주였기 때문에 실패했다. 실질적으로 아이를 낳고 기르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아동수당제도와 양질의 보편적 보육, 이거 두 가진 기본조건이다. 여기에 더해 일·가정 양립이 돼야 한다. 그러려면 기본적으로 양성평등 제도들이 확고히 뿌리를 내려야 한다. 출산휴가, 육아휴직을 엄마와 아빠가 함께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조차 고용보험 가입자만 혜택을 본다. 고용보험 틀 밖에선 가입이 여성에 대해 부모보험을 도입해야 한다. 노동정책도 필요하다. 여성이 원하면 일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돼야 하고 노동시간 단축, 비정규직 문제 해결도 필요하다. 사회구조 전반에서 복지국가로 전환돼야 한다. 어느 한 분야의 노력만으론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
 
-기본적으로 청년들이 행복하지 못 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 행복하다면 일도, 결혼도, 출산도 의욕적으로 하지 않겠나.
 
부모가 스스로 행복해야 아이를 낳을 생각을 한다. 짐승도 생육환경이 나빠지면 새끼를 안 낳는다. 가임기 부부가 행복한 조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승자독식의 시장만능주의 국가에서 복지국가로 가야 한다. 지난 10년간 우리나라는 고이즈미의 신자유주의 노선을 그대로 배워왔다. 그런데 일본에선 실패했다. 우리도 그 노선을 폐기할 조건이 돼있다고 본다. 이제 보수의 협력도 필요하다. 복지국가로 가려면 국민 60~70%의 공감과 지지가 있어야 한다. 독일의 메르켈, 프랑스의 공화당처럼 대한민국에도 건강한 보수, 합리적 보수가 자리를 잡아야 한다.
 
김지영 기자 jiyeong8506@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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