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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노학자의 일침 "재벌은 역사적 퇴행…반발 무너뜨릴 지금이 기회"
최정표 교수 "한국경제는 소수 대재벌의 인질…재벌개혁 없이 경제활성화 어려워"
"재벌개혁 적기, 문재인 대통령 '조급해하지 말라'
2017-05-23 13:29:27 2017-05-23 13:29:27
[뉴스토마토 최병호 기자] 최정표 건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정년을 한해 남겨둔 노학자다. 연구자의 길 30년간 시장의 독점과 재벌문제에 집중, 학계가 인정하는 이 분야의 최고 전문가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설립에 참여했고, 6년간 공정거래위원회 비상임위원을 지냈으며, 지난해에만 3권의 책을 썼다. 그가 2014년 쓴 '한국재벌사연구'는 재벌의 개념과 범주, 일제시대부터 최근까지 재벌의 변화 양상을 집중 조명한 것으로 유명하다. 지난 대선 때는 현실정치에 참여해 화제를 모았다. 문재인 싱크탱크인 '정책공감 국민성장' 경제분야 분과위원장을 맡아 재벌개혁의 밑그림을 그렸다. 과거 "정치인은 경제민주화에 나서지 않을 것이므로 그들을 믿어서는 안 된다"고 단정했던 그다. 하지만 최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과 새 정부에 거는 기대가 남다르다. 어쩌면 정치에 대한 희망보다 지난 국정농단 사태로 어느 때보다 재벌개혁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높아진 지금이야말로 재벌개혁의 적기이며, 때마침 등장한 민주정부가 반가운 것처럼 보였다. 최 교수는 새 정부에 고강도 재벌개혁을 주문하면서도 단기적인 성과에 연연하지 말라고 거듭 당부했다.

재벌개혁을 해야 하는 이유는.
 
이유는 많다. 가장 먼저 우리 경제 구조가 정상이 아니다. 소수 대재벌이 국가경제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경제력 집중이 심화되면서 양극화가 만연해졌다. 분배는 왜곡됐으며 경제의 역동성도 떨어졌다. 창업세대에 비해 경영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세습 총수들이 경영권을 물려받는 것도 문제다. 한국경제는 재벌이 주요 부문을 다 장악했다. 경제는 소수 대재벌의 인질이 됐다. 재벌개혁 없이는 경제활성화 자체가 어렵다.
 
재벌사도 봐야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시작으로 관치경제와 정경유착이 정착됐다. 당시에는 재벌의 존재, 정경유착이 필요했던 부분도 있다. 국가는 경제발전을 위해 자본을 축적해야 했고, 마침 창업세대는 경영능력을 어느 정도 갖췄었다. 그런데 이런 시스템이 50년간 국가를 지배한 게 문제다. '한국경제=재벌'이라는 등식을 깨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재벌을 개혁할 적기다. 삼성은 저항할 처지도 아니고, 전국경제인연합회도 힘이 없어졌다. 항공모함이 출진하면, 항공모함만 가는 게 아니라 이지스함도 있고 헬리콥터와 전투함도 가듯 재벌을 개혁하려면 종합적으로 동시에, 꼼짝 못하게 추진해야 한다.
 
최정표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사진/뉴스토마토
 
재벌을 개혁하면 대기업의 역동성이 떨어져 경제가 어려워진다는 반론도 있다.
 
무식한 소리다. 재벌이라는 것은 소수의 가문이 국가를 좌지우지하는 것이다. 재벌과 대기업은 다르다. 재벌의 핵심은 뭐냐. 황제경영과 세습이다. 미국과 일본에도 대기업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소유와 경영이 분리됐다. 우리나라는 재력을 세습하면서 황제경영을 하는 10개 이내의 가문이 국가 체제를 지배하는 게 문제다.
 
역사발전의 과정도 보자. 정치적으로는 세습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바뀌었다. 경제적으로 보면 미국도 100년 전에는 대기업들이 '록펠러' 등 재벌체제였다. 일본도 2차 대전까지는 그랬지만 전후 재벌이 해체됐고 전문경영인 체제로 변화했다. 한국은 선진국이 되겠다면서 경제영역에서는 3·4세 세습구조를 유지한다. 역사의 발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재벌의 지배구조와 경영투명성을 강화해서 경영자의 책임을 엄격하게 하면 자격 없는 3·4세 경영인들은 물러날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나라는 상속받은 총수라는 지위가 주는 프리미엄이 막강하다. 재벌 창업세대가 다 잘한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경영능력은 검증이 됐다. 그런데 그다음 세대로 갈수록 능력은 검증이 안 되고 혈연이라는 이유로 핵심 경제권을 '애들'이 물려받았다. 기업 사장들과 임직원들도 자기 능력은 제대로 발휘 못하고 오너 비위나 맞추면서 출세하고 있다. 이런 나라가 무슨 희망이 있겠나.
 
문재인 대통령의 재벌개혁 공약을 보면, 경제력 집중 완화와 지배구조 개선 등이 핵심이다. 조언을 하면서 가장 역점을 둔 사안은 무엇이었나.
 
재벌은 경제력 집중과 경제력 남용이 가장 큰 문제다. 재벌 문제를 고치려면 이 두 가지에 같이 접근해야 한다. 경제력 남용을 막는 것은 지배구조 개선과 상법개정안을 통해서 당장 가능하다. 하지만 경제력 집중을 줄이는 것은 다소 시간이 걸리고, 강력한 수단이 필요하다. 그게 '출자총액제한'과 '지주회사의 자회사 지분 의무소유비율 상향'이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에서부터 법인세 인상이 많이 거론됐는데, 법인세는 조세개혁 이슈지 재벌개혁과는 관련성이 적다. 법인세는 재벌만 국한된 게 아니라 모든 기업에 다 해당한다. 재벌개혁은 재벌에 적용되는 것으로만 접근해야 경제계의 저항이 적다. 
 
출자총액제한과 지주회사 규제뿐만 아니라 이번 정부의 재벌개혁 정책 중 차후에 꼭 됐으면 하는 것은, 상법개정안을 통해 감사위원 분리선출이나 집중투표·전자투표 의무화, 다중대표소송 도입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부분에서 재벌은 경영권 침해와 외국 투기자본을 우려하며 반대하고, 정치권에서도 일부 동조하는 의견이 나온다. 하지만 그게 재벌의 단골 메뉴고 로비 내용이다. 거기에 현혹되면 아무것도 못 한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역할을 강화하자는 목소리도 크다.
 
공정위의 역할과 권한은 당연히 강화해야 한다. 일단 조사국을 부활시켜야 한다. 사실 이명박정부에서는 공정위가 무슨 기관인지 관심도 없고, 기업하는데 불편한 일이 없게 하는 게 최우선 과제였다. 출자총액제한도 이명박정부 때 사라진 것 아닌가. 재벌과 중소기업의 하청거래를 바로 잡고, 그들의 우월적 지위 남용을 막아 경제를 정상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재벌의 부당 내부거래와 수의계약, 담합도 철폐해야 한다. 재벌의 지배구조 개선도 필요한데, 이것은 상법개정안으로 풀어야지 공정위가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결국 재벌개혁을 위해서는 법 개정과 함께 공정위의 정책 의지가 필요하다.
 
덧붙여 공정위의 기업집단 지정제도도 할 말이 많다. 1987년부터 제도를 시작했는데, 재벌의 저항에 굴복한 역사다. 과거에는 자산액으로 기업집단을 지정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상위 30대 기업집단만 지정했고, 또 나중에는 재벌의 반발이 심해지니까 '우리가 재벌 규제하는 게 아니다'고 보여주려고  한국전력 등 공기업까지 지정했다. 정책이 수시로 바뀌고 엉망이 됐다. 그래서 효과가 없었다. 차라리 10대 기업집단만 지정해야 한다. 공기업도 제외하고, 기업집단 중 포스코나 KT처럼 재벌가문이 없는 곳도 빼서, 재벌총수가 있는 10대 기업집단만 지정해서 제대로 해야 한다.

재벌과 중소기업의 관계와 관련해 중소벤처기업부 신설도 관심을 끈다.
 
그 부분도 굉장히 중요하다. 그간 역대 정부가 중소기업의 창업을 돕고 금융지원을 한다고 했지만, 중소기업이 재벌과 거래하는 관계에서 착취를 당했다. 결국 중소기업이 재벌의 횡포에서 벗어나게 하는 게 핵심이다. 한의학에 비유하면 급소를 다스리는 게 중요하다. 경제구조 전체를 보면서 중소기업을 전담해서 육성하고 지원하는 게 필요하다.

과거 "경제민주화를 정치인에 맡길 수 없다"는 취지로 말씀했다. 현 정부에 기대를 거는 이유는.
 
그간 재벌개혁이 안 된 이유는 세 가지다. 정치인의 의지가 없었고, 재벌의 저항이 컸고, 국민의 관심이 없었다. 정치인들은 선거 때 표만 얻으면 되니까 말로만 경제민주화를 외쳤지 실제로는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경제민주화에 대해 이해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도왔다. 실제로 취임사에도 그런 의지가 반영됐더라. 나는 문 대통령이 다른 분들과는 다르고, 앞서 말했든 이번에는 타이밍이 좋고, 촛불정신도 있다고 생각한다. 굉장히 유리한 조건이 형성됐다.
 
재벌의 저항도 있었는데, 그간 삼성이 정경유착을 했고, 전경련이 정치권을 압박했고, 재벌 광고비에 의존한 보수 언론도 반대했고, 재벌 돈 받는 로펌과 학자들도 거들었다. 이런 저항을 못 이기면 재벌개혁은 못한다. 국민들의 무관심도 문제다. 정치민주화와 달리 재벌개혁은 당장 국민에게 와 닿는 게 없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가계소득과 일자리가 늘면서 국민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 이번이야말로 그간의 반발을 무너뜨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이걸 놓치면 한동안 기회가 안 온다. 진짜 재벌들의 나라가 될 수 있다.

문재인정부의 재벌개혁은 어떻게 전망하나.
 
경제민주화나 재벌개혁이 당장 효과가 없을 수 있다. 재벌개혁만이 아니라 경제정책 자체가 원래 그렇다. 그렇더라도 정책의 필요성을 설득하고 효과를 호소해야 한다. 정부가 정책에서 초조해지기 시작하면 망한다. 문민정부가 그래서 실패했다.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하고 '신경제 100'일 정책을 했다. 거기에도 재벌개혁이 포함됐다.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하지만 개혁을 100일 만에 할 수 있나. 재벌이 '두고 보자' 하면서 투자를 안 하고 경기가 죽으니까 재벌총수 불러서 칼국수 먹고 백기 들었다. 그러면서 외환위기(IMF)가 왔다. 문민정부 초기 국민적 기대감으로 개혁을 완수했다면 우리 경제가 달라졌을 것이다. 내가 문 대통령께 드릴 말씀은 "조급해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람이 수술하면 아프고 회복기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수술하면 더 건강해진다. 아프고 회복기간이 느리다고 수술을 거부하면 안 된다. 재벌에 굴복하면 안 된다.
 
최정표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사진/뉴스토마토
 
최병호 기자 choib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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