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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정부, '국선변호 개혁'하려면 변호사들과 먼저 대화 나서야"
이율, 변협 공보이사 "변호권 보장문제, 국민복지 차원에서 접근을"
"형사공공변호인제도 반대 안 해…차제에 제도 전반 손 보자는 것
2017-06-30 06:00:00 2017-06-30 12:13:21
이율 대한변호사협회 공보이사. 사진/최기철 기자.
[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형사공공변호인제도 도입에는 이론이 있을 수 없습니다. 다만, 먼저 큰 틀을 제대로 마련하고 거기에 맞춰 제도를 시행하자는 겁니다.”
대한변호사협회 이율(55※사법연수원 25기) 공보이사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의 이른바 ‘변호처’ 신설 계획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이는 비단 이 변호사만의 의견이 아니다. 정부가 검찰청에 대응하는 ‘변호처’를 마련 중이라는 보도가 나오자 변호사들 대부분은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정책이라며 매우 우려했다. 법학자와 법조인들의 SNS상에서도 이 문제는 연일 토론거리가 됐다. 급기야 대한변협은 '변호처 설치' 반대 성명을 냈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국민들은 “변호사들이 또 제 밥그릇 챙기기에 나섰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러나 변호사들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진실은 무엇일까.
이 변호사는 "형사공공변호인제도를 포함한 국선변호 전반에 대한 개혁이 필요하다"며 정부에 논의의 장을 마련할 것을 제안했다. 그는 2009년부터 대한변협과 서울지방변호사회 회무를 맡아 일하면서 형사공공변호인제도를 포함한 국선변호 제도를 연구해온 인물이다.(편집자주)
 
우리 국민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보장받고 있다고 생각하나.
 
우리 헌법 제12조 제4항에서는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때에는 즉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다만, 형사피고인이 스스로 변호인을 구할 수 없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가 변호인을 붙인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형사소송법 제33조에서는 피고인이 미성년자일 때 등 일정한 경우에 필요적 국선변호인을 선정하도록 하고 있으며, 형사소송법 제214조의 2 제6항에서는 피의자의 구속적부심 사건에서 국선변호인을 선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현행 우리 법제는 원칙적으로 피고인의 경우에 국선변호인을 선정할 수 있고, 구속적부심 단계에서만 “피의자”에게 국선변호인을 선정할 수 있다. 구속적부심도 법원에 의한 재판이므로 결국 재판 단계에서만 국선변호인이 선임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한편 현재 법원에서는 일부 지방법원 3곳에서 소위 “One-Stop 국선변호인 제도”를 시범적으로 시행하고 있는데, 이는 경찰 수사 단계에서부터 국선변호인을 선임하여 공판까지 동일한 변호인이 변호를 하게 된다. 다만, 원스톱 국선변호인은 “구속된 피의자”의 경우에만 해당되므로 역시 “수사단계에서의 변호인의 조력을 받는 것”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
국선변호의 차원에서 말씀드리면 수사단계에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보장되어 있다고는 말하기 힘들다. 형사공공변호인 제도를 도입하면 경제적 이유로 변호인을 선임할 수 없는 피의자에게 수사단계에서부터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보장해주는 것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형사공공변호인제도'를 도입하면 변호사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 아닌가.
 
국정기획자문위는 “형사공공변호인제도는 현행 국선변호인 제도가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반성을 기초로 한다. 형사공공변호인제도가 정착되면 국선변호인은 사라지게 되는 게 논리적으로 맞다”고 밝혔다. 또 궁극적으로는 각 수사기관에 형사공공변호인을 배치한다고 하는데, 2015년 현재 전국 일선경찰서만 251개이다.. 여기에 광역지자체의 광역수사대, 각 지방검찰청, 지청 등을 포함하고 식약처, 세관 등의 특별사법경찰권을 행사하는 기관 등을 고려할 때, 각 수사기관에 복수의 형사공공변호인을 두게 되면 그 숫자는 엄청나다. 이런 점을 들어 변호사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변호사들의 일자리가 늘어나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국선변호인 제도(구속적부심, 국선전담변호사, 임의적 국선변호인, 법률구조공단을 통한 국선변호인 등)가 폐지됨에 따른 일자리 감축, 원래 사선 사건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었던 사건 수의 감소 등을 고려하면 형사공공변호인제도 도입이 곧바로 변호사들의 일자리 증가로 이어질 지는 의문이다.
 
제도 도입 반대를 두고 '밥그릇 지키기'라는 비판이 있다.
 
수사단계의 피의자들에 대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보장해 주는 방향에 대해서는 대한변협도 반대하지 않는다. 형사공공변호인제도 관리주체의 문제, 예산의 문제, 제도의 실효성 문제 등에 대한 우려가 있기 때문에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형사공공변호인제도'는 현재 각 지방변호사회에서 실시하고 있는 '형사당직변호사제도'와 일응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 어떤 차이가 있나.
 
형사당직변호사제도는 말 그대로 그날 그날의 당직 즉 당번 변호사를 지정해 연락을 받으면 출동하는 시스템이다. 즉, 1명 또는 2명의 제한된 변호사들이 활동하는 방법이다. 반면에 지금 정부에서 구상하고 있는 형사공공변호인제도는 각 수사기관별로 공공변호인을 전담시킨다는 것이다. 형사당직변호사제도를 큰 폭으로 확대 시행해야만 정부의 제도와 비슷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형사당직변호사제도를 전국 규모로 확대시행하기에는 인적, 물적 능력이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형사공공변호인제도'는 수사기관의 인권침해를 방지하자는 취지도 있다. 변협의 반대 이유 중에는 인권침해 방지는 수사기관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는 것도 있는데, 그동안 수사기관에게 맡겼던 인권침해 방지 노력이 미흡했기 때문에 '형사공공변호인제도' 도입이 필요한 것 아닌가.
 
수사기관의 인권침해 행위에 대한 개선 노력은 수사기관 스스로 해내야 한다. 수사기관은 그 속성상 피의자의 권리를 제약한다는 차원에서 인권침해의 소지가 높은 기관이다. 하지만 이러한 속성에 따른 현상을 그대로 용인해서는 안된다. 스스로의 개선 노력에 의해 개선이 가능하다면 노력해야 한다. 수사기관의 인권침해 방지 노력이 미흡하니까 이제는 외부에서 인권침해 방지를 하겠다는 발상은 반대로 이야기하면 “수사기관의 인권침해 행위”를 방치하겠다는 말과도 같다. 새 정부에서도 경찰에 대하여 인권침해 방지 방안을 가져오라고 했다. 경찰의 인권침해 방지 방안이 아직까지 나온게 하나도 없는데 대뜸 수사기관의 인권침해 방지를 위해 새로운 제도를 시행하겠다고 하니, 그것을 비판한 것이다.
 
그렇다면, 대한변협의 대안은 무엇인가.
 
일부 단편적이긴 하나 변협에서는 그동안 국선변호제도에 대해 연구해왔다.형사공공변호인제도의 본질은 국선변호제도이다. 차제에 여러 기관에서 담당하고 있는 국선변호제도, 공공변호인제도를 근본적으로 검토하고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언론 보도를 통해 최근 나온 정부의 형사공공변호인제도는 법률구조공단이나 법원 국선변호인 등과 영역도 겹치고 운영주체간 대립 가능성도 있다. 어떤 영역에서, 어떤 단계에, 어느 기관이 공적인 변호인을 서포트할 것인가, 이것이 먼저 논의해야 한다. 여기서 법률구조를 공급하는 주체는 변호사다. 그렇다면, 대한변협에서 주도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기본적이고 일관된 주장이다. 전체적으로, 체계적으로 국선변호 시스템을 재구성해야 한다.
거듭 말하지만, 형사공공변호인제도 도입에는 대한변협도 같은 생각이다.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필요성은 오히려 수사단계에서 더 절실하다. 핵심은 형사공공변호인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오로지 피의자·피고인들의 인권보장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자력의 유무에 따라 형사절차에서 소외되는 국민이 없어야 한다. 과거에는 국선변호제도를 피의자·피고인의 인권보장의 차원에서 바라봤다. 이제는 국선변호제도를 국민의 복지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국선변호제도를 왜 대한변협에서 관장해야 하나.
 
국선변호·국선전담변호·국선대리(헌법재판소) 제도를 누가 관장할 것인가는 입법정책의 문제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국선변호·국선전담변호 제도를 국가, 정확히는 법원이 관장하는 것은 “심판이 선수를 정하는 것”으로 표현되듯이 문제가 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오로지 피의자, 피고인을 위해서만 활동하기 위해서는 이 제도를 대한변협이 관장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대한변협은 국선변호제도를 운영할 능력이 있는가.
 
미국, 영국 등 형사공공변호인제도를 운용하는 국가, 독일, 일본 등 국선변호인제도를 운용하는 국가 모두 동 제도에 대해 국가의 재정적 지원이 뒷받침되고 있다. 특히 일본의 Law-Terrace(사법지원센터)의 경우 필요예산의 70% 정도를 정부지원금으로 충당하는데, 2012년의 국선변호운영비 지출액만 해도 154억 엔 정도에 이르고 현재는 그보다 훨씬 많다. 대한변협에서 국선변호·국선대리 제도를 운영할 경우 필연적으로 정부의 지원을 받게 될 것이므로, 인력·재정·설비 등 실질적인 운용능력은 충분히 갖출수 있다.
 
미국 등 다른 국가에서는 형사공공변호인제도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나.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형사공공변호인제도는 미국의 공공변호인제도(Public Defender System)와 매우 유사하다. 
미국의 경우 1963년 유명한 Gideon Vs. Washington 판결에 따라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중범죄(felony)까지 대상으로 확대되면서 변호인 선임을 요구받는 사건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러한 수요에 응하기 위해서는 형사 관련 법률에 정통한 변호사를 제공함과 동시에 그 비용도 적게 드는 제도의 필요성이 생겼다. 그 결과 많은 주에서 공공변호인제도(Public Defender Office)를 도입했다.
퍼블릭 디펜더(Public Defender)제도란 일정한 규모의 주나 도시에서 변호인을 선임할 경제적 능력이 없는 피의자·피고인을 위해 국선변호사건을 전담할 국가공무원의 신분을 가진 변호인을 두는 것을 말하는데, 퍼블릭 디펜더(PublicDefender)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변론행위를 하도록 지명되거나 선출된 공무원 또는 준공무원의 지위를 가지고, 국선변호업무에 전념해야 하고 개인적으로 사건을 수임해 처리하는 행위는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영국의 경우, 법률서비스위원회(Legal Services Commission. LSC)라는 영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비정부 공적단체가 있는데, 위원회에 소속된 직원 수가 1,800명이고, 전국에 15개 사무소를 가지고 있으며, 8개의 공적변호인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LSC 한 해 예산이 20억 파운드(한화 약 3조 7,600억 원)에 달하는데, 이 예산으로 위원회를 운영하면서 위원회와 법률구조계약을 체결한 변호사나 비영리단체에 예산을 지출하고 있다. LSCSMS 민사법률구조(Community Legal Services : CLS)와 형사법률구조(Criminal Defence Service)로 나누어 운영하고 있다. LSC는 피의자?피고인에 대한 형사법률구조의 유일한 재정관리기구로서 변호인 보수지급 등 비용지출을 관리하고 있는데, 형사법률구조에만 2004-2005년에 11억 9,200만 파운드(한화 약 2조 2,400억 원)를 지출하고, 150만 건의 형사법률구조를 제공했다. LSC는 의무변호사(duty solicitor)의 재정을 담당하고, 퍼블릭디펜더 사무소(Public Defender Offices : PDOs)를 운영하고 있다. 
그 외 대륙법계 국가인 독일, 일본의 경우에는 수사단계에서는 피의자에 대해 국가가 변호인 조력권을 지원하지 않고 있고 피고인에 대한 국선변호인제도만 운용하고 있다. 
 
정부와 대화의 장이 마련된다면 어떤 제안을 할 것인가.
 
정부의 일방적인 주도에 의한 제도의 도입은 지양되어야 한다. 국선변호인은 변호사이다. 그 동안 국선변호인제도 시행에 따른 여러 문제점이 노정되고 있다. 현장에서 뛰는 변호사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어야 한다.
대한변협은 이왕에 도입하기로 한 제도가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 처음부터 제대로 정착되기를 희망한다. 대한변협이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올바른 제도 정착을 위해 처음의 심정으로 제도 연구와 이를 토대로 한 공청회 등을 통해 가장 올바른 제도 시행 방안을 도출해 내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정부의 계획이 드러나면 그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협의를 해나갈 계획이다.
 
변호사 사무실이 밀집돼 있는 서울 서초동 법원 동문 앞 거리. 사진/뉴시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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