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피플)추경호 “선진 경제권 진입, 정치가 걸림돌 돼서는 안돼”
“저출산 고령화의 경제·사회적 함의 제대로 인식하고 정책에 반영해야”
“경제정책, 우리가 감당 할 수 있는지 고민 더 필요”
2017-09-01 06:00:00 2017-09-01 06:00:00
[뉴스토마토 한고은 기자] 자유한국당에서 경제 현안을 이야기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이름이 있다. 바로 추경호 의원이다. 만 33년의 공직생활 동안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기획재정부 1차관, 국무조정실장을 지낸 이력 덕에 초선 의원임에도 당내에서 손 꼽히는 정책통 의원으로 꼽힌다.
 
20대 국회의원 임기가 1년여 지난 시점, 수많은 정치적 소용돌이를 겪으며 많은 것들이 변했다. 당 이름부터 바뀌었다. 새누리당에서 자유한국당으로, 여당에서 야당으로 변했다. 당은 아직도 위기 수습 국면을 이어가고 있다.
 
반면 정부 여당은 높은 대통령 지지율을 바탕으로 ‘소득주도성장론’을 뒷받침하는 각종 경제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제1야당 의원으로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야당 간사로서, 조세소위 위원장으로서 정부 여당의 경제정책방향에 대한 추 의원의 생각을 들어봤다.
 
-20대 국회의원 임기 1년이 훌쩍 지났다. 그동안 소회가 있다면.
 
관료생활을 하면서 과연 국회가 일을 하느냐, 국가가 전진하는 데 과연 도움을 주는 집단인가라는 생각이 많았다. 실제로 정부에 있을 때 노동개혁, 규제개혁 등 개혁법안과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서비스산업발전법, 규제프리존법 등을 내놨다. 그런데 법안심사 소위원회에 가보면 다들 총론에는 공감하면서도 실현될 가능성이 없는 온갖 가설을 동원해 ‘이래서 문제 있다’, ‘저래서 문제 있다’ 논의만 하다 결국 ‘다음에 또 봅시다’ 하면서 정책을 지연시켰다.
 
서비스산업기본법 같은 경우는 의료 공공성 문제가 발목을 잡았는데 ‘여기 있는 분들이 과연 법을 읽어나 봤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의료 공공성을 저해할 수 있다는 막연한 상상으로 5년 동안 발목을 잡았다. ‘국회의 현주소가 이렇구나’하는 답답함을 느꼈었다. 그동안 여러 정치적 소용돌이가 있었고 많은 정치 장면들을 목격하며 현장의 한계도 경험했지만 처음에 가졌던 정치의 생산성 향상이라는 문제의식은 그대로 갖고 있다. 정치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라 유체이탈 화법을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치권이 우리나라가 선진 경제권으로 진입하는 데 걸림돌이 되기보다 오히려 이끌어갈 수 있는 정치가 되도록 기여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정부 여당에 대한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정부가 각종 경제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지난 정부에서 부족했던 부분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있고, 기왕에 집권했으니 잘하기를 기대했다. 그런데 일련의 정책을 쏟아내는 과정을 보며 걱정도 든다. 우선 정부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으로 접근한다. 자연스럽게 큰 정부를 지향하게 되고, 대표적인 것이 공무원 증원이었다. 예산안도 근래에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이고 최저임금 인상도 사상 최대폭으로 했을 뿐 아니라 이를 정부 재정으로 보전하겠다고 한다. 물론 현실적으로 여러 경제적, 사회적 어려움이 있으니 이를 해결해야 한다는 조급증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경제논리를 따르지 않고 정치적인 논리를 따라 ‘정부가 직접 해결하겠다’, 그것도 ‘세금으로 해결하겠다’는 사고방식이 문제다.
 
집권층의 뜻이 워낙 강하다 보니 제 기능을 해야 할 정부부처가 압도돼 제 목소리를 못 내고 있다. 지금은 인구고령화로 별도의 정책이 없어도 2030년, 2050년이 되면 열 사람이 내던 세금을 다섯 사람이, 세 사람이 내야 한다. 우리 경제가 동태적으로 감내 가능한 수준인지 제대로 고민하면서 정책을 펴야 한다.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이 30일 국회의원회관에서 <뉴스토마토>와의 인터뷰를 갖고 최근 경제현안에 대한 입장을 설명했다. 사진/뉴스토마토
 
-정부부처가 제 기능을 하지 못 하고 있다고 비판했는데.
 
단적으로 문재인정부 출범 전인 5월5일쯤으로 기억한다. 유일호 전 경제부총리가 반도체 수출을 중심으로 경기가 좋아졌기 때문에 추경은 필요 없다고 했다. 그런데 9일 선거 끝나고 며칠 뒤부터 정부가 추경 이야기를 시작했다. 법적인 추경 요건이 안 되면서도 추경을 편성했다. 정부 스탠스가 갑자기 바뀐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새로 온 경제팀 수장이 여러 상황을 보고 법인세 등 명목세율 인상은 필요 없다고 했다. 그런데 며칠 뒤 여당 대표가 세율 인상해야 한다고 하고 구체안을 발표하니까 확 뒤집어졌다. 경제전문가와 재정운용을 담당하는 정책가들이 정말 증세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구체적인 밑그림을 그려서 하는 게 아니라 정치권이 주도한다. 많은 사람들이 경제가 정치에 휘둘리고, 존재감이 없다고 걱정하는 이유다.
 
-29일 문재인정부 첫 예산안이 발표됐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큰 지출 증가율을 보였다.
 
전 정부가 돈을 쓸 줄 몰라서 안 쓴 게 아니다. 재정건전성을 굉장히 신경 썼다. 여러 사회, 안보 문제가 있었음에도 국가 신용등급을 최고 수준에 가깝게 유지한 배경도 재정건전성이었다. 지난해에도 당초 예상보다 더 많은 세입이 들어왔지만 쓰지 않았다. 2017년 예산을 편성할 때에도 경제 흐름에 비해 세입과 지출을 보수적으로 잡아 재정건전성을 건전하게 유지했다. 그렇게 들어온 초과세수를 추경으로 한 번 써먹고, 예산안 짜면서 써먹는 것이다.
 
-법인세율 인상이 올해 조세소위의 가장 큰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법인세 인상은 정말로 정부 여당이 다시 한 번 심사숙고해야 한다. 조금 더 직설적으로 인상안을 철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확장적 재정정책을 해야 하는 이유로 경제가 어렵다는 점을 드는데 왜 이를 정부 국고로 해결하려는지 모르겠다. 재정건전성을 어느 정도 지키면서 성장할 다른 방법 찾아야 한다.
 
결국 민간 영역이 활발하게 움직이도록 해야 하고, 중심축이 기업이다. 벌써 대기업, 중소기업 할 필요 없이 전부 국제경쟁에 노출돼 문을 닫느니 마느니 하는 판국이다. 특히 법인세는 사람에 대한 세금이 아니다. 삼성그룹 이건희에게 매기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기업에 연관된 주주, 근로자, 중소기업, 소비자 모두 관련이 돼있기 때문에 국민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제1야당의 기재위 간사로서 정부 여당의 경제정책과 관련 당부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
 
경제를 경제논리에 따라서 운영하고, 중장기적인 시계 하에서 국정운영을 했으면 한다. 저출산 고령화는 돌이킬 수 없는 기본 전제가 됐다. 다른 것들은 일 좀 더 열심히 해서 해결할 수 있는 숙제라면, 인구구조 문제는 다른 어떤 것으로도 치유할 수 없는 단계로 진입했다. 이 인구구조 문제가 갖는 경제적, 사회적 함의를 제대로 인식하고 정책에 임해줬으면 한다.
 
또 ‘포용적 성장론’이 이야기되기도 하지만 이는 소득분배를 통해서 성장하라는 게 아니다. 세계화, 정보화로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승자와 패자의 구분이 생기고 소득불평등도가 심해지면서 성장잠재력을 훼손할 수 있으니 이를 치유하면서 성장하라는 게 핵심이다.
 
소득주도성장이 바로 임금, 소득을 높여서 내수를 키우고 경제성장을 하자는 것 아닌가. 그 임금, 소득은 결국 기업으로부터 나오고, 그렇다면 기업이 이익을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민 세금으로 소득을 올린다는 것은 지속가능하지 않고 미래 세대에 부담을 넘기는 것이다.
 
한고은 기자 atninedec@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