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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공공기관이 개발자 직접채용? 중소 SI 파산선고"
새정부 출범에 기대반 우려반…갑을 관행과 열악한 근로환경, 아직도 왜?
"월화수목금금금…개발자 근로환경 개선 업계도 자정해야"
2017-09-12 12:47:43 2017-09-12 12:47:43
[뉴스토마토 박현준 기자] 월화수목금금금. 소프트웨어(SW) 개발자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을 빗댄 자조적인 표현이다. 그만큼 개발자들은 잦은 야근과 주말근무에 시달린다. 대기업에서 중견·중소기업으로 갈수록 그 정도는 심해진다. 갑-을-병-정으로 이어지는 수직적 하도급 체계다. 그나마 재하도급이 법으로 금지돼, 이젠 갑-을-병까지만 이어진다. 하지만 개발자들은 여전히 바뀐 게 없다고 입을 모은다.
 
문재인정부가 들어선 이후 시스템통합(SI) 업계는 두 가지 변화에 직면했다. 개발자 출신의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취임하면서 SI 업계의 고질적인 관행을 뜯어고치겠다고 나섰다. 과기정통부 담당자들과 업계 대표들로 이뤄진 태스크포스(TF)도 꾸려졌다. TF 이름은 '아직도 왜'다. 유 장관이 현장에서 개발자로 뛰던 시절과 비교해 아직도 왜 바뀌지 않았는지 의문에서 출발했다. 우려도 있다. 정부의 정규직화 움직임이 SI 업계에도 몰아치기 직전이다. SI 업체들의 직원이 주로 공공기관으로 파견근무를 나가는데, 이들을 공공기관의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움직임이다. 중소 SI 업체들은 졸지에 직원들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지난 8일 서울 여의도 사학연금회관의 한국IT서비스산업협회 사무실에서 강진모 회장을 만나 주요 현안에 대해 들었다.
 
강진모 한국IT서비스산업협회장이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신건 기자
 
공공기관의 직접채용, 업계에는 파산산고
 
"공공기관이 SI 수행사의 직원을 채용하겠다는 것은 공공 SI사업을 직접 하겠다는 얘기죠. 그만큼 일감이 줄어 중견·중소 SI 기업들은 줄줄이 문을 닫을 수밖에 없습니다."
 
강 회장은 공공기관의 SI 기업 직원 직접채용을 업계 근간을 흔드는 중대 사안으로 받아들였다. 지난 7월 정부가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추진 계획'에 따라 공공기관들은 청소·경비·관리 직군 외에 전산부문의 파견 근로자도 정규직 전환 대상으로 검토 중이다.
 
과기정통부는 SI 업계의 근로상황 실태조사에 나섰다. 최근 한국IT서비스산업협회와 첫 회의를 열었다. 과기정통부는 협회 측에 주요 SI 기업의 프로젝트별 정규직과 계약직 직원 수를 파악해줄 것을 요청했다. 공공기관 사업을 수주한 SI 기업이나 하도급을 받은 기업의 직원들은 주로 발주사의 사무실로 파견근무를 나간다. 이들을 특채로 공공기관 직원으로 채용해 정규직 비율을 늘리겠다는 것이 정부 방안이다.
 
하지만 SI 업체들의 주장은 다르다. 파견근무를 하는 전산 직원들은 주로 소속 기업의 정규직이다. 이들이 공공기관의 직원으로 입사할 경우 프로젝트 수행기업은 하루아침에 인적 자산을 잃게 된다. 또 직원을 채용한 공공기관이 공공 SI를 직접 수행하면 프로젝트 발주가 줄어들어 중견·중소 SI 기업들은 일감이 없어진다.
 
일반적으로 SI 기업들은 개발과 운영 프로젝트의 순환 근무를 시행한다. 개발 업무는 정해진 기간 내에 고객이 원하는 기능을 개발하는 것으로, 업무량이 많고 상대적으로 난이도가 높지만 직원의 역량을 강화하는데 적합하다. 이렇게 개발된 시스템을 운영하는 것이 SM(시스템 매니지먼트) 업무다. 하지만 공공기관이 SI 기업의 직원을 채용할 경우 전반적인 개발자들의 역량이 저하될 수밖에 없다.  
 
강 회장은 계약직인 프리랜서에 대해서도 IT서비스는 다른 분야와는 다르다는 입장이다. 자발적으로 프리랜서의 길로 뛰어드는 경우가 유독 많은 게 SI 업계다. 그는 "자신이 특정 분야에 전문성을 갖췄다고 판단되면 프리랜서로 나서는 사례가 많다"며 "고용불안은 있지만 정직원보다 급여가 높고 조직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원격지 개발로 전환해야…문제 생기면 책임 물으면 된다"
 
강진모 한국IT서비스산업협회장.사진/신건 기자
강 회장은 SI 업계에도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개발자들의 열악한 근로환경을 개선하면 개발자들을 공공기관의 직원으로 채용한다는 말도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는 "회사가 비전을 제시하고 적정 수준의 급여를 지급하며, 근무환경과 복지를 향상시키는 것이 시급하다"며 "이 모든 것이 기업이 이윤을 창출했을 때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SI 기업들이 공공기관에 시급하게 요구하는 것이 원격지 근무다. 개발자들이 굳이 공공기관 사무실에서 근무하지 않고 자신의 회사 사무실 등에서 근무하는 방식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직원들을 멀리 떨어진 곳까지 파견을 보내지 않아도 돼 체류비 등 비용을 아낄 수 있다. 강 회장은 "분석·설계는 고객과 소통을 지속적으로 해야 하므로 함께 근무해야지만, 구축은 굳이 파견근무를 할 필요가 없다"며 "개발 후 시스템이 제대로 구동되지 않을 경우 수행사에 책임을 물으면 된다"고 말했다. 원격지 개발의 사례로는 강원랜드의 리조트 관리시스템 구축 사업이 있다. 삼성SDS가 수행한 세계 최대 석유생산 기업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람코의 세계문화센터 디지털스페이스컨버전스 사업도 원격지 개발 사례다. 삼성SDS는 국내에서 시스템 개발과 IT 전시관 설계를 진행했다.
 
프로젝트 진행 중에 요구사항을 변경하거나 추가해도 제대로 된 대가가 지불되지 않는 것도 공공 SI 업계의 고질적인 관행이다. 강 회장은 "분석과 설계가 끝나면 과업 범위를 확정해야 한다"며 "확정된 범위대로 가되, 불가피하게 요구사항이 추가되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격지 개발과 제안요청서(RFP)의 구체화는 과기정통부의 '아직도 왜' TF에서도 논의 중이다. TF는 지난 7일 열린 중간보고에서 RFP를 점검하는 RFP 평가단을 도입할 것을 제안했다. 유영민 장관은 "발주자의 요구사항이 명확하지 않으면 원격지 발주를 못한다"며 "RFP를 제대로 작성했는지를 평가하는 평가단은 IT서비스 업계 은퇴자들을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 회장은 대기업의 공공기관 참여제한 제도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금융이나 지방세 등 특정 영역에 전문성을 보유한 강소 기업에게 더 많은 기회가 돌아가고 있다"며 "대기업과의 관계를 이용해 전문성 없이 인력만 파견하던 업체들은 많이 정리됐다"고 말했다. 지난 2013년 중소기업 일감 보호를 이유로 대기업 계열사들의 공공 SW 시장 진입이 금지됐다. 이후 삼성SDS, LG CNS, SK주식회사 C&C 등 IT서비스 대기업들은 전통적인 SI 사업에서 벗어나 신기술 분야에 집중하며 새 먹거리 창출에 힘을 쏟고 있다. 최근에는 3사 모두 인공지능(AI) 플랫폼을 선보이며 AI 시장 선점에 나섰다.
 
강 회장은 이달로 취임 1주년을 맞았다. 그간 협회 자체적으로 대가 체계 개선 및 수행 방식 TF를 구성해 불합리한 관행 개선에 집중했다. 그는 남은 임기 동안 IT서비스산업에 적합한 법 체계 구축에 힘을 쏟을 계획이다. 강 회장은 "IT서비스는 고객 맞춤형 정보 시스템의 구축과 유지보수 등을 하고, SW는 기능 중심의 제품을 생산하지만 SW산업진흥법이라는 동일한 법 규제를 적용받고 있다"며 "IT서비스에 적합한 법이 생기거나 SW산업진흥법이 개정된다면 규제보다 진흥을 위한 법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강 회장은 IT서비스 기업 아이티센을 이끌고 있다. 2005년 설립한 아이티센은 계열사 5곳을 거느린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아이티센은 공공 IT서비스 시장에서 대규모 사업을 잇따라 수주하며 공공 시장의 강자로 떠올랐다. 지난해 9월에는 고용노동부 주관의 '일자리 창출 유공 대통령 표창'도 수상했다. 
 
박현준 기자 pama8@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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