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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발달장애 아동들도 상위 학습 얼마든 가능합니다”
‘쉬운 글’ 만드는 함의영 대표 “해외 개발도상국에도 적용해보고 싶어”
“‘발달장애아가 왜 책을 읽어야 해’ 라는 생각 버려야“
2017-10-20 06:00:00 2017-10-20 06:52:24
[뉴스토마토 조용훈 기자] 독서의 계절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성인의 평균 독서율은 꾸준한 감소세다. 어제 오늘 얘기도 아니다. 전체 독서인구가 줄고 있는데, 정작 발달장애아동들은 읽을 책이 없다. 발달장애아동은 비장애아동에 비해 인지능력이 낮다. 때문에 그에 맞는 책이 필요하다. 함의영(36) 피치마켓 대표는 그런 발달장애아동들에겐 살아있는 ‘세종대왕’이다. 함 대표는 지난 2013년 국내에선 처음으로 발달장애아동을 위한 책을 출간했다. 일종의 ‘쉬운 글’이다. 발달장애아동들이 이해하기 힘든 책 속의 단어나 문장, 내용을 쉽게 풀어내는 작업이다. 그런 과정을 거쳐 벌써 16권의 책이 세상에 나왔다. 성과를 인정받아 지난달에는 서울시가 추진하는 사회문제 해결사업 대상자로 선정됐다. 시는 피치마켓과 같은 청년기업 14곳에 2년간 총 90억원을 투자할 예정이다. 앞으로도 쉬운 글만 쓰고 싶다는 함 대표를 만나 피치마켓의 마지막 페이지를 물어봤다. (편집자주)
 
지난 18일 함의영 피치마켓 대표가 사무실에서 처음 출간한 책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톨스토이)>를 들고 있다. 사진/피치마켓
 
발달장애아동만을 위한 책을 만들게된 계기는 무엇인가.
 
과거 유엔(UN) 산하 환경기구인 유넵(UNEP) 한국위원회의 기획협력팀장으로 근무했다. 업무 중 하나가 UN이 다루는 세계적 환경이슈를 한국에 알려야 했다. 그러던 중 다양한 방식으로 내용을 전하고 싶단 욕구가 있어 동료들과 공부를 시작했다. 당시 ‘쉬운 글’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참여 인원 중 한명이 발달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접했다. 그리고 발달장애인이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써보자는 목표를 잡았다. 그 이후에 특수교사와 출판사 직원 등이 합류하면서 발달장애인만을 위한 책을 만들기 시작했다. 올해로 4년차에 접어들었고, 2년전 단체설립을 마쳤다. 현재는 11명의 동료들과 함께하고 있다. 
 
국내 발달장애아동들의 독서 환경은 어떤가.
 
독서 환경이라는 말을 쓸 수 없을 만큼 열악하다. 콘텐츠도 부족하고, 독서 활동을 진행할 경험자도 많지 않다. 그렇다 보니 독서 기회도 많지 않다. 선진국과 비교해봐도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독일과 미국의 경우, 발달장애인 교육뿐만 아니라 복지 등 모든 면에서 시스템화돼 있다. 영어권에서는 쉬운 영어 쓰기 운동까지 전개한다. 심지어 발달장애인을 비롯해 문해력이 낮은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전용 도서관도 많다. 

책 한 권이 만들어지기까지 과정은.
 
책 선정이 어렵다. 특수교사분들에게 설문조사를 하거나 자문을 받기도 한다. 또는 청소년 필독서 중 후보군을 추린다. 책 선정이 끝나면 번역 작가들이 원작을 100%로 파악한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물론이고, 세세한 내용까지 외울 정도로 이해해야 한다. 쉬운 글로의 번역은 단순히 쉬운 단어로 대체하는 작업이 아니다. 느린학습자인 발달장애아동의 인지능력과 문해력, 집중력, 흥미도를 고려해 책 전체를 새로 쓴다고 보면 된다. 쉽게 쓴다는 게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이후 재구성과 문장 번안, 삽화 등을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적게는 20번, 많게는 30번 이상 퇴고를 거친다. 가본을 만들고 나면 가장 먼저 발달장애아동들에게 보여준다. 아동들이 조금이라도 이해하지 못하는 단어나 문장, 내용이 있다면 바로 수정한다. 감수 이후에도 10번 이상 퇴고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출간이 가능하다. 

시행착오도 있었을 텐데.
 
맨 처음 출간한 책이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다. 대부분의 출판사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어디 한 곳 받아주지 않았다. 오히려 ‘발달장애아동이 왜 책을 읽어야 해’라는 반응이었다. 책이 없어서 못 읽는 게 현실인데, 오기가 생겼다. 직접 출판업을 등록해 사비를 털어 우여곡절 끝에 첫 책을 출간했다. 하지만 실패에 가까웠다. 발달장애아동에 대한 이해도 없이 덤벼든 잘못이 컸다. 참고할 만한 선례나 명확한 방향성도 없었다. 발달장애아동에 대한 이해를 위해 특수학급에 찾아갔다. 담당 선생님께 부탁해 10개월 동안 주 1~2회씩 학교로 출근했다. 학생들과 같은 시간에 등교해서 종일 수업을 들으면서 같이 점심도 먹고 떠들고 뛰어다녔다. 발달장애아동 수업을 지켜본 게 아니라 학생으로 수업을 들었다. 심지어 나를 같은 반 학생으로 착각하는 아이도 있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발달장애아동들이 문장을 이해하는 방식이나 흥미 등을 알게됐다. 그 결과, 두 번째 책부터는 완전히 달라졌다. 
 
책을 접한 발달장애아동들 반응은.
 
특수학급 선생님들께서 보내주신 피드백 중 기억에 남는 건 발달장애아동 한 명이 독서 활동을 끝내고, 주인공이 불쌍하다고 운 적이 있다. 그 친구는 원래 타인의 감정을 공감하지 못하는데, 주인공의 상황이 슬퍼서 울었다는 말에 선생님도 놀라서 울었다고 한다. 또 어떤 아동은 책을 읽는데 재미를 느꼈는지 수업 시간에 따로 앉아 책을 읽는다고 한다. 40년 만에 처음 책을 읽었다며 감사 편지를 받은 적도 있다. 그밖에 생각지도 못했던 효과나 긍정적 반응이 많다. 이후에는 발달장애아동들에게 보다 필요한 책들을 하나둘씩 출간했다. 대표적으로 발달장애아동들을 위한 자기개발서인 <우드앤브릭>이 있다. 윤영주 전 크라운베이커리 대표를 인터뷰해 만든 책이다. 발달장애아동들은 제빵이나 바리스타 같은 직업군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거점학교라는 직업훈련소에서 단순 기술만 배울 뿐 실제 현장에서 어떤 일을 하고, 근무환경은 어떤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 지난 대선기간에는 대통령후보 5명의 10대 공약을 ‘쉬운 글 대선 공약집’을 따로 만들기도 했다. 발달장애인들은 선거권이 있지만 아무래도 참정권에 제약을 많이 받는다. 
 
서울시 사회문제 해결사업을 통한 계획은.
 
이북(e-book) 콘텐츠와 1대1 화상교육을 제공할 생각이다. 이북 콘텐츠는 그동안 체득한 쉬운 글쓰기 방식을 적용해 국어와 사회, 경제 등 기존 교과목을 쉬운 글로 번역해 제공된다. 그동안 특수학급 선생님들과 사회복지사분들은 마땅한 교육 콘텐츠가 부족해 교과목 수업을 진행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1대1 화상교육은 교육이라기보단 피치마켓이 진행해 온 독서 멘토링 프로그램을 온라인화시킨 작업이다. 관련 전공자나 대학생들이 멘토로 참여할 예정이다. 지금까지는 별도 공간을 마련해 <슬로우스쿨>이란 이름의 모임을 진행해 1년에 1000명가량의 발달장애아동들이 참여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공간적으로 시간상으로 제약이 컸다. 점차 학부모님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해 멀리서 시외버스나 KTX를 타고 오시는 경우도 많고, 지방에서도 진행해달라는 요청이 많지만 한계가 있다. 매번 죄송한 마음이다. 
 
향후 피치마켓의 운영 방향과 최종 목표.
 
피치마켓은 시작이 그랬듯, 아직 거대한 비전이나 목표는 없다. 필요에 의해 직장 내 모임으로 출발해 출판업을 등록하고, 단체를 세웠던 것처럼 작은 움직임에 집중하면 점차 성장할 거라 생각한다. 다만, 장기적으로는 현재의 피치마켓 모델을 해외 개발도상국에 적용해보고 싶다.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실질문맹률은 75%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 22곳 중 최하위다. 한글을 읽고도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지 못할 정도로 해독 능력이 떨어진다. 피치마켓은 앞으로도 느린학습자들에게 읽을거리를 제공하겠다는 작은 비전에 집중하고 싶다. 발달 장애인들도 상위 학습을 할 수 있다는 믿음에 변함이 없다. 
 
특수학급 청소년들의 문화축제 주간인 피치마켓 위크에서 참가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독서를 하고 있다. 사진/피치마켓
 
조용훈 기자 joyonghu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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