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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해운 강국의 꿈, 잘못된 정부 구조조정에 좌절"
"MB는 해수부 폐지, 박근혜는 채권 회수에 몰두…문재인 '재조해양'에 희망"
"무너진 해외 네트워크 복원에 최선…200만TEU급 원양 매가 캐리어 육성 필요"
2018-01-28 13:24:59 2018-01-28 13:25:06
[뉴스토마토 신상윤 기자] 마도로스. 네덜란드어 'Matroos(매트루스)'가 한국에 들어오면서 발음이 변형됐다. 외항선 선원을 뜻하며, 70·80년대 불모지와 같던 수출 길을 열었다. 강한 뱃사람의 이미지 이면에는 고국에 두고 온 처자식을 그리워하는 삶의 애달픔이 있다. 국내 한 대형 포털이 1990년 이전까지의 국내 대중가요 3만8485곡의 가사를 빅데이터로 분석한 결과, 437회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직업이다. 그 뒤를 뱃사공(311회)이 잇는다. 한국의 젊은 마도로스들은 망망대해를 향하는 배에 몸을 실었다. 이들은 변변한 수출산업이 없었던 가난한 고국에 외화를 벌어다 준 일등공신이었다. 이들을 기반으로 한국 해운도 점차 강국으로서의 면모를 보인다. 이 마도로스들이 지난 정부에선 눈칫밥을 먹어야만 했다. 외화벌이는 반도체, 자동차 등에 자리를 내준 지 오래고, 높은 부채비율을 안고 있던 해운사들은 호시탐탐 정리 대상이 됐다. 결국 한진해운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면서 마도로스들은 과거의 영광만 추억해야 했다. 최근 이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문재인정부가 재조해양을 약속했다. 한국해양진흥공사법, 한국해운연합(KSP) 등 소기의 성과들도 이어졌다. 그렇게 다시 뱃고동이 울리고 있다. 지난 25일 김영무 한국선주협회 상근부회장을 만나 국내 해운업의 현재와 과제 등을 짚어봤다.
 
국내 해운업이 위기다. 생존도 불확실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난해까지 외항선사 100여개가 폐업했다. 한진해운이 파산했고, 현대상선이 채권단 관리를 받고 있다. 팬오션은 법정관리 끝에 하림에, 대한해운과 삼선로직스도 같은 절차를 거쳐 SM으로 인수됐다. 2008년 52조원에 달했던 매출은 지금 절반에 그친다. 외부 요인은 리먼 사태로 인한 금융위기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정부의 실패한 구조조정 정책도 한몫을 했다. 이명박정부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할 해양수산부를 폐지했다. 박근헤정부는 정책 금융기관을 중심으로 채권 회수에만 몰두했다. 결국 한진해운에 대한 지원을 거부하면서 국가경제에 악영향을 미쳤다.
 
무엇이 이 같은 참사를 초래했나.
 
해운업에 대한 정부의 인식 부족이 가장 크다. 정부는 역대 세 번에 걸쳐 해운업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결과적으로 1984년 오일쇼크 당시 진행했던 '해운사업 합리화' 정책만 효과를 봤다. 당시 63개 해운사들이 20개로 통폐합됐다. 정부는 세금 감면과 부채 상환 연기 등을 같이 추진했고, 이는 1990년대 비약적 발전의 계기가 됐다. 그러나 1998년 외환위기 당시 구조조정은 선사에 부채비율 200% 이하를 강요한 것이 전부였다. 2009년 금융위기 구조조정도 채권단의 채권 회수가 중심이었다. 반면, 해외로 눈을 돌리면 중국은 2009년 이후 최근까지 252억달러를 지원했다. 덴마크는 머스크에 67억달러를, 독일은 하팍로이드에 27억달러를 각각 지원하는 등 해운산업 육성 정책을 폈다. 한국 선사들이 빚 갚는데 매몰됐던 것과 달리 해외 선사들은 정부의 지원으로 몸을 키웠다. 한국선주협회 등도 한진해운이 파산하면 국가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수차례 주장했지만, 정부가 이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다. 그 결과 세계에 뻗어있던 해운 네트워크가 무너졌고, 수출산업의 피해로 이어졌다. 
 
지난 25일 서울 여의도 한국선주협회에서 김영무 상근부회장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한국선주협회
 
문재인정부가 해운산업 재건을 약속했다.
 
박근혜정부가 2016년 10월 해운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을 발표했다. 정권 교체기와 맞물려 실효성이 없었다. 대선 기간인 이듬해 3월 민주당을 찾아가 해운산업 재도약을 위한 정책과제를 대선후보 공약으로 건의했다. 크게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 해운제도 개선, 연관산업 상생방안 구축 등 3가지였다. 메가 캐리어 육성과 해운전문금융기관 및 폐선보조금 제도 도입, 국적선 적취율(국내 화물을 국적선에 싣는 비율) 확대 등도 주장했다. 문재인정부가 들어서면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해운전문금융기관 역할을 하는 한국해양진흥공사 설립, 친환경 폐선보조금 도입, 선·화주 상생을 통한 국적선사의 이용비율 확대 등이 반영됐다. 지난해 말 한국해양진흥공사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올해 7월 자본금 5조원 규모의 한국해양진흥공사가 설립된다. 또 정부는 낡은 선박을 폐선하고 친환경 선박으로 대체할 경우 보조금을 지급하기 위해 예산 43억원을 확보했다. 아울러 선·화주 상생을 위한 정책 개발에도 관련 부처들이 협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난 25일 김영무 한국선주협회 상근부회장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한국선주협회
 
해운업계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
 
우선, 한진해운 파산으로 무너진 해외 네트워크를 복원해야 한다. 한국은 삼면이 바다다. 수출을 위해선 반드시 해운사가 필요하다. 기존에는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전세계 네트워크 망을 이용했지만, 현재는 대부분이 외국 선사에 넘어간 상태다. 현대상선과 SM상선의 서비스도 미주 서안에 국한돼 있어, 유럽이나 남미 등을 찾는 화주들은 외국 선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무역 규모가 세계 10위권에 있는 한국이 수출입 화물을 외국 선사에 의존해서 될 일인가.
 
구체적으로는 글로벌 메가 캐리어를 육성해야 한다. 1997년 원양선사 규모를 보면 머스크 23만TEU,   COSCO 20만TEU, 한진해운 17만TEU, MSC 15만TEU, 현대상선 11만TEU, CMA-CGM 9만TEU 등이었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지난해 기준 머스크는 390만TEU, MSC 306만TEU, CMA-CGM 229만TEU, COSCO 242만TEU 등 많게는 24배에서 적게는 11배 이상 확대됐다. 이 기간 한진해운은 파산했고, 현대상선은 3.2배 상승한 36만TEU에 그쳤다. 20년 전 규모가 비슷했던 해외 선사들이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왔다.
 
한국 해운업계는 올해 1만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 20척을 발주해 선대를 확보할 계획이다. 국내 조선산업과도 연계될 수 있다. 신규 발주와 더불어 국내외 선사들과의 인수합병(M&A)도 필요하다. 국적 원양선사의 규모는 200만TEU 정도는 돼야 경쟁력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아시아 근해 선사들도 자발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지난해 14개 국적 컨테이너 선사가 한국해운연합(KSP)을 결성했다. 자율적인 항로 구조조정을 마쳤고, 또 다른 구조조정 방안이 곧 도출될 계획이다. 선복량 확대도 필요하다. 원양선사 현대상선과 SM상선을 제외한 12개 선사 선복량은 모두 27만TEU다. 싱가포르의 PIL과 대만의 Wanhai는 각각 58만TEU와 22만TEU다. 국적 12개 선사의 선복량도 최소 50만TEU까지는 확대되어야 한다.
 
지난 11일 김영무 한국선주협회 상근부회장(우측)이 '2018 정기총회' 진행을 하고 있다. 사진/한국선주협회
 
장기적인 해운업계 발전 방안은.
 
국내 해운산업의 가장 큰 문제는 장기 목표가 없다는 것이다. 현재 정부는 5년에 그치는 비전을 내놓고 있는데 이를 최소 20년이나 30년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 목표도 구체화해야 한다. 예를 들면 '해운강국 비전 2030'을 설정해서 매출 100조원, 선복량 2억t, 일자리 30만개 창출 등 방향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선사를 단일화해야 한다. KSP가 선사 간 협력 체제를 구축하는 자리였다면, 이를 바탕으로 국내외 화주들을 대상으로 공동으로 영업과 운영을 하는 단일 형태의 선사를 만들어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원유나 액화천연가스(LNG), 석탄, 철광석 등 국가 전략물자는 100% 국적선이 수송해야 한다. 최근 1년 간 국가 전략물자를 수송한 국적선은 전체 278척 가운데 166척(50.8%)에 그친다. 나머지 112척을 국적선이 수송할 수 있다면 외국 선사에 국가 전략물자를 맡기지 않아도 된다. 어렵겠지만 외국 선사들의 계약이 종료되는 대로 국내 선사로 대체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아울러 28%에 그친 컨테이너 화물의 국적선 적취율도 70%까지 확대해야 한다.
 
해운업계에 당부할 말은.
 
올해 기대감이 크다. 정부와 해운업계 모두 재건에 대한 자신감도 있다. 내년 발효되는 선박평형수관리협약, 2020년 황산화물 규제 등에도 대응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대비도 필요하다. 이를 연착륙할 수 있도록 정부와 업계가 모두 노력해야 한다.
 
신상윤 기자 newma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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