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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전 재무설계)당신의 퇴직연금은 안녕하십니까?
방치된 DC 퇴직연금의 실태
2018-03-21 08:00:00 2018-03-21 08:00:00
10년 정도 재무상담을 하다 보니 신규 상담보다는 매년 기존 고객의 자산변동과 투자 포트폴리오를 점검하는 연차상담을 할 때가 많다. 공기업에 근무하는 A씨 가정도 그랬다.
 
상담 전 퇴직연금 자료도 요청했다. 지난해 투자자산을 북미 쪽으로 60% 정도 배분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수익률을 기대하고 있었다. 고객이 보내온 퇴직연금은 연환산수익률 20%를 넘기며 기대 이상의 성과를 냈다. 하지만 그들의 7년 누적수익률은 2~3%에 불과했다. 기대는 곧 실망으로 이어졌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2007년 4분기, 공기업을 중심으로 퇴직연금 제도가 우선 도입됐다. 많은 직원이 기존 퇴직금과 비슷한 확정급여형(DB)을 선택했지만, 20% 넘는 직원들은 임금피크제, DC인센티브, 연령, 투자성향을 고려해 확정기여형(DC)을 선택했다. DC형은 본인의 퇴직금을 100% 사외에 적립하고 직접 투자회사를 지정해 퇴직연금을 관리하는 형태의 제도다.
 
DC형 퇴직연금을 선택한 직원을 위해 2008년 증권사들은 고객사로 직원을 파견했다. 파견 나온 증권사 직원들은 일률적으로 서류를 작성하고 고객과 잠시 대화를 나눈 후 펀드를 선정했다. 결국, 오늘의 퇴직연금 수익률은 어처구니없게도 10년 전 어떤 직원이 왔는지에 따라 달라진 것이다.
 
은행이나 증권사 직원은 투자전문가가 아니다. 기본적인 투자교육과 트렌드를 일반인보다 조금 더 알고 있기는 하지만, 그들도 회사 직원인 만큼 회사의 가이드라인과 매뉴얼에 따라 상품을 판매한다. 그리고 A씨가 가입할 당시 회사의 가이드라인은 당시 인기 있고 수수료도 높았던 몇몇 대형 주식형 펀드와 브릭스(BRICs) 펀드였다.
 
브릭스는 개발도상국의 대표주자인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에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펀드다. 그래서 이때 확정기여형 퇴직연금에 가입한 사람들은 국내 주식형 펀드와 브릭스 펀드를 반반씩 가지고 있는 경우가 태반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 펀드를 매입한 것이 아니라 펀드수익률이 반토막 날 때까지 누구의 조언도 없이 방치됐다는 것이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있었다. 전 세계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고 개발도상국의 피해는 더욱 컸다. 신흥국에만 집중된 브릭스 펀드는 분산효과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하락폭이 컸고 이후에도 계단식 하락 횡보를 이어갔다.
 
브릭스 펀드를 개발한 골드만삭스는 2015년 상품 라인업을 없앴고 슈로더의 브릭스 펀드 역시 엄청난 투자손실을 입었다. 브라질은 2014년 호세프 대통령 연임 이후 주가지수 변동이 너무 커져 신상품 출시가 멈췄다. 러시아 역시 2014년 크림반도를 둘러싼 긴장상황과 유가 하락으로 루블화는 가치가 빠르게 하락,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러시아의 국가신용등급을 강등시켰다. 2015년 러시아펀드는 대부분 수익률 -60%를 밑돌았고 -72%가 된 경우도 있었다. 슈로더 브릭스 펀드의 경우 최근 국제경기 호조로 높은 성과를 올렸지만, 설정 이후 수익률은 여전히 -2%다. 10년의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
 
내 퇴직연금을 관리해야 하는 주체는 바로 나 자신이다. 퇴직연금 역사가 깊은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선 아직도 퇴직연금을 퇴직금처럼 생각하는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본인이 직접 운용사를 결정하고 금융상품을 선택하는 DC나 IRP 같은 퇴직연금은 연간 적립금액도 많고, 운용 기간도 길다. 주식이나 펀드에 투자하면서 수익을 점검하고 투자종목을 바꾸는 것보다, 퇴직연금은 더 많은 관심과 투자지식이 필요하다. 마치 관심을 받고 자라는 나무와 같다. 앞으로 십여 년 뒤 나의 퇴직연금이 앙상한 나무가 돼 있을지, 넓은 그늘을 드리우는 나무로 자라 있을지는 지금의 나에게 달렸다.
 
오늘 퇴직연금계좌를 살펴보고 투자 상품을 점검하자. 그리고 본인의 퇴직연금 계좌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이 들면 함께 고민해줄 전문가를 찾아야 한다.
 
권오선 ITX마케팅㈜ 나눔사업단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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