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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현대차, 지배구조 개편의 모범을 기대한다
2018-05-24 08:00:00 2018-05-24 08:00:00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했던 현대차그룹이 한발 물러섰다. 현대차그룹은 지난 3월 발표했던 현대모비스와 글로비스의 분할 합병안을 철회하고 29일로 예정됐던 양사의 임시 주총도 취소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은 이와 관련해 “이번 방안을 추진하면서 여러 주주분들 및 시장과 소통이 많이 부족했음을 절감했다”면서 “여러 의견과 평가들을 전향적으로 수렴해 사업경쟁력과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개편 방안을 개선하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을 필두로 ISS, 글래스루이스, 한국기업지배구조원 등 국내외 주요 의결권 자문사들이 분할 합병안 반대 권고안을 내놓은 것이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현대차그룹은 당초 이들의 권고안에 대해 근거가 빈약하다며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으나 주주들의 지지를 얻는데 부담을 느끼자 방침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의 결정에 대해 재계 일각에서는 불편한 심기도 내비치고 있다. 글로벌 투기자본의 국내 기업 사냥이 본격화된 가운데 이를 방어할 최소한의 카드가 없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드러났다는 시각이다. 상장회사협의회와 코스닥협회는 최근 ‘경영권 방어제도 도입 촉구를 위한 상장회사 호소문’을 발표하고 국내 기업이 자발적으로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과정에서 일부 행동주의 펀드가 경영권을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포이즌 필이나 차등의결권 등 경영권 방어를 위한 장치가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 투기자본의 부당한 공격에 대해 대응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이와 별도로 고민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현대차그룹이 시장에서의 문제제기를 수용하고 대책을 내놓기로 한 것은 국내 재벌기업으로서는 진일보했다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삼성이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추진하면서 국내외 반대 기류를 무릅쓰고 강행 돌파한 것과 극명하게 대조된다는 것이다. 삼성이 지금까지 합병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현대차는 깔끔하게 한발 물러서면서 후일을 도모할 수 있게 됐다.
 
오너 일가의 지분이 소수에 불과한 대부분의 국내 대기업에 있어서 주주들의 지지를 얻어내는 것은 경영권 안정화의 필수 요건이다. 하지만 그동안 많은 회사의 경영진은 자신이 창업주라는 점을 내세워 이유로 지분 이상의 영향력을 휘두르곤 했다. 주주들을 소통 대상이자 파트너라기보다는 무조건 찬성표를 행사하는 ‘거수기’로 여기기도 했다. 주주들도 보유지분을 행사하는 것이 자신의 권리임을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이 추진되고 사회책임투자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는 등 경제민주화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기업에게도 근본적인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주주들의 지분 확대와 경영 참여를 ‘경영권 침해’라는 시각으로만 바라봐서는 금융투자시장에서의 입지를 스스로 좁히는 것은 물론이고 경쟁에서 도태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기업공개를 통해 시장에 들어온 이상 주주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정당한 평가를 받는 것은 선택이 아닌 의무다.
 
현대차는 여러 의견과 평가를 전향적으로 수렴해 사업경쟁력과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기업가치를 높이겠다고 다짐했다. 지배구조 개편의 모범이 될 수 있는 현명한 방안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해본다.
 
손정협 증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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