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한고은 기자] 지난해 보호무역주의발 경기위축 우려 속에 한국경제는 3% 넘는 성장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성장의 온기를 생활에서 감지하기는 쉽지 않다. 성장에 상응하는 고용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일자리 추경'을 집행하는 등 대부분 경제정책의 초점을 '고용 창출'에 맞췄지만, 고용 회복속도는 미흡했다.
고용창출효과가 낮은 반도체 등 수출산업이 주도한 성장이라는 점 외에 고용창출효과가 높고 전체 고용의 70%를 담당하는 서비스업의 성장 부진이 이유로 꼽힌다. 사드보복 여파가 도소매·음식숙박업에 집중됐고, 은퇴연령층이 자영업에 가세하면서 상황은 더 악화됐다.
1인당 국민소득 향상으로 인한 서비스경제화 흐름에 더해 제조업에 비해 높은 고용창출효과를 보이면서 역대정부 마다 서비스업 육성 정책을 빠짐없이 내놨다. 2001년 이후 20여차례가 넘는 수준이다. 하지만 그 노력에 부응하는 결과를 체감하기 어렵다. 서비스업의 생산성 향상과 그 과정에서 이뤄지는 고용 문제를 연구해온 전현배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를 만나봤다. 올해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어떤 영향을 미쳤냐는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가운데 실제 서비스업 현장은 최저임금 인상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 또 어떤 결과를 낼지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한국경제 산업구조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현재 연구하고 있는 분야, 주제는.
주된 연구 분야는 생산성이다. 생산성 성장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산업구조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고, 이를 위해서는 산업의 미시적 기초를 구성하고 있는 기업체(또는 사업체)에 대한 동학적인 측면에서의 이해가 필요하다. 통계청의 사업체 미시자료를 이용해 기업의 탄생, 성장, 소멸이 전체 산업의 생산성과 고용 변화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실증분석하고 있다.
예를 들면 소매유통업에서 대형마트, 기업형슈퍼마켓(SSM), 온라인쇼핑 등 새로운 업태의 출현이 산업의 생산성과 고용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하는 것이다.
-생산성 문제는 누구나 이야기 하지만 그만큼 풀기 쉽지 않은 문제다.
머릿속으로 갖고 있는 생각들이 실제로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 자료를 이용하여 확인해봐야 한다. 서비스업 발전은 예전부터 많이 이야기 해왔고, 수많은 대안이 나왔지만 서비스업 생산성, 고용이 어떻게 변해왔는지에 대한 실증 분석은 너무 부족했다. 사실 제조업과 서비스업 간 차이보다 개별 서비스업 간 차이가 더 크다. 서비스업을 대안 하나로 이야기 하기 어려운 것이다. 영세자영업이 많은 지역기반 서비스업 등으로 세분화하고 맞춤형 정책을 세워야 한다.
외환위기 이후로 SSM 규제가 시작된 2010년까지 대형마트가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2010년을 전후로 규제가 많이 도입되기 시작했고, 소비자 편익 측면에서 어떤 영향이 있는지를 다룬 연구는 있었지만 유통서비스 산업의 발전, 생산성, 고용 등 산업경쟁력 측면을 본 연구는 많지 않았다.
가장 논란인 부분은 개인서비스, 유통서비스 분야다. 대기업이 진출하게 될 때 자영업자들에게 피해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규제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갖고 있었는데 실제로 그런 효과를 내는지 살펴본 연구는 많지 않았다.
-영향에 대한 세밀한 평가 없이 규제가 앞서나간 것인가.
규제에 대한 영향은 실제로 평가를 해봐야 알 수 있겠지만 유통서비스업은 규제 없이 잘 성장해왔다. 생산성도 상당히 올랐고, 소매유통업 전체 고용도 늘었다. 물론 발전이라는 게 누구 한 사람의 피해도 없이 이뤄지지는 않는다. 순환은 이뤄지기 마련이고, 그것이 선순환인지 악순환인지가 중요하다.
소매유통업에서의 선순환은 생산성이 낮은 업체가 빠져나가고, 생산성이 높은 업체가 들어오면서 이뤄진다. 기본적으로 소비자의 수요가 변하기 때문에 수요가 없는 부분은 쇠퇴하고, 새로운 수요를 충족하는 업체가 들어오면서 생산성을 높인다. 수요 변화는 새로운 업태의 등장으로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업태 간 경쟁(Format Competition)이 있을 수밖에 없다. 결국 새로운 수요는 생기는 데 그걸 규제한다고 해서 원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느냐는 문제가 생긴다.
-규제 접근 방식과 실제 산업현장 작동방식 사이의 괴리가 느껴진다.
제조업에서는 기술개발로 단가를 절감하고, 그 물건을 해외에 팔면 이윤이 커진다. 하지만 서비스업은 수요가 국내에 한정되고, 마진을 얻는 산업이기 때문에 비용절감이 산업의 소멸을 뜻한다. 서비스업은 생활환경, 제도, 소득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는 소비자들의 수요를 충족해주는 쪽으로 발전하는 것이 특징이다.
예를 들면 요즘은 맞벌이 부부가 많아서 낮 시간대 쇼핑이 어렵다. 그렇다면 밤에 문을 여는 상점을 가거나, 인터넷 쇼핑을 통해 24시간 구매하는 방식으로 소비습관이 변하게 된다. 기존 업태에서는 이런 수요를 채울 수 없다. 예전에는 왜 어떤 나라에서는 서비스업이 발전하고, 어떤 나라에서는 발전하지 않는가에 대해 제조업적인 생각을 많이 가졌는데 최근에는 제도나 소비자의 선호가 서비스업 격차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 많다. 일본은 자전거로 쇼핑하는 문화가 있기 때문에 대형마트가 발달하기 어렵다.
지금까지의 규제는 '경쟁력이 떨어져? 그럼 지원해서 올려줘야지'하는 방식인데, 상당히 제조업적인 사고방식이다. 물론 정보통신 등 일부 사업서비스에서는 맞는 이야기지만, 대부분 서비스업에서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시장에 안착해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의 역할은 사회안전망을 통해 피해가 생기는 사업주나 근로자들 보호하는 것이다. 쇠퇴해가는 업태 자체를 보호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경쟁에서 밀린 사업주가 재창업하고, 근로자들이 재교육을 통해 다른 업종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를 해주는 게 필요하다.
전현배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교수가 지난 28일 서울 마포구 서강대에서 <뉴스토마토>와의 인터뷰를 갖고 서비스업 성장과 생산성, 고용 문제 등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사진/뉴스토마토
-최근 일자리 창출이 경제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떠오르면서 고용유발효과가 큰 서비스업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그 잠재력만큼 고용이 이뤄지고 있는지 의문이다.
제조업에 비해서는 서비스업이 고용창출효과가 큰 게 사실이다. 하지만 서비스업은 고정돼있는 게 아니다. 고정된 상태라면 생산성이 오르고, 자본집약도가 오를 수록 고용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수요확대에 동반한 변화가 있어야 고용이 늘어날 수 있다.
인공지능(AI)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지금 상황을 그대로 두면 사람들이 하는 일 대부분을 AI와 로봇이 대체할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AI, 로봇을 이용해 새로운 수요를 만들고 거기에서 사람들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요즘에는 쿠키도 베트남에서 구워오고, 김치도 한국에서 안 담근다. 제조업만 오프쇼어링(생산기지, 용역의 해외이전)이 있는게 아니다. 서비스업도 오프쇼어링이 이뤄지고 있고, 이는 일자리 감소로 이어진다. 새로운 서비스와 수요를 계속 일으키도록 여건을 풀어주는 게 핵심적이다.
-수요측면에서의 변화는 어떻게 이뤄지고 있나.
소매유통업 관련 분석에 따르면 SSM이나 대형마트는 소비자들의 수요확대를 일으켰다. 소매유통업 전체로 봤을 때 고용도 늘었다. 전통시장에 가면 필요한 물건만 딱 사는데, 대형마트에서는 소비자들이 보내는 시간도 늘고, 이 물건 저 물건 담으면서 지갑도 더 많이 열었다.
그런데 이제 대형마트 시대도 슬슬 저물고 있다. 전체 소매판매 지출 중 20%가 온라인에서 이뤄지고 있다. 미국도 이 문제로 곤혹스러워 하고 있는데, 온라인 업태의 성장이 고용에 부정적이라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다.
한국에서는 대형체인이 제대로 갖춰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온라인으로 넘어가고 있다. 미국 리테일 역사를 보면 가장 경쟁이 치열했던 때가 체인형 식료품점이 나온 100년 전이고, 2차 세계대전 전후로 번듯한 슈퍼마켓이 생겼다. 이후 식료품에 생필품까지 다 파는 슈퍼스토어, 월마트가 등장했고 토이저러스(완구판매업체) 같은 소매업체들이 대형화되는 과정을 길게 거친 뒤에 온라인 업태가 등장했다.
우리는 편의점이나 대형마트, SSM 정도를 어설프게 거쳐가는 와중에 온라인의 습격이 시작됐다. 전례없던 일이기 때문에 어떤 방향으로 갈지 예측하기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래도 규모가 큰 업체들은 이런 흐름을 예측하면서 어느정도 대응할 수 있다. 대형체인은 온라인 판매를 시도하고, 복합쇼핑몰도 만들어보지만 전통시장은 앉아서 당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규제로 섣불리 대응하면 의도치 않은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한국의 소매판매 중 온라인 비중은 20%를 넘었는데, 미국이 15% 내외다. 전통시장에서 대형마트로 넘어가려는 시점에 온라인까지 뒤섞인 상황이기 때문에 정책을 하기 쉽지 않다. 약품이나 안경 같은 일부 제품은 온라인 판매가 제한되지만 사실상 규제가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운데 낀 대형마트를 규제하게 되면 결국 온라인이 전통시장도, 대형마트도 잠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소매판매액 중 온라인쇼핑거래액 비중은 20.7%를 차지했다. 올해 1~3월에는 각각 24.0%, 22.2%, 22.8% 수준)
-지난 2월 정부가 서비스업 육성을 위한 첫 번째 대안으로 기술개발(R&D) 지원 정책을 발표했다. (분야별 혁신 대책은 단계적으로 마련한다는 계획)
서비스업은 포항제철이 아니다. 지금 세계적인 기업들은 다 아버지한테 도움 받아서 차고에서 시작했다. 화학이나 기계, 전기전자에 필요한 기술을 얻기 위해서는 비용이 많이 들어가지만 현재 비즈니스의 특징은 결국 아이디어와 기술이고, 정보통신혁명의 가장 큰 특징은 그 기술을 싸게 쓸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서비스업이 굉장히 동태적인 산업이고, 그 과정에서 생산성과 고용이 늘어나는 산업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있어야 하는데, 소위 말하는 ‘파괴적 혁신’이 일어나면 고용이 무너지는 등 타격이 클 것이라는 인식이 있는 것 같다. 연구결과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서비스업의 잠재적인 고용창출효과 만큼 실제 고용이 이뤄지지 않는 다른 이유는.
서비스업 성장의 중요한 모형 중 하나가 프랜차이즈다. 개별 사업체가 현대화된 기술을 충분히 활용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여기서 뜨거운 감자가 바로 프랜차이즈 계약 문제다. 우리 사회에서는 계약에 있어서 갑을 문제 등이 부각되면서 프랜차이즈를 통한 성장이 난관에 부딪쳐 있다.
본사에서 프랜차이즈 계약자에게 기술과 용역을 제공하는 게 프랜차이즈다. 사업 노하우를 물건에 담지 못 하는 경우 사람에게 담아서 보내고 그 과정에서 파견이 이뤄지는데 제빵사 직접고용 문제가 불거진 바 있다. 프랜차이즈라는 산업 모델의 특징을 노동관계법과 잘 맞춰 풀어가야 한다.
또 서비스업에서의 고용안정성은 결국 일자리에서 일거리로 이동하게 된다. 서비스업은 변동이 큰 산업이기 때문에 일자리 보전이 쉽지 않다. 수요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산업을 키워나가며 일거리를 보전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올해 최저임금이 크게 오르면서 고용에 미친 영향을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도소매업 등 서비스업에도 영향이 적지 않았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어떻게 분석하고 있나.
산업측면에서 보면 최저임금 인상으로 가장 큰 타격이 예상되는 곳이 영세 자영업체다. 과거 2011~2015년 사업체의 창·폐업 자료를 봤을 때 최저임금 인상은 영세 자영업자의 폐업을 늘리고, 창업도 줄이는 결과를 낳았다. 영세 자영업체는 비용감당을 위한 자동화도 쉽지 않기 때문에 사실상 대응할 방법이 없다. 특히 창업이 줄어드는 데 의미가 있는데, 신규창업이 고용의 대부분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기존 업체가 고용을 더 하지 않더라도, 업체가 새로 생기면서 고용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이 부분이 줄어드는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최저임금이 저임금 근로자의 생계를 보전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는데 그 피해가 다른 저임금 근로자, 저소득 계층에 가서는 안 된다.
-서비스업 고도화와 영세 자영업의 공존이 가능할까.
모든 전통시장을 다 살릴 수는 없다. 다만 관광객을 모으거나 지역특산물에 강점이 있어 특화되는 전통시장은 살릴 수 있다. 전통시장에 위기가 오면서 정부 정책은 '왜 안 가지? 이용이 불편하면 주차장을 만들지'하는 방식이었다. 중요한 것은 대형마트에 없는 게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장에 없고, 대형마트에 있는 것을 카피하면 경쟁은 더 치열해진다.
물론 차별화 과정에서 시장 자체의 크기는 작아질 수 있지만, 경제학적으로는 시장을 나눠주는 게 각자의 생존력을 높이는 방법이다. 뉴욕 맨하탄에는 대형마트가 없는데, 그들의 소비습관과 맞고 소상공인 조닝(Zoning, 용도지역화)이 많이 이뤄진 결과다. 규제나 조닝 정책이 제한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시행에 있어서 판단이 쉽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향후 연구 분야와 관심 주제는.
기술, 제도와 관련된 기업 동학이다. 기술면에서 온라인 부문의 확장이 소매유통업 생산성과 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보고 있다. 제도면에서는 그동안 노동측면에서 주로 다뤄진 최저임금, 근로시간 문제등을 산업측면에서 분석해보는 것이다. 최저임금은 산업측면에서 비용 충격을 주는 규제인데 서비스업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연구하려고 한다.
한고은 기자 atninedec@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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