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월드컵, 축복인가 저주인가
입력 : 2018-07-03 06:00:00 수정 : 2018-07-03 06:00:00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월드컵은 4년마다 전 세계 축구팬들을 열광의 도가니에 몰아넣는 최대의 축제다. 각 대륙별 예선을 거친 32개 팀이 본선에 오르는 것은 큰 영광이다. 선수들은 꿈의 무대인 월드컵에 서기 위해 불꽃 튀는 경쟁을 하고 뼈를 깎는 노력을 한다. 이 뿐이 아니다. 축구팬들은 자국 응원을 뛰어넘어 세계 명문 클럽 팀에서 활약하고 있는 스타 선수들을 한자리에서 지켜보는 기쁨을 누린다. 우리 한국 대표팀도 예외는 아니다. 아시아 지역 예선을 통과해 본선에 진출했고 16강에 진출하기 위한 조별리그 경기를 가졌다. 모두 알다시피 첫 경기인 스웨덴전과 두 번째 경기인 멕시코 경기는 아쉽게 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인 독일전에서 김영권과 손흥민 선수가 잇달아 골을 기록하며 세계 랭킹 1위 ‘전차군단’을 침몰시켰다. 세계 유수 언론들은 독일을 완파한 한국에 박수를 보냈다. 심지어 한국 덕분에 16강에 진출한 멕시코는 ‘멕시코리아’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내며 한국을 축복받아야 하는 나라로 추켜세워 주고 있다.
 
그러나 우리 선수들은 개막 이후 줄곧 ‘악플 악몽’에 시달렸다. 첫 경기를 치르기도 전에 한국 선수들의 경기력과 신태용 감독에 대해 의심하고 비아냥거리는 악플로 인터넷 공간이 도배되기 시작했다. 첫 경기인 스웨덴 전에서 기대에 못 미치는 경기 내용으로 패배하자 선수들과 축구협회 그리고 감독을 향한 ‘집단 저주’는 더 공격적으로 폭발했다. 1차전과 2차전에서 여러 번 수비 구멍을 만든 장현수를 향한 질책은 국민청원으로까지 이어졌다. 수백 건의 장현수 선수 관련 청원 글이 올라왔는데 일부 내용은 이성적인 수준을 넘어 내용을 읽기조차 경악스럽다. 선수는 둘째 치고 가족들이 악플 댓글을 볼 경우 입을 마음의 상처는 얼마나 될까. 귀국 기자회견에서 대표 선수들을 환영하고 격려하는 박수가 있었지만 선수들은 결국 실망감과 아쉬움이 가득 섞인 ‘계란 세례’를 피하진 못했다.
 
따지고 보면 이번 월드컵에 국민들의 기대는 높지 않았다. 공이 아무리 둥글다고 하더라도 객관적인 실력차는 존재한다. 다수의 우리 국민들 또한 쏟아지는 월드컵 정보를 접해왔기 때문에 모를 리 없다. 한국갤럽이 자체조사로 월드컵이 열리기 전인 지난 5월16일~17일 실시한 조사(전국1004명 휴대전화RDD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3.1%P 성연령지역가중치 응답률16% 더 자세한 사항은 조사기관의 홈페이지에서 확인가능)에서 ‘월드컵에서 우리 축구대표팀이 어느 정도의 성적을 거두리라고 예상하는지’ 물어본 결과 ‘16강 진출’을 예상한 의견은 3명 중 1명이 조금 넘는 수준인 37%에 불과했다. 같은 조사기관에서 2002년 월드컵을 비롯해 지금까지 조사한 결과와 비교하면 16강 진출 기대치가 역대 가장 낮은 수준이다. 국민들 스스로 이번 축구 대표팀의 조별리그 통과 가능성에 대해 현실적으로 높지 않게 보고 있었다. 심지어 ‘출전국 중 우승 가능성이 높은 팀’에 대해 물어본 결과 독일이 23%로 가장 높았다. 우리와 같은 조인 독일의 우승 가능성을 가장 높게 보았다는 의미는 독일전 승리 가능성조차 매우 낮게 본 전망으로 풀이된다.
 
한국 축구가 더 많은 발전을 위해 선수들과 협회가 끊임없이 노력하고 혁신해야 한다는 주장에 이의를 제기할 국민들은 없다. 그렇지만 도를 넘는 막말로 선수들과 감독을 비난하는 ‘월드컵 저주’를 공감하기는 힘들다. 더 좋은 경기력을 펼쳤다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 16강에 운 좋게 올랐다면 환호하지 않을 국민들은 없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월드컵에서 여러 번 우승했던 브라질 대표팀조차 조별리그 경기력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축구의 신’인 메시를 탑재한 아르헨티나 대표팀은 가까스로 16강 토너먼트에 올랐지만 프랑스의 예술 축구에 좌초됐다. 2002년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만들어냈던 우리 축구에 대한 높은 기대감은 이해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현실과 기대 사이의 차이가 지나친 ‘인지 부조화’는 건전한 비판과 상식을 좀먹는다. 월드컵에 첫 출전한 파나마는 조별리그 3전 전패를 하고도 축제분위기였다. 대패한 영국전에서 월드컵 첫 골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초 기준으로 파나마는 FIFA랭킹 55위로 우리 국가대표팀보다 두 계단이나 높다. 올림픽만 열리면 금메달을 기대하고 월드컵에 출전하면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등 강팀을 꺾어주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모르는바 아니다. 그러나 너무 지나쳐서 특정 선수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고 상대했던 국가들에 대한 악의적인 분풀이가 된다면 곤란하다. 4년 뒤 카타르 월드컵은 더 이상 ‘저주의 월드컵’이 아닌 ‘축제의 월드컵’이 되어야 한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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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주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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