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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손경식 경총 회장의 고민
2018-07-04 17:34:58 2018-07-04 21:18:58
“1982년, 처음으로 이 자리를 떠 맡을 때 나 자신도 별로 원치 않던 것을 마지못해 맡았다. 임기 2년짜리 회장 자리를 무려 다섯 차례나 연임하며, 올해로 꼭 10년째를 맞았다. 이 글이 세상에 알려질 때쯤이면 이미 그 10년짜리 무거운 감투를 벗어 놓은 후가 될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현재는 어떻게, 누구에게 이 자리를 물려주나···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고 우정(牛汀) 이동찬 코오롱 명예회장은 1992년 발간한 자서전 <벌기보다 쓰기가 살기보다 죽기가>에서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을 맡았던 심경을 이렇게 토로했다. 당시 경총은 이 명예회장 등이 주도해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을 추대하기로 했다. 구 명예회장이 “나도 60이 되면 하지요”라고 반 승낙조로 말했기에  그 말을 믿고 총회 당일 구  명예회장을 선출했다. 하지만 구 명예회장은, 총회장에 나타나지 않았고 전화도 받지 않았다. 경총 회장단은 사태를 조기진화하기 위해 의사도 묻지 않고 서둘러 이 명예회장을 회장으로 추대했고, 이 명예회장은 결국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10년만 하고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던 그의 바람은 지켜지지 못했다. 1995년 퇴진을 선언했지만, 마땅한 후임 회장을 찾지 못해 명예회장 자격으로 2년 더 경총을 이끌었다. 총 15년. 경총 역사상 최장기 회장이었다. “근로자 대표들과 협상 테이블의 맞은편에 앉아 그야말로 온갖 논쟁을 벌여야 하는 경총 회장이란 자리는 결코 만만치 않은 참을성과 테크닉을 요구했다”고 소회했을 만큼 경총 회장 자리는 그에게 큰 부담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뒤를 이어줄 회장들에 대한 걱정도 많이 했다.
 
사용자 입장을 대변하는 경총을 두고 ‘재계의 행동대장’이라고 칭한다. 기업 활동의 핵심 업무이지만 가장 손을 대기 꺼려하는 노사관계를 전담하기 때문에 그런 별명이 붙었다. 하지만 그렇게 중요한 자리인데도 누구도 회장을 맡으려 하지 않는다. 추대를 해도 고사하는 진통이 반복됐고, 떠밀려서 마지못해  회장에 올랐다. 경제단체 수장이라는 명예보다는 현역 경영인이기 때문에 노조와의 충돌이 더 걱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경총 회장을 재계 원로인 손경식 CJ 회장이 맡았다. 1939년생이니 한국 나이로 올해 80이다.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위원장 등 굵직한 자리를 많이 맡았고, 사회 활동도 활발히 했다. 지난 3월, 손 회장이 경총 회장으로 추대 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왜 굳이 마지막까지 힘든 일을 감내 하려는가’라고 생각한 것은 기자뿐만이 아니었다. 
 
공교롭게도 그런  우려가  맞아 떨어진 것인지, 경총은 지금 1970년 설립이후 가장 큰 혼란을 겪고 있다. 노총과의 정책 갈등이라면 차라리 낫겠는데, 송영중 전 상임부회장에서 비롯된 조직 분란이 경총의 적폐논란으로까지 확산됐다. 지난 3일 임시총회에서 송 전 부회장의 해임안건이 가결됐지만, 상처를 추스르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손 회장에게는 취임 4개월여의 시간이 4년과도 같을 만큼 길게 느껴졌을 것이다. 의도했던 것은 아니지만, 정부와 기업을 연결하는 조정자 역할을 자임해 왔던 손 회장의 이미지에도 상처가 났다.
 
말을 자제하는 손 회장이지만, 최근 개인적으로 만난 재계 총수들에게 “힘들다”고 토로했다는 말도 들린다. 그만큼 깊은 고민에 빠져있다. 손 회장의 공적 활동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는 CJ그룹도 이번 사태를 바라보며 손 회장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하고 걱정하는 기류다. 주 52시간 근무, 최저임금법 등 산적한 노사 현안과 관련해 기업의 입장을 반영하려면 경총은 반드시 존재해야 하고, 또 경총이 제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손 회장의 리더십이 발휘돼야 한다. 당장은, 손 회장과 손발을 맞출 수 있는 상임부회장을 선출하는 일이 시급하다. 
 
채명석 산업1부 재계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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