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김관묵 교수 "세월호 침몰, 외부충돌 외에 설명 안돼…공개토론 하자"
4년 전부터 과학적 연구 통해 ‘외인설’ 주장…선체조사위도 사고 원인 중 하나로 채택
“선조위 ‘외인설’ 채택은 큰 진전 …사고 원인 과학적으로 입증돼야 ”
2018-08-22 07:00:00 2018-08-22 07:00:00
[뉴스토마토 최병호 기자] 2014년 4월16일, 전남 진도군 인근 바다에서 한 척의 배가 침몰했다. 세월호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나던 경기도 안산 단원고 학생들을 포함해 299명의 승객이 뭍에 닿기도 전에 스러졌다. 그날 이후 많은 사람의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었다. 가족을 영원히 가슴에 묻어야 했던 유족들은 4년 가까이 광화문 찬 바닥에서 농성을 벌였다. 국민을 지키지 못하는 국가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은 커졌고, 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탄핵'으로까지 이어졌다. 화학을 전공하고 대학에서 평생 학생들만 가르치던 김관묵 교수도 '그날 한 척의 배'로 인생이 바뀌었다. 사고 초기부터 침몰하는 세월호 부근에 포착된 괴물체와 레이더 등을 보고 배의 침몰 원인으로 외인설을 주장했다. 배의 항적과 각종 데이터를 봤을 때 세월호는 잠수함 등 외부 충격에 의해 침몰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처음에 그의 이야기는 허황된 음모론 쯤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그는 조선공학을 공부하고 각종 데이터를 수집·분석할수록 외인설을 확신, 더 적극적으로 알렸다. 결국 지난 6일 세월호선체조사위원회(이하 선조위)는 1년 1개월여의 활동을 종료하며 발표한 종합보고서에서 세월호 사고 원인으로 외인설과 내인설(화물 과적과 선박의 과속, 무리한 방향 전환 등 선박 자체의 원인으로 인한 침몰)을 모두 포함한 '열린 안'을 채택했다. 외인설이 처음으로 사고 원인 중 하나로 공식 채택된 것이다. 외인설의 근거는 충분하다. 하지만 그가 외인설을 주장하는 것은 잠수함 등 외부 충격에 따른 음모론을 지지해서가 아니다. 무엇이 됐든 사고 원인을 정확히 밝혀야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는다는 믿음이다. 김 교수는 "어떤 사고가 나면 원인을 단정하기보다 정확히 밝혀야 사고가 재발하지 않는다"며 "국민들이 세월호 원인 규명에 관심을 가지고 공개 토론회 등을 통해 공론화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편집자) 
 
 
김관묵(57) 이화여대 교수가 언론에 처음 등장한 때는 2016년 12월 다큐멘터리 '세월호X'가 공개된 후다. 세월호X는 네티즌 수사대 '자로'가 세월호 침몰의 진실을 찾았다고 주장하며 제작·공개한 영상이다. 자로는 영상에서 세월호가 화물 과적과 복원력 상실, 조타 미숙 등으로 침몰한 게 아니라 외부 충격으로 기울었다고 주장했다. 외인설은 기존에도 종종 언급됐지만, 자로의 영상이 관심을 끈 것은 항적과 레이더 분석 등 체계적 자료에 기반했기 때문이다. 자로가 세월호X를 만들 때 이론적으로 가장 많은 도움을 준 사람이 김관묵 교수다. 김 교수는 "언론에 공개된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 레이더 영상과 선박자동식별장치(AIS) 등을 보면 세월호가 생각보다 너무나 급작스럽게 선회했고, 배가 침몰할 당시 주변에 괴물체로 보이는 것이 사진과 레이더에 포착됐다"며 "이 모든 것을 고려할 때 세월호 침몰 원인으로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외인설"이라고 주장했다. 
 
침몰 원인 두고 내인설과 외인설, 고의침몰설 제기돼
현재 세월호 침몰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은 크게 내인설과 외인설, 고의 침몰설이 있다. 김 교수에 따르면 박근혜정부는 내인설을 주장했고 2015년 1월부터 이듬해 9월까지 활동한 1기 4·16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는 고의 침몰설에 기울었다. 이번 선조위는 사실상 내인설을 정설로 생각하고 사고 원인을 분석했다. 앞서 2014년 10월 세월호 사고를 수사한 검찰도 세월호가 무리한 구조 변경과 과적으로 복원력이 약화된 상태에서 조타 미숙으로 배가 기울었고, 제대로 고정되지 않은 화물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배가 침몰했다고 발표했다. 김 교수는 "내인설은 일견 그럴 듯 하지만 사고 당시 영상과 선박의 상태, 복원력 등을 일일이 따져보면 설명이 안 된다"며 "당시 세월호의 화물은 총 2200~2300톤 정도였고, 배에 설치된 CCTV 영상 등을 보면 배가 급선회할 때 얼마만큼 기울어질 것인지 예측이 되는데, 조타 미숙에 따른 복원력 불량으로 쓰러질 상황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김관묵 이화여대 교수. 사진/뉴스토마토
 
흥미로운 점은 내인설이 박근혜정부 뿐만 아니라 일부 진보진영에서도 지지를 얻는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내인설이 세월호의 진실을 가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박근혜정부는 세월호 사고 책임이 '배 그 자체에 있다'고 주장하기 위해, 그리고 일부 진보진영에서는 박근혜정부의 선박 관리 부실과 사고 초동대응 미흡을 문제 삼고자 내인설을 말한다"며 "결국 각자의 정치적 목적으로 둘 다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데, 그 때문에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감추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고의 침몰설은 음모론이라고 일축했다. 이 주장은 세월호의 VTS 항적이 이상하고 침몰하던 당시 배의 닻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근거로, 정부가 세월호를 고의로 침몰시키고 관련 데이터를 조작했다는 이야기다. 고의 침몰설은 방송인 김어준씨 등의 지지를 얻으며 올해 4월 영화 <그날, 바다>로까지 제작, 5월 기준 누적 53만8672명이 관람했다. 김 교수는 "여러 실험기기와 장비를 다뤄본 과학자로서 말한다면, 정부가 세월호를 고의로 침몰시키고 그에 대한 여러 데이터를 모두 완벽하게 조작해 사실을 은폐하려 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며 "데이터를 정말 흔적도 없이 감췄으리라는 말은 비현실적"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설사 데이터가 조작됐다면 왜 몇 년째, 문재인정부 들어서도 증거를 찾지 못할까"라고 반문했다.  
 
"내인설은 복원력 등 주요 데이터 무시하고 있어" 
김 교수는 오히려 이번 선조위를 포함해 세월호 사고를 규명하려는 사람들이 외인설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복원력 등 각종 데이터를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내인설과 외인설을 가르는 가장 큰 잣대는 세월호 침몰 당시 '복원력 상실이 어느 정도였나'라고 할 수 있다. 배의 복원력 계산에는 복원력 수치(GoM)가 이용된다. GoM은 배의 무게중심(G)과 부력중심이 어긋나 배가 기울어졌을 때 다시 원래 상태로 되돌아오려는 성질을 수치화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GoM이 높을수록 안전하고 낮을수록 배가 기울 위험이 커진다. 그런데 김 교수는 세월호 침몰 당시 GoM을 계산한 결과 0.593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선조위 일부 위원들은 GoM이 0.306이라고 반박했다. GoM이 0.1 높다는 것은 배의 무게중심이 10㎝나 위에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세월호 침몰 당시 선체와 화물의 상태 등을 가지고 배의 무게중심을 계산하면 GoM은 0.6에 가까웠다"며 "갑자기 방향을 바꾸며 막 쓰러질 배가 아니었고, 결과적으로 외력 외에는 이 배를 침몰시킬 원인을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내인설을 지지하는 일부 선조위 위원들은 GoM이 높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외인설을 부정하기 위해 온갖 이유를 대며 GoM을 낮추려 했다"고 주장했다.
 
물론 외인설에는 결정적 문제가 제기된다. 세월X가 제작될 당시는 세월호가 바다 밑에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3월25일 드디어 인양돼 모습을 드러낸 세월호에는 선체 파손 등 강한 외부 충격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선체에 파손이나 긁힌 자국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며 "선체의 일부 찌그러짐이나 밀려 올라감, 페인트의 벗겨짐, 파공과 파단 등이 그 증거"라고 말했다. 이어 "외부에서 강하게 부딪쳤다고 말할 확실한 증거가 없으나 그렇다고 '아무것도 없었다'라고 할만한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김관묵 이화여대 교수. 사진/뉴스토마토
 
2기 특조위가 제대로 밝혀주길 기대  
결국 지난 6일 선조위는 종합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세월호 사고 원인으로 두 주장을 모두 포함한 '열린 안'을 채택했다. 이제 더 구체적인 진실 규명은 3월부터 활동을 시작한 2기 특조위가 맡게 된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비록 선조위에서 이견이 있었다지만 외인설을 받아들였다는 점에서는 상당한 발전이고, 큰 변화의 시작"이라며 "사고 원인이 과학적으로 입증이 되어야만 사람들의 동의를 얻고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부에 제대로 된 조사를 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살인사건이 일어났는데, 아무나 지목해서 '네가 범인이다' 하면 되겠느냐"며 "지문이나 알리바이 등 모든 증거를 수집해서 누가 범인인지를 밝히는 것처럼 세월호 사고의 진실을 제대로 규명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김 교수는 벌써 4년 넘게 세월호 진상 규명에 매달리고 있다. 그는 "4년 전에 개인적 의구심을 정리해 고등학교 동기들이 모인 단체메시지 방에 글을 올렸고, 이후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인터넷에도 글을 올리게 된 게 여기까지 왔다"며 "이 문제에 대해 공개토론을 하면서 어느 쪽이 옳은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고, 일반 사람들과 과학자들이 이 문제에 조금 더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병호 기자 choib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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