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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주택 사업 통해 북한 국제무대로 끌어내야”
안병욱 대한건축학회 건축연구소 박사 "인프라 협력해 신뢰 쌓아야"
"개성공단처럼 중단되지 않으려면 국제사회 연계 필요"
2018-08-27 13:36:14 2018-08-27 13:38:46
[뉴스토마토 김응태 기자] 남북 이산가족 상봉 재개와 다음달 3차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종전선언을 향한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 하지만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의 4차 방북을 전격 취소하면서 관계가 개선될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 수십년간 갈라져온 갈등의 골을 줄이기는 쉽지 않다. 안병욱 대한건축학회 부설 건축연구소 박사는 북한과의 간극을 줄이기 위해선 인프라 협력으로 신뢰를 쌓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안 박사는 지난 2016년부터 '북한 인프라 조사 및 주거공급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그는 어린 시절 전기도 제대로 안 들어온 시대를 걸어온 경험을 떠올리며 북한의 낙후된 주거 문제를 개선하고 싶다고 말했다. "잠실주공 아파트에 연탄이 들어간 때가 있었어요. 건축이 발전된 과정을 아니까 그 과정을 북한이 따라가야 합니다." 안 박사를 만나 북한의 현 주거 실태와 인프라 협력 방안에 대해 들었다.
 
안병욱 대한건축학회 부설 건축연구소 박사. 사진/본인 제공
  
북한의 노후주택 협력 사업,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통계에 따르면 2016년말 기준 북한의 국내 총생산규모는 36조원, 남한은 1639조원으로 남북한 경제규모는 약 45배 정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북한의 경제규모는 70년대 후반 한국경제규모와 유사하다. 북한에 주거를 공급할 경우 현재 남한의 주거수준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은 개발비용이나 생활수준을 고려하면 대단히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주거공급의 선순환을 고려할 경우 단계적 주거환경 수준의 적용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북한의 주거 실태는?
 
북한 매체를 통해 보도되는 내용을 보면 평양에는 고층아파트가 많이 지어져 있고, 어느 정도 수준 있는 규모와 경관을 지니고 있다. 북한의 인구를 2500만 정도로 추산할 때 평양과 일부 도시를 제외한 2000만명 이상이 거주하는 주거수준은 대단히 열악하다. 예컨대 평양의 주거는 영구주택위주이지만, 지방은 80~90%가 임시주택 수준이다. 거기다 북한의 주요 난방에너지는 석탄 47.1%, 나무 45.1% 등 비율이 높은데 난방용 에너지원만 봐도 북한 주거 실상을 짐작할 수 있다.
 
예상되는 북한의 주택 인프라 협력의 개발 규모는?
 
2015년 기준 북한의 주택보급률이 70%라고 가정할 경우 북한 주택 수는 약 410만호이고, 필요한 신축주택 수는 약 180만호다. 북한에는 1990년 이후 신축주거 55만 가구 정도가 공급된 것으로 조사되고 있으며, 이를 제외한 대부분의 가구는 30년 이상 경과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기존주택 410만호 중 최근에 지어진 건축물인 55만 가구를 제외한 약 355만호도 대부분 재건축 내지 리모델링해야 하는 수준이다.
 
북한 평양에서 려명거리 준공식 당시 군인들이 인공기 등을 들고 걸어가는 모습. 사진/뉴시스
 
북한 인프라·건설 협력 시 갈등도 예상된다.
 
북한과의 인프라·건설 협력 시에는 다양한 갈등이 벌어질 것으로 본다. 우선 남북은 65년 이상 분단 상태로 이원화되어 왔다. 이에 따라 정치군사, 사회문화, 교육, 제도, 생활환경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각각의 체제로 고착화돼왔다. 인력, 자재, 장비 등 건설 산업 인프라와 관련된 건설 환경도 남북한 격차가 매우 크다. 협력과정에서의 입장차가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개성공단과 같이 정치적 이유로 사업이 중단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개성공업지구뿐 아니라 지난 2008년 금강산관광개발사업, 2006년 경수로사업도 중단됐다. 향후 북한에 대한 협력사업은 국제사회에 대한 북한의 신뢰회복이 우선적 관건이 될 것으로 보며, 가능하다면 북한 지원사업은 미국 등 국제사회와 공동으로 시행할 필요가 있다. 사실상 우리나라와 독자적으로 사업을 하기는 어렵다. 궁극적으로는 주변 국가를 사업에 참여시킬 뿐만 아니라 북한을 국제무대로 나오게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일각에선 북한 인프라 시장에 중국, 미국 등이 참여해 경쟁할 것이라 보는데 우리나라는 어떤 점을 내세워야 하나.
 
중국이 가장 커다란 경쟁상대가 될 것이다. 장마당에 공급되는 거의 대부분의 건축자재가 중국산으로 알려져 있다. 또 중국의 동북 3성 지역과 북한 북부 접경지역 간 교량, 도로, 철도 등 인프라를 연결하고 증축하는 데 합의했었다. 러시아, 일본, 미국, 유럽 등 많은 나라도 북한의 인프라 사업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는 같은 민족이므로 민족공동체로서 교류협력을 강조해야 한다.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서의 위상도 충분히 활용해 북한 개발과 연계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최근 해외 인프라 수주의 열쇠는 금융 조달이다. 금융 조달 역량에서 우리나라는 미국 등에 상대적으로 부족하지 않나.
 
북한 지역에 대한 지원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될 경우 우리나라 예산만으로는 지원하기에는 한계점이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금융조달을 위해서는 공적개발원조(ODA)사업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ODA는 선진국 정부 또는 공공기관이 개도국의 경제 발전을 목적으로 개도국에 공여 또는 양허하는 차관이다. 공적개발원조는 북한이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었을 경우에만 가능하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인프라 협력을 위한 건설사들의 역할은?
 
정부 지원사업에 참여는 가능할 것으로 본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북한은 우리와 경제체제가 다르기 때문에 충분히 대비해야 한다. 투자를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북한의 외국인투자법, 합영법, 합작법 등 외국인 투자 관련법과 북한의 실상을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북한에서는 합영이나 합작기업이 외국의 법인과 개인을 대상으로 토지이용권도 임대하고 있다. 임대기간은 50년간 연장도 가능하다. 토지이용권의 제3자 양도나 저당도 가능하지만 토지임대료와 토지사용료 지불에 대한 규정을 자세히 알고 있어야 한다.
 
북한 평양에서 15일 교통순경이 아파트 빌딩을 뒤로 한 채 거리 한가운데에서 차량을 통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북한 주택 시장에도 최근에는 우리나라처럼 분양권이나 입사증(입주권)을 돈으로 사고판다고 하는데 북한 주택 건설과 거래는 어떻게 이뤄지는가.
 
북한에서는 1990년대 후반 소위 고난의 행군 시절을 나면서 주택거래가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져 왔고 장마당도 활성화되었다. 최근에는 북한의 돈주와 북한 당국의 결탁에 의한 개발사업이 진행되고 있고 기관의 이름을 빌려서 분양도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북한에서의 주택거래는 어디까지나 소유권의 거래가 아닌 사용권의 거래이다.
 
북한 인프라 협력 시 파주 등 접경지역처럼 최근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는 문제도 발생할까.
 
점진적인 지원체계의 개념에서는 수요가 많지 않아 남한의 지원시스템을 서서히 활용할 수 있고, 북한 지원 주택환경 수준과 공사비 등 현실적인 사항을 감안하는 정도면 될 것이다. 그러면 부동산 가격 급등 문제는 적을 것으로 예상한다. 그러나 남북한 관계가 급속히 호전되면 수요도 빠르게 증가해 수요 공급에 따른 제반 문제가 부상할 수 있다. 당장은 북한과의 경제협력 단계, 북한 공동개발 단계, 한반도 균형발전사업 단계 등 우리 정부의 정책에 따라가야 할 것으로 본다.
 
향후 남북 인프라 사업 및 통일과 관련해서 연구하고 싶은 분야는?
 
우선 남북한 간의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고 대비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북한 건축현황을 확대 조사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실정에 맞는 신재생에너지 기반 시스템주거건축에 대한 연구개발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통일이 돼서 북한에 갈 수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
 
통일 전의 상황이어도 가능하다면 평양건축종합대학 교수진이나 북한 건축가와 교류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보고 싶다. 북한과의 교류협력을 위한 정치적 상황도 있지만 민간 차원에서의 교류가 계속돼야 단일민족으로서 동질성 회복도 빠르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통일이 된다면 금수강산 국토순례를 가장 먼저 하고 싶다.
 
안병욱 대한건축학회 부설 건축연구소 박사가 한국건설관리학회가 주최한 통일한반도 건설산업위원회 세미나에서 강연하고 있다. 사진/한국건설학회
 
김응태 기자 eung102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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