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래군의 인권이야기)쪽지재판 추억과 사법부의 독립
입력 : 2018-10-17 06:00:00 수정 : 2018-10-17 06:00:00
사법부가 권력의 시녀 역할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럴 때 반정부 시위로 들어갔던 이들은 사법부를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재판을 거부하고는 했다. 어떤 경우는 재판정에 아예 드러눕거나 고무신을 재판장을 향해 던지기까지 했다. 재판부를 향한 험한 욕설과 항의를 하면서 거부하고 법정에서 소란을 피우다가 법정 경비들에게 들려나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도 그럴 것이 법원 재판부가 법과 양심에 따라서 재판을 진행한다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에 밝혀진 바대로 시국사건, 공안사건 재판에서는 법원 재판부가 독자적으로 형을 선고하는 경우가 없었다. 중정-안기부에서 전달되는 쪽지에 따라서 중형을 선고하고는 했다. 검찰의 공소장도 안기부의 조사기록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베끼고, 법원의 선고문도 그걸 다시 그대로 베끼는 한심한 일이 일상처럼 일어났고, 그러기에 법원에 대한 올바른 판단은 기대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법정에서 쪽지재판에 충실했던 판사들은 이후에 승승장구 출세 길을 갔고, 대법관과 대법원장에까지 올랐다.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정권 시기에 판사를 했던 이들치고 이런 경험으로부터 자유로운 이가 얼마나 있을까? 나름 사법부의 독립을 주장하는 판사들의 사법파동이 네 차례 있었고, 소신 재판을 했던 이들이 있었지만 이들은 이미 오래 전에 제거되었다. 권력에 굴종한 판사들은 법원행정처를 중심으로 사법 권력을 장악했다.
 
독재정권이 국민들의 민주화 투쟁에 의해서 종식된 뒤에야 쪽지재판은 사라졌고, 사법부의 독립이 이루어졌다. 사법부의 독립은 사법부 성원 스스로 쟁취한 것이 아니었다. 재판을 거부하던 항생들과 민주인사들의 투쟁이 있었기에 민주화 과정에서 사법부의 독립은 가능했다. 이후 쪽지재판은 재판은 사라졌지만 사법부의 독립을 통해서 얻고자 했던 독립된 사법부의 모습은 보여주지 못했다. 여전히 사법부는 힘 있는 자, 돈 있는 자, 권력 있는 자 앞에서 한 없이 무기력했고, 가난하고, 힘없고, 백 없는 이들에게는 가혹한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어 버렸다. 법과 양심에 따른 공정한 재판에 대한 기대는 사라졌고,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경향은 지속되었다.
 
“정치적인 세력 등의 부당한 영향력이 침투할 틈이 조금이라도 허용되는 순간어렵사리 이루어낸 사법부 독립은 무너지고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말 것입니다.” 
 
지난해 9월 퇴임한 양승태 대법원장의 퇴임사의 한 구절이다. ‘양승태 사법농단’의 몸통으로 지목되고 있는 그가 이런 말을 하다니 어처구니가 없어서 말문이 막힌다. 사법농단을 대하는 김명수 대법원장의 태도도 모호하기만 하다. 검찰 수사에 대한 협조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고, 오히려 제 식구 감싸기 식의 법관들에 대한 압수수색영장과 구속영장의 기각이 줄을 잇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 자신의 곪은 환부를 도려내지 못하는 오히려 환부를 키우는 사법부의 모습을 보는 심정은 착잡하다.
 
재판거래의 결과는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의 죽음으로 이어졌고, 전교조 사건에서는 아예 재항공이유서를 대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과거사 사건과 통합진보당 관련 사건들, 노동사건들에 대한 그 결과들로 인한 고통은 엄청나다. 뿐만 아니라 법관 블랙리스트까지 작성하고, 비자금도 조성하고, 심지어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법리 검토까지 하는 등으로 법원의 독립을 철저하게 망가뜨렸다. 인권의 보루라는 지위를 스스로 내팽개치고 대법원과 사법부가 범죄 집단으로 전락했다. 
 
이제 대법원에 기대할 게 없다. 국회에 문제 법관들의 탄핵과 특별재판부의 설치를 포함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는 이유다. 이마저도 기대할 수 없다면? 정상적인 절차를 통해서 이룰 수 없으면 다시 시민들이 법정에서 신발짝을 내던지며 재판을 거부하거나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설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오는 10월 20일 저녁, 시민들은 3차 사법적폐 청산대회를 연다.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광장에서 겨울을 나야 할 일이 2년 만에 다시 오고 있는 것만 같다.
 
박래군 뉴스토마토 편집자문위원(pl317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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