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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이종서 "동아시아철도공동체, 남북 국민 통합위한 첫 단추"
"'개별 국가보다 공동체 이익이 앞서야한다'는 공감대, EU로 실현"
"동북아 평화공존 과정서 제일 중요한 것은 각 국의 경제적 이익"
2018-10-25 06:00:00 2018-10-25 06:00:00
[뉴스토마토 최한영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경의선과 경원선의 출발지였던 용산에서 나는 오늘 동북아 6개국과 미국이 함께하는 ‘동아시아철도공동체’를 제안한다”며 “이 공동체는 우리의 경제지평을 북방대륙까지 넓히고 동북아 상생번영의 대동맥이 되어 동아시아 에너지공동체와 경제공동체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철도공동체를 토대로 한 동북아 각국의 경제협력이 동북아 다자평화안보체제로 가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문 대통령은 “1951년 전쟁방지, 평화구축, 경제재건이라는 목표 아래 유럽 6개 나라가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를 창설했다”며 “이 공동체가 이후 유럽연합(EU)의 모체가 됐다”고 소개했다. 프랑스 외무장관 로베르 슈만의 제안으로 네덜란드·독일·룩셈부르크·벨기에·이탈리아·프랑스이 결성한 ECSC는 문 대통령의 설명처럼 이후 유럽원자력공동체(유라톰·EURATOM), 유럽공동체(EC) 등을 거쳐 EU로 발전하는 디딤돌 역할을 했다.
 
이종서 EU정책연구소 원장은 지난 17일 기자를 만나 “ECSC 이후 전개된 유럽의 역사는 ‘개별 국가의 이익보다는 공동체의 이익이 더 앞서야한다’는 이상주의적인 생각이 실현됐다는 함의가 있다”고 소개했다. 유럽 내 석탄·철강이라는 작은 분야에서의 협력이 EU 형성으로 이어졌던 것처럼 남북, 혹은 동북아 각국이 철도연결을 시작으로 궁극적으로 정치적인 연합에까지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종서 EU정책연구소 원장은 “동북아 평화공존 과정서 제일 중요한 것은 각 국의 경제적 이익”이라고 강조했다. 사진/이종서 원장 제공
 
유럽 내 경제·안보기구 형성 성공요인은 ‘점진성과 상호이익 추구’
 
이종서 EU정책연구소 원장은 지금의 동북아시아만큼 이해관계가 복잡했던 유럽 각 나라의 경제·안보분야 협력과정을 길게 설명했다. 지금의 우리에게도 충분한 함의가 있기 때문이다.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는 1951년 유럽 내 석탄·철강 자원의 공동관리와 공동시장 창설을 목표로 창설됐다. 이를 처음 제안한 사람은 로베르 슈만이지만 경제학자인 장 모네도 역할을 했다. 부유한 사업가 집안에서 태어난 모네는 어린시절 학교를 그만두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아버지 사업을 도왔다. 이 원장은 “이 과정에서 모네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부모님, 혹은 주변 사람들이 생각하는 독일인·미국인이 다르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며 “나이가 들면서 공동의 이익이 개별국가 이익보다, 국가별 단합보다는 유럽의 단합이 중요하다는 생각도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런 생각이 ECSC 설립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각 국의 이해관계도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졌다. 2차 세계대전 당사국이었던 독일은 국제무대에 다시 등장하는 장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프랑스는 독일이 과거처럼 국력이 급신장해 위협요소가 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익이었다. 프랑스와 독일 접경지역에 위치한 알자스·로렌지역 석탄·철강 이용이 필요했던 이탈리아와 베네룩스 3국도 끌어들였다. 이들 6개국은 1957년 로마조약을 체결하고 이듬해 유럽경제공동체(EEC)를 출범시켰으며 이후 유라톰, EC 등으로 이어졌다. 회원국 수도 점점 늘어났다.
 
유럽 각국은 경제분야 교류·협력 속 다자안보체제 형성도 병행했다. 냉전 시절 유럽 각국이 벌여온, 끝없는 이념대립과 군비경쟁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냉전 중임에도 동서 양 진영을 포괄하는 35개국이 참여한 유럽안보협력회의(CSCE)는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냉전 속에서도 각 국이 필요로 했던 군비축소 문제를 논의했다는 함의를 지닌다. 이같은 노력은 1995년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탄생으로 이어졌다.
 
이 원장은 이들 경제·안보기구 형성과정의 특징을 ‘점진성과 상호이익 추구’라고 설명했다. 이 원칙이 지켜졌기에 순간순간의 어려움을 뚫고 이후 EU 창설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밝힌, 경제·안보분야 모두를 포괄하는 동아시아 구상에 대해 이 원장은 “여러 정황상 (꺼내든 타이밍이) 맞는 듯하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평화공존을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경제적인 이익”이라며 “(재정적자 문제로) 동아시아에서 군비 감축이 필요한 미국, 경제개발을 국정 우선순위로 내세우고 있는 북한, 기존 산업들의 경쟁력 약화로 일자리 창출이 시급한 한국의 이익을 조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문 대통령은 지난 23일 인천 송도 컨벤시아에서 열린 제17차 세계한상대회 축사에서도 “완전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정착 토대 위에 남북이 자유롭게 오가며 하나의 경제공동체를 실현할 때 우리 민족과 경제는 새롭게 도약할 수 있다”며 경제협력 필요성을 재차 강조한 상태다. 이 원장은 “미국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점을 제외하더라도 (구상을 현실화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면서도 “‘너무 허황되고 상상에 의존한 것 아니냐’는 비판에 대한 대안을 (문 대통령이) 분명 마련하고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도자 차원의 교류 논의와 별개로 밑에서부터의 협력 필수”
 
지도자들의 교류 논의와 별개로 밑에서부터의 협력 필요성도 강조한 이 교수는 “동아시아철도공동체는 남북한 평화정착은 물론 남북 국민의 통합을 위한 첫 단추”라고 설명했다. 이 원장은 1990년대 유럽 유학 시절을 떠올리며 “다른 유럽 학생들로부터 ‘독일 사람이 지나가면 같이 가지 말고, 조심하라’는 말을 들었다. 독일에서 온 평범한 학생인데도 말이다”며 “그랬던 것이 2000년대 들어가니까 바뀌더라”고 회상했다. 남북은 물론 동북아 국민들이 상대국을 바라보는 시선이 좋지 않지만, 동아시아철도공동체를 시작으로 교류·협력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충분히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동북아 경제공동체 추진을 통해 한반도를 동북아 경제협력 허브로 도약시킨다’는 문재인정부 국정목표 달성은 밑에서부터 동의가 필수다. 이는 단순히 우리 국민들만의 동의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도시 간 협력 필요성도 언급했다. 그는 “원래 유럽도 대도시 위주로 발전이 이뤄지다보니 국경지대는 발전이 지체됐다”며 “국경지역 도시 발전을 위해 각국이 유럽지역개발기금(ERDF)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ERDF 규모가 축소되자 각 도시들이 물품 공동구매 등을 위해 자체적인 연합구조를 결성·운영했다는 것이다. 이 원장은 “도시 간 협력을 위한 포럼도 활성화되고 그들 나름대로의 공동체·시민의식을 만들어가고 있다”며 “동북아 각 국 분위기상 쉽지는 않지만, 지금부터라도 도시들이 노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도자의 노력과 따로 놀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정섭 국방부 기획조정실장은 책 ‘외교상상력 - 지나간 백년 다가올 미래’에서 “이제 프랑스와 독일 간의 전쟁은 더 이상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서유럽의 안보지형은 완전히 바뀌었다. 서유럽은 EU 공동체를 향해 통합되면서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낸 것”이라며 “적자생존의 무정부상태가 아닌 일종의 안보공동체로 변모한 것이다. 유럽에서 가능했던 일이 동아시아, 그리고 한반도에서는 불가능할까”라고 반문한다.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상상이 현실화될지 주목해볼 일이다.
 
이종서 EU정책연구소 원장(가운데)이 올해 초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에서 열린 북한 경제특구 관련 세미나에서 발표하고 있다. 사진/이종서 원장 제공
 
최한영 기자 visionch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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