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포항·포스코)박태준 “포항에 은혜 갚겠다”
(7)지나친 피해의식이 포스코를 밀어내
2018-11-04 00:00:00 2018-11-04 00:20:12
[뉴스토마토 채명석 기자] 한편, 김영삼과 정치적으로 불화한 청암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은 1993년 김영삼 대통령 취임과 함께 포스코 회장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포스코 설립 이후 만 25년 만에 박태준 시대가 일단락하는 순간이었다.
 
청암의 영향력은 이미 그 전부터 약화되어 1992년 14대 총선에서도 포항에서는 이른바 ‘박태준의 사람’이 아닌 무소속 출신 허화평이 당선되기도 했다. 비록 지역구가 포스코가 위치한 남구가 아닌 북구이긴 했지만 기존의 투표 성향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따라서 현지에서 이는 ‘포항의 대사건’으로 입에 오르내리곤 했다. 포스코 회장 사임 이후 청암은 일시 야인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청암의 명예 회복 추진 및 정치적 재기 과정에서 개인적 차원에서 포항과의 융합 혹은 밀착은 오히려 더욱 더 강화되었다.
 
2008년 10월14일 포항시와 시의회를 방문한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가운데)이 박승호 포항시장(오른쪽)으로 부터 현안 사업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 자신의 뜻을 전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1997년 7월에 포항 북구에서는 국회의원 보궐 선거가 치러졌다. 이 보궐 선거는 허화평의 의원직 상실 때문이었다. 허화평은 1992년 14대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되었다가 곧 여당인 민자당에 영입되었다. 그러나 1996년 1월 제15대 총선 직전 12·12 및 5·18 특별법에 의해 전격 구속되었다. 하지만 1996년 4월에 실시된 보궐 선거에 옥중 출마, 정부 여당과 포스코의 지지를 입었던 민자당 후보를 제치고 거뜬히 당선되었다. 하지만 1997년 4월 대법원의 최종 판결에 의해 허화평은 의원직을 상실했다. 바로 이 보궐 선거에 청암은 무소속으로 출마하였다.
 
선거 캠페인 과정에서 청암은 무엇보다 포항에 대한 애정과 포항의 미래 발전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 무렵 포항에서도 청암에 대한 향수가 나름대로 일어나고 있었다. 청암의 포스코 퇴진 이후 포항 지역 경제가 30년 만에 곤두박질치고 있다는 정서 때문이었다. 1997년 2월, 청암에게 포항 제1호 명예시민증이 수여된 것도 이런 맥락에서였다. 이는 포항시와 포항시의회, 그리고 포항의 민간단체들이 주도한 것으로 “하루 빨리 고향이나 다름없는 영일만의 품으로 귀환하기 바란다”는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사실 포항에서는 한편에서는 포스코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내부 자성론도 없지 않았다. 가령 포항 최초의 민선 시장인 박기환은 “포스코도 기업인데 기업의 논리를 너무 무시해서는 안 되며, 포항 시민들도 지나친 피해 의식에서 벗어나고 정치인들도 포스코를 더 이상 이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1995년 6·27 지방 선거에서 민주당 출신으로 영남 지방에서 당선된 유일한 시장이었다.
 
국회의원 허화평 역시 “포스코의 책임도 있지만 시민의 책임이 더 크다”는 입장이었다. 그는 또한 지역의 지도자들이 더러는 각개 약진으로 포스코 경영진과 결탁하여 자기 개인의 이권 챙기기에 급급한 나머지 포스코 경영진이 포항을 가볍게 볼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여당 출신 이상득 의원은 “포스코 사람들도 마음을 열어야 하지만 포항 사람들도 마음을 좀 바꿔야 한다. 포항이 발전하려면 대구같이 되지 말고 서울이나 부산같이 되어야 한다. 외지 사람들이 서울이나 부산에 가면 객지 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대구에 가면 객지 의식을 갖게 된다. 그래서 대구가 크지 못한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시나브로 포항은 청암 자신의 정치적 고향으로 변하고 있었다. 선거에 임하면서 청암은 “칠십 평생 항상 자신의 의지보다는 국가의 이익을 위해 자신을 던져왔는데, 1997년 국회의원 보궐 선거에서는 처음으로 자신의 결정대로 움직여 봤다”고 술회했다. 그리고 그는 “포스코가 아닌 포항을 새롭게 만들어 과거의 송구스러움을 갚겠다”고 약속했다. 청암은 “지역적으로 봤을 때, 지난 1992년에 내 입으로 포항 시민들에게 약속한 일들을 직접 내손으로 챙기겠다. 25년 동안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고 포항 시민에겐 본의 아닌 오해도 받았는데, 이젠 포스코를 성공시키는 과정에서 도움 받았던 포항 시민에게 새로운 방식으로 은혜를 갚아볼 거야”라고 말했다. 보궐 선거에서 청암은 민주당 후보 이기택을 압도적인 차이로 꺾고 당선되었다.
(자료: 박태준과 지방, 기업, 도시 - 포철과 포항의 병존과 융합, 전상인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
 
채명석 기자 oricms@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