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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마시멜로 챌린지
2018-11-24 06:00:00 2018-11-26 14:39:54
#1. 마시멜로 챌린지. 처음 보는 사람 4명이 한 팀을 꾸린다. 그들에게는 20가닥의 스파게티 면과 접착테이프, 실, 마시멜로 1개가 주어진다. 이 재료를 이용해 탑을 쌓는다. 주어진 시간에 주어진 재료로 탑을 가장 높이 쌓은 팀이 이기는 게임이다. 그렇다면 유치원생으로 구성된 팀과 ‘가방끈 긴’ 어른들로만 구성된 팀이 겨루면 누가 이길까?
 
#2. 햄릿 증후군(Hamlet Syndrome). 햄릿은 영국의 극작가 윌리엄 세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의 주인공이다. 삼촌이 자기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데려가 결혼하자 고민에 휩싸인다. 자살을 택할 것인가, 삼촌을 죽이고 복수할 것인가? 햄릿은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Frailty, thy name is woman)”라며 어머니의 부정(不貞)을 원망하면서도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고뇌와 번민의 밤이 계속된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얼마 전 읽은 정재승 KAIST 교수의 <열두 발자국>에 나오는 사례다. ‘생각의 모험으로, 지성의 숲으로, 지도 밖의 세계로 이끄는 열두 번의 강의’라는 다소 긴 부제가 붙었지만, 나는 그냥 이 책을 ‘선택과 결정에 관한 뇌 과학’으로 읽었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선택과 결정의 순간과 마주한다. 불만이 있어도 꾹 참고 안정적인 회사를 계속 다닐 것인지, 불안정하더라도 자신의 자유로운 뜻을 펼칠 수 있도록 사업을 할 것인지 고민한다. 지금 만나는 상대와 결혼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혹은 계속 만날지 헤어질지 결정해야 하는 순간도 온다. 소소한 문제도 많다. 버스를 타고 갈 것인지 지하철을 타고 갈 것인지, 짬뽕을 먹을지 짜장면을 먹을지.
 
정재승 교수에 따르면 이렇게 마주하는 선택과 결정의 순간에 어떤 자세를 취하느냐가 그 사람의 존재를 규정한다. 뇌과학적 관점에서 호모 사피엔스는 ‘선택하는 인간’인 셈이다. 결국, 어떤 한 사람의 현재 모습은 그동안 그 사람이 과거에 내렸던 선택의 총합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한 사람의 미래는 지금 그 사람이 내리는 선택의 총합이 될 것이다. 
 
마시멜로 챌린지의 답은 우리의 예상과 다르다. 톰 우젝이라는 학자가 실제 실험을 했다(이렇게 호기심 많은 사람 때문에 세상은 돌아간다). 실험 결과는 다소 충격적이다. ‘가방끈 긴 어른들’이 쌓은 탑의 높이가 유치원생들이 쌓은 탑의 높이보다 현저히 낮았다. 아는 것도 많고 경험도 많은 MBA 학생들이나 변호사가 기껏해야 스파게티 하나 높게 쌓지 못한다니. 
 
그건 문제를 대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선 어른들은 명함을 주고받고(왜 안 그러겠나) 인사를 나눈다. 자신들의 지식과 경험을 총동원해 여러 계획을 짠다. 계획이 완성되면 쌓기 시작한다. 주어진 시간이 다 되어갈 때쯤 마시멜로를 올려놓는다. 그 순간 마시멜로 탑은 대부분 무너진다고 한다. 유치원생들은 달랐다. 명함 주고받기 따위 없다. 자기소개도 없다. 무엇보다 계획을 짜지 않았다. 그냥 쌓았다. 도중에 무너지기도 하지만, 그러면 다시 쌓았다. 실험 결과, 유치원생들은 주어진 18분 동안 적게는 세 개, 많게는 여섯 개의 탑을 완성했다고 한다. 
 
‘햄릿 증후군’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무엇을 선택할지 몰라 고통스러워하는 심리상태를 말한다. 이 역시 실험으로 증명됐다. <열두 발자국>을 인용하자면 미국 컬럼비아대학 아이엔가, 스탠퍼드대학 레퍼 박사는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다. 식료품 계산대 근처에 과일잼 판매 부스를 설치하고 시간마다 진열을 바꿨다. 한 번은 6종류의 잼을, 다음에는 24종류의 잼을 판매했다. 당연히 24종류의 잼을 진열했을 때 더 많은 사람이 북적였다. 하지만 실제 구매는 6종류만 진열했을 때 가장 많았다. 선택지가 많아지면 자신의 선택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한 해가 저물 때면 지난 선택의 시간을 돌아보게 마련이다. 동시에 선택과 결정을 기다리는 일이 많아진다. 그래서 연말연시가 되면 더 심란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돌아보니 어떤 결정을 내리지 않고 미루거나 덮어두는 일이 많았다. 그것을 ‘새해 계획’이라는 거창한 이름에 슬쩍 끼워 넣는 방식으로 나의 우유부단함을 가려오곤 했다. 일단 해보고, 무엇이든 결정하는 것이 그렇지 않았을 때보다 낫다는 게 마시멜로 챌린지와 햄릿 이야기의 교훈이다. 
 
낙엽도 지고, 어느덧 소설(小雪)이라니 문득 송구(送舊)의 상념에 젖었다. 슬기롭게 영신(迎新)하고 싶으나 뜻대로 될지 모르겠다. 그게 무엇이든 선택과 결정을 미루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스스로 바랄 뿐이다. 
 
김형석 과학 칼럼니스트·SCOOP 대표(blade3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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