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시론)알고리즘거래와 AI 그리고 기관투자자의 역할
2018-12-03 06:00:00 2018-12-03 06:00:00
1987년 10월19일 미국 다우존스지수가 22.6%나 폭락했다. 이날이 월요일이라 '블랙먼데이'라 부르는데, 대공황 때인 1929년 중 하루 12.8% 하락한 것보다 크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 주가가 급반등하고 주말까지 하락한 주가의 60% 정도를 회복한다. 완전히 회복하는 데 걸린 기간은 채 2년이 되지 않았다. 대공황 시기에 주가가 여러 날 반복해서 폭락하고 완전히 회복할 때까지 수십 년 걸린 것과 대조적이다.
 
미국 증시를 강타했던 주가 폭락의 원인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블랙먼데이 당시 대통령 직속 브래디위원회는 주식과 지수선물·옵션시장의 엇박자가 이어지면서 나타난 '폭포효과(cascade effects)'가 주요 원인이라고 발표했다. 
 
폭포효과는 주식포트폴리오와 지수선물의 차이가 나타나면 한쪽을 사고 다른 한쪽을 파는 거래 중에 발생한다. 매도 가격의 하락이 매수 가격의 하락을 야기하고 이 과정이 연쇄적이고 반복적으로 나타나면서 폭락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주식과 지수선물을 사고파는 거래를 차익거래하고 하는데 통상은 두 가격의 차이를 좁혀서 시장을 효율적으로 만든다. 
 
이 사건 이후 뉴욕거래소는 프로그램거래와 서킷브레이커라는 제도를 시행한다. 프로그램거래는 한 번에 일정 규모 이상 주문할 때 별도 경로를 택하도록 하는 것이고, 서킷브레이커는 지수가 일정 이상 변동하면 프로그램거래를 지연시킨다. 또한 지수변동이 지속되면 시장 전체를 중단한다. 시장의 급변 상황은 블랙먼데이 이후에도 플래시 크래쉬(flash crash)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어 대부분의 증시는 다양한 변동성 완화장치(volatility interrupt)를 마련하고 있다.
 
그런데 블랙먼데이 이후 나타난 증시의 폭락 현상은 기업의 실적과 상관없이 주식·파생시장이 어긋나거나 프로그램화된 대량의 주문으로 시작된 경우가 많았다. 일례로 수백 종목의 프로그램거래가 한 번에 시장에 나오는 경우 주가지수를 변동시켜 급등락을 초래할 수 있다. 더구나 90년대에는 하루 수백만 건을 주문하는 알고리즘거래가 등장하면서 증시의 변동성 위험을 증가시키고 있다. 
 
현대의 증권시장은 백만분의 1초 정도의 작은 시간에 거래가 이루어진다. 이 상황에서는 컴퓨터로만 인지할 수 있는 가격변화를 먼저 아는 투자자가 위너가 된다. 미국에서는 시카고의 선물·옵션 거래와 뉴욕의 주식거래 사이의 가격 차이를 컴퓨터와 광케이블을 통해 먼저 파악하고 초당 수만 건을 거래하는 고빈도거래(HFT)가 수익을 얻은지 오래되었다.
 
고빈도거래는 주문의 제출과 평가가 컴퓨터로 이루어지는데 머신러닝과 같은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을 이용하며, 시장 상황과 주문집계 데이터를 분석하여 최적 주문을 시장에 제시한다. 마치 인공지능이 게임을 하듯 주식을 거래하며, 알고리즘은 비공개이지만 개념적으로 서로 유사해 시장의 변동성을 가속화시키는 것으로 의심받기도 한다.
 
문제는 플래시 크래쉬 당시 지적된 것과 같이 공정성 이슈가 불거지거나 또다시 블랙데이를 만들어 시장을 급락시키고 패닉을 확산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간간히 나타나는 금융위기 재발론이 여러 원인을 거론하는 가운데 맥킨지글로벌의 파트너 수잔 런드는 알고리즘거래에 의해 촉발되는 연쇄반응을 들기도 한다. 글로벌 증시의 동조화로 한 시장의 패닉이 다른 시장으로 전이되면서 연쇄반응을 일으켜 시스템 전체를 망가뜨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비롯한 선진 증시가 빠른 시간 내에 적정한 가치를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기관투자자가 완충 역할을 해줬기 때문이다. 이들은 합리적인 가치평가를 통해 급변하는 시장의 충격을 흡수하고 고객의 자산가치를 지켜왔다. 대공황 이후 수많은 위기가 반복됐지만 장기적으로 주가 상승이 이어진 것은 기관투자자가 시장안정을 선도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 비중을 줄이기로 한 것은 대단히 우려스럽다. 
 
한국 증시는 상당히 저평가된 상태에서 외부의 부정적 충격에 과도한 반응을 보이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더구나 개인 투자자의 직접투자 비중이 높아지면 그 정도가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 만일 다시 금융위기가 나타나는 경우 가장 큰 손실은 개인 투자자의 몫이 될 것이고 이로써 심각한 후유증을 야기할 것이다. 우리 증시가 견조한 우상향 곡선을 보이도록 국민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자의 역할이 강조돼야 할 시기인 것 같다.
 
최욱 코넥스협회 상근부회장(choica@konex.or.kr)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