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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혁신을 산업으로 승화시키려면
2019-01-10 00:00:00 2019-01-10 00:00:00
10여년 전 강원도 홍천에 제로에너지하우스라는 집을 지은 분이 있다. 추운 나라에서 해외 근무를 한 경험이 건축에너지에 관심을 갖도록 했다고 한다. 우연히 그 분이 쓴 책을 보고 급기야 홍천까지 답사를 감행했다. 그런데 관심있는 사람이 나만이 아니었다. 밀려드는 문의에 제로에너지하우스에서는 아예 정기적으로 설명회겸 세미나를 개최했다. 
 
놀랍게도 영하 20도의 날씨에 석유·가스와 같은 화석연료의 도움이 전혀 없이 단열과 열교환을 통한 공기순환으로 따뜻한 실내기온을 유지하고 있었다. 당시에 듣기로 처음엔 건축업계에 노하우를 전수해서 낮은 가격에 제로에너지하우스를 보급하려 했으나 실패했다고 한다. 그래서 자기자금으로 직접 사업체를 만들어 시공하기로 결정했단다. 10년이 지난 현재 패시브하우스라고도 부르는 에너지절감 건축이 확산된 것은 사실이나 생각만큼 광범위하게 전파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혁신의 원조격인 미국을 보기로 하자. 인공 쇠고기를 만드는 임파서블푸드와 가상현실(VR) 기업인 매직립이 재미있을 것 같다. 인공 쇠고기가 나온지는 수십 년이 지났지만 진짜 쇠고기를 대체하지 못했다. 임파서블푸드는 쇠고기의 독특한 맛을 내는 헴(Heme)분자를 발견하고 대량으로 배양하는 기술을 찾아냈다. 실제로 임파서블 버거를 먹어본 사람들은 쇠고기 버거와 차이를 찾지 못했다. 뉴욕에는 임파서블 버거를 파는 곳이 늘어나고 있고 대형 식품체인인 크로거를 통해서도 구입할 수 있다. 2011년 회사 설립 후 마이크로소프트 등으로부터 상당한 투자를 받기도 했다.
 
가상현실 업체인 매직립은 2010년에 설립되었지만 작년에 첫 작품이 생산되었다. 구글, 알리바바, 퀄컴 및 AT&T 등으로부터 수십억 달러의 투자를 받았지만 아직 회사가 내놓을 작품에 대해서 비밀스러운 것이 많다. 처음 출시한 가상현실 헤드셋에 대한 대체적인 분위기는 실망이지만 유튜브 동영상으로 매직립 고래(Magic leap whale)를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두꺼운 진공관에서 평면으로 진화되어 온 디스플레이 장치가 한순간에 3차원 공간으로 확장되면서 알쏭달쏭한 증강현실(AR)과 복합현실(MR)의 세상이 다가왔다는 것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세 가지 혁신 아이디어와 이들의 사업화를 봤다. 한 곳은 우리나라고 나머지 두 군데는 미국이다. 비슷한 것은 세 곳의 아이디어가 모두 이전부터 있었던 것이라는 점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에너지절감 건축은 독일이 원조다. 패시브하우스 기술도 독일에서 많이 발전했고 관련 건축자재 역시 상당 부분 수입품이 주종을 이룬다. 당시 설명을 듣다가 우리와 같이 기득권과 규제가 강한 곳에서 사업이 가능할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오죽하면 직접 업체를 만들어 수주와 시공을 하게 되었을까 하는 것부터 외부로부터 어떤 투자나 지원을 받았을지 궁금했다. 홍천의 살둔 제로에너지하우스는 아직 개인사업체로 주식회사가 아니다.
 
혁신 중소·벤처를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미국처럼 비즈니스 자체의 자생력이 강한 곳에서도 정부의 역할은 중요하다. 세상을 뒤집어 놓은 스마트폰의 기술이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과 같은 정부기관의 선도와 지원하에 출현한 것은 이미 다 아는 사실이다. 과거 개발독재 시절처럼 사전에 선진국을 모방한 산업정책을 통해 특정 분야를 지원하는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사례에서도 봤듯이 어느 분야에서 나타날지 예측이 어려운 혁신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나라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 아이디어를 가진 수많은 스타트업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판교 벤처벨리에서 카카오와 네이버로 인수되는 신생 벤처의 소식도 간간히 들리고 있다. 그동안 꾸준하게 진행되어 온 모태펀드와 성장사다리펀드를 통한 벤처지원도 속도를 내고 있다. 다만, 십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 실제로 투자된 금액은 아직 적고 초창기 아이디어에 투자하는 엔젤매칭펀드의 규모는 천억원도 되지 않는다.
 
정부의 역할은 기득권 보호 시스템의 혁파와 산업으로 육성할 만한 혁신 아이디어를 발굴하여 지원하는 것이다.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도 사실이지만 현재의 시스템으로는 상당히 부족하다. 대대적인 리스트럭처링이 필요하다. 우울한 경제 전망이 쏟아지는 지금 거의 유일한 돌파구는 혁신 중소·벤처의 육성이다. 거저 잘 되지 않을 것이며, 어렵고 힘들게 애를 써야 잘 될 것이다.
 
최욱 코넥스협회 상근부회장(choica@konex.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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