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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한류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하여
2019-01-31 09:13:15 2019-01-31 09:13:15
전재경 사회자본연구원장
문명사회의 문화는 동심원처럼 이웃으로 전파된다. 그리스 고전문명이 그랬고, 르네상스가 그랬다. 황하문명과 인도의 불교는 아시아권에서 밝게 빛났지만 서구의 벽을 넘지는 못했다. 20세기 후반에 한국의 영화와 드라마가 아시아권을 석권하였음은 역사에 비하여 그 위세가 떨어졌던 한국 문예의 성가를 크게 높였다. 최근 방탄소년단(BTS)의 빛나는 업적은 영화와 드라마에 이어 한류의 맥을 잇는 쾌거이다. BTS의 장기흥행을 염원한다.
 
BTS의 공연을 담은 ‘러브 유어셀프 인 서울’은 BTS가 신명에 살고 신명에 우는 한국인의 후예임을 보여준다. ‘탑건’ 시절의 톰 크루즈를 울게 만들기 충분한 미소년들이 여성음색을 무색하게 만드는 미성으로, 눈부신 무대에서 보석으로 꾸민 화려한 백색의상을 걸치고 신바람 나는 춤을 추면서 “너 자신을 사랑하라(Love Yourself)”는 메시지를 담은 노래를 부른다. 뉴스에서는 늘 7명이 같이 무대에 등장하지만. ‘러브 유어셀프’ 라이브 공연에서는 7인7색의 역량으로 각자 또는 무리를 이루어 무대를 주름잡으면서 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관중을 열광하게 만든다.
 
세계인들이 BTS에 열광하는 데에는 문화인류학적 이유가 있었다. 정상의 BTS는 기획사와 당사자들의 ‘도광양회’의 열매이지만, 다른 한편 이들은 ‘신명’이라는 한국인의 유전자를 타고 났다고 믿고 싶다. 한국인들은 전통사회의 굿판에서 그리고 국악과 농악 그리고 4물놀이에서 신명이 무엇인가를 입증하였다. 한국의 아이돌 스타들은 영화나 드라마의 극적 요소에서 오는 감동 대신에 신명을 선사한다. 이야기 기반의 악극을 기본 틀로 삼는 오페라, 뮤지컬 또는 발레는 가슴을 적시지만, 아이돌들의 공연은 온몸을 들뜨게 만든다.
 
서구의 록 스타들은 노래에 머물렀지만, 한국의 아이돌들은 노래보다 춤의 요소가 더 강하다. 로큰롤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는 몸을 적절히 흔든 가수였지만 춤꾼은 아니었다. 본고장 영국보다 한국에서 더 많은 관객을 동원한 음악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퀸과 프레디 머큐리는, 한국인들의 어깨를 들썩이게 만들었고 극장에서 ‘떼창’(싱어롱)을 유발하였지만, 록 음악의 한계를 넘지는 못했다. 머큐리는 춤을 추고 싶어 몸살을 앓았지만 결국 노래에 머물렀다. 이에 비하여 한국의 아이돌들은 노래와 춤을 융합하여 오페라나 뮤지컬과 같은 음악극이 넘지 못한 음악춤(musical dance)으로 세계를 흔들었다.
 
한국인의 신명을 세계화시킨 아이돌들의 ‘음악춤’이 다른 문예 장르처럼 한때의 바람에 그치지 않고 르네상스처럼 오랜 세월을 풍미하려면 한국과 한국인들은 어떤 행동으로 나아가야 할까? 문화체육관광부는 고전과 정통에 머물고 융합에는 관심이 없는 것일까? 지금처럼 그냥 시장에 맡기는 것으로써 정부가 할 일을 다 하였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공항 하나를 지으면서도 경제적 파급효과를 한껏 부풀리면서 문예산업의 파급효과에는 그토록 인색한 이유가 무엇일까? 정부의 인색함은 문예에 국한된 일이 아니다. 한국에 대한 베트남인들의 인식을 일거에 바꾼 축구인 박항서 감독에게 우리 정부와 정치인들은 내일이면 사라질 찬사 이상의 그 무엇을 그에게 베풀었을까?
 
아이돌들의 음악춤과 함께 문예 한류를 형성할 수 있는 차세대 장르를 꼽으라면, 한국화된 뮤지컬과 발레를 들 수 있다. 클래식 애호가들은 백건우, 정명훈, 정명화, 조수미, 김선욱 씨 등 유명인들을 떠올리지만 클래식은 속성상 한국화에 한계가 있다. 다행스럽게 뮤지컬은 이미 ‘대중’ 음악극답게 대중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뮤지컬은 스토리텔링의 국제화만 성공하면 승산이 있다. 이에 비하여 한국의 발레는 일취월장하는 실력에 비하여 아직 대중화가 힘들다. 런던에서는 ‘오페라의 유령’이 수년씩 공연을 지속하는데 우리나라의 정상급 발레단들은 초단기 공연에 그친다. 석달 열흘을 연습해 하루 공연하는 발레리나나 발레리노들을 보면 우리나라는,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에도 불구하고, 무늬만 OECD라는 생각이 든다. 공공건물들이 많지만 이들에게 무상의 무대가 제공되지 않는다.
 
그러나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보헤미안 랩소디’의 퀸의 경로를 우리 뮤지컬과 발레에 권하고 싶다. 광시곡으로 알려진 랩소디는 도입부에서 이국적인 느낌을 주고, 우울부터 환희에 이르기까지 감정의 폭이 넓어 청중을 사로잡는다. 토마세크, 리스트, 브람스, 사라사테, 라벨 등의 작곡가·연주가들은 음유시인이나 짚시들의 전승 가락을 클래식으로 정착시켰는데, 퀸은 이를 다시 팝에 접목시켜 대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우리 발레는, 클래식 음악처럼 고전에 얽매이기 쉽다. 아이돌들의 음악춤이나 랩소디에서처럼 젊은 무용가들이 과감하게 클래식과 모던을 융합시켜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기를 기대한다. 이제 무용이 음악과 더욱 밀접하게 융합되어야 한다.
 
전재경 사회자본연구원장(doctorch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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