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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조성렬 "'포괄적 안보·안보 교환론' 통해 비핵화 해법 마련해야"
'역사의 문을 빠져나가 과거로 가는 신의 옷자락을 붙잡으라' 격언, "지금도 통해"
"경제적 편익만으로 북핵문제 해결 어려워…체제안전 보장 대안 제시해야"
2019-04-30 06:00:00 2019-04-30 06:00:00
[뉴스토마토 최한영 기자] 2월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부정적인 기류가 흐르는 중이다. 기존 남북미 중심으로 이뤄지던 비핵화 대화에 중국·러시아 등도 발을 걸치면서 우리 정부의 운신의 폭이 좁아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대표적인 한반도 문제 전문가인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은 19세기 후반 독일제국 통합 과정에서 '철혈재상' 비스마르크가 했던 "역사의 문을 빠져나가 과거로 가고 있는 신의 옷자락을 붙잡으라"는 말을 소개한다. 북한 핵문제 해결을 통해 한반도 평화·통일의 길을 열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 위원은 최근 발간한 책 '한반도 비핵화 리포트'(백산서당)를 통해서도 이같은 생각을 전했다.
 
지난 26일 서울 서초동 평화재단에서 열린 ‘한반도 비핵화 리포트’ 북콘서트에 참석한 패널들이 토론하고 있다. (왼쪽부터)원동욱 동아대 교수, 김지윤 MBC 100분 토론 진행자,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 남기정 서울대 교수. 사진/뉴스토마토
 
평화협정 등 '연성안보' 외에 대북 군사위협 제거 등 '경성안보' 맞물려야
 
노무현·이명박정부 당시 대북정책은 각각 '평화경제론'과 '비핵·개방·3000'으로 요약된다. 선후관계는 다르지만 모두 경제적 지원을 바탕으로 핵문제 해결을 시도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에 대해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은 29일 "북한 입장에서 볼 때 핵무기는 체제유지의 최종병기"라며 "경제적 보상이나 관계 정상화, 그에 따른 경제적 편익만으로는 북핵문제 해결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언급했다. 조 위원은 "경제문제로 핵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재차 강조하며 "핵문제로 요약되는 안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북한 체제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주창하는 건 '포괄적 안보-안보 교환론'이다. 수교와 불가침조약, 평화협정 등 외교와 국제제도로 뒷받침하는 '연성안보'로는 한계가 있으며, 미국의 대북 군사위협 제거를 포함한 '경성안보'가 맞물린 해법을 제시해야 북한이 핵을 포기할 수 있다는 논리다. 이와 관련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해 3월5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우리 측 대북특사단을 만나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체제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체제안전 보장(연성안보)과 군사위협 해소(경성안보)를 비핵화 조건으로 제시한 셈이다.
 
조 위원은 "북한이 이 주장을 밀고 갔으면 많은 성과를 냈을텐데, 지난해 9월 리용호 외무상이 제재 완화 문제를 꺼냈고, 11월에는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부당한 제재 해제가 없으면 우리는 핵포기를 하기 어렵다'고 요구했다"며 "이게 하노이까지 이어진 것이다. 북한이 이번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제재해제라는 작은 것만 계산에 넣다보니 정작 미국이 원하는 핵무기 폐기에 대한 준비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상황은 다시 바뀌는 중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대북)제재 해제 문제에 더는 집착하지 않을 것"이라며 앞으로는 체제안전 보장문제를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겠다고 선언했다. 조 위원은 "하노이 회담 결렬 원인을 북한 내부에서 '경제카드를 꺼냈기 때문'으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25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북러 정상회담 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북한에 자국 안보와 주권유지를 위한 보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조 위원도 "조속히 외교적 협상을 재개해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북한의 '합리적인 안보우려'를 해소시켜줄 수 있는 경성·연성안보 방안을 북한에게 제시해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 시급해졌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어떻게든 북한의 핵포기 약속과 그에 상응한 적절한 대북 안전보장방안 제공을 통해 안보-안보 교환의 등가점을 새롭게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북한의 '합리적인 안보우려'를 해소시켜줄 수 있는 경성·연성안보 방안을 북한에게 제시해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 시급해졌다”고 강조한다. 사진/뉴스토마토
 
"비핵화는 포괄적 합의와 일괄타결, 단계적 이행 3단계로 진행해야"
 
조 위원은 이 대목에서 '한반도형 비핵화 모델'을 제시했다. 포괄적 합의와 일괄타결, 단계적 이행 3단계로 진행하는 것이 골자다.
 
"포괄적 합의에는 비핵화의 대상과 범위(영변 핵시설의 정의와 생화학무기 및 단·중거리미사일 포함여부)와 상응조치 유형과 수준(종전선언 시점과 형식, 평화협정 방식, 경제제재 완화·해제 조건)을 포함한다. 이후 일괄타결은 크게 부분적 일괄타결(미래핵과 현재핵 이행계획과 과거핵 포기 명시)과 완전한 일괄타결(과거핵 이행계획)을 명시하며, 이를 시간차 방식으로 동시적·병행적으로 수행하는 단계적 이행에 들어간다."
 
문제는 우리 정부가 이같은 방안을 북미 양국에 제안·실현할 수 있을지 여부다.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신의 옷자락'을 잡아야 하지만 갈수록 이를 둘러싼 '플레이어'들이 많아지는 것도 변수다. 이 대목에서 조 위원은 "핵심적인 비핵화 당사자는 북한과 미국이다. 이들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며 "이 과정에서 한국이 제3의 방안(한반도형 비핵화 모델)을 내놓는 역할을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등 다른 국가들이 최종 단계에서 경제원조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핵심적인 협상은 북미가 진행하고 가능하면 한국이 포함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그는 "이제까지 (남북미 간의) 3차 방정식을 풀어야했다면, 이제는 (중일러를 포함한) 6차 방정식에도 대비할 때가 된 것 아닌가"라는 관측도 내놨다.
 
지난해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하루 전,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2018 남북정상회담 평양 전문가 토론회'에서 패널들이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조성렬 당시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 김연철 통일연구원장(현 통일부 장관), 이정철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조봉현 IBK경제연구소 부소장. 사진/뉴시스
 
"김정은, 이미 호랑이 등에 타" 비핵화, 되돌릴 수 없는 단계
 
조 위원은 "김 위원장은 이미 (비핵화라는) 호랑이 등에 탔다"고 단언했다. 다만 호랑이가 목적지에 다다랐을 때 북한 체제의 밝은 미래가 보장되는지, 아니면 엄청난 혼란이 올지는 아직 알 수 없다고 봤다. 결국 김 위원장의 앞으로의 리더십에 달렸다는 것이다.
 
이는 북한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북한의 혼란은 향후 한국의 진로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이를 위해 조 위원은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 3·1절 경축사에서 언급한 '신한반도체제' 구상의 내용을 채워가야 한다고 언급했다. 신한반도체제 구상 내 평화협력공동체·경제협력공동체 구현을 위한 군사공동위·경제공동위 등으로 구체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신한반도체제는 말 그대로 새로운 100년의 큰 그림을 제시하는 것이다. 100년 뒤까지 평화체제 논의를 이어가면 안된다. 그때는 이미 통일된 국가가 되어 있어야 하고 평화체제는 그 이전에 이미 실현되어야 한다. 핵문제도 평화체제 구축과정에서 해결해야 한다."
 
남북은 지금까지 두 번의 한반도 평화정착 기회를 가졌다. 첫 번째는 2000년 6월 첫 남북정상회담과 그해 10월 조명록 북한군 차수와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의 상호방문으로 열렸지만 그해 11월 미국 대선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당선되며 닫혔다. 2007년 10월 2차 남북 정상회담 개최로 얻은 두 번째 기회는 이후 한국 대선에서 '대북 강경파' 후보의 당선으로 사라졌다. 문재인정부가 맞이한 세 번째 기회는 어떻게 진행될지, 계속 지켜볼 일이다.
 
최한영 기자 visionch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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