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배기찬 "남북관계-한일관계 발전 선순환해야…일본, 미국에 미치는 영향력 커"
"패권국 미국·도전국 중국이 패권전쟁 중…지혜로운 외교전략 필요"
"세종 시기, '위대한 조선문명의 시대'…새로운 국가비전·국민통합 되새겨야"
입력 : 2019-06-04 06:00:00 수정 : 2019-06-04 06:00:00
[뉴스토마토 최한영 기자] 한반도 주변정세가 다시금 요동치는 중이다. 2월 말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후 비핵화 논의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는 가운데 지난달 초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까지 겹치며 상황이 꼬였다. 미중 무역분쟁은 좀처럼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한동안 숨을 죽이고 있던 일본은 미국과의 관계를 더욱 밀착하며 활로를 찾고 있다.
 
노무현정부 시기 청와대 동북아비서관을 역임한 배기찬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은 지난달 27일 기자를 만나 "지금은 세계 패권국인 미국과 강대해진 중국이 본격적인 패권경쟁을 벌이는 시기"라고 강조했다. 돈독한 한미관계를 바탕으로 중국과의 관계를 발전시키고 한일관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중연대에 직접 가담해서는 안된다는 입장도 분명히 했다.
 
배기찬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오른쪽 첫 번째)이 지난달 24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통일연구원 ‘신한반도체제의 비전과 과제’ 학술회의 시작 전 김연철 통일부 장관(오른쪽 네 번째) 등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코리아와 동아시아 흥망사 분석한 '코리아 생존전략' 저자
 
배기찬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은 지난 2005년 5월 '코리아 생존의 기로의 서다'를 펴냈다. 이 책을 두고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한국의 외교관계나 안보관계의 전략적 방향이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해 상당히 분석이 잘된 책"이라고 호평했다. 이 책이 노 대통령 자신의 '외교지침'이 됐다는 말을 한 적도 있다. 배 위원은 책에서 지난 2000여 년 간 한반도에서 명멸했던 각국의 역사를 '코리아' 개념으로 분석하고 대한민국의 나아갈 길을 제시한다.
 
2017년 4월에는 개정증보판 '코리아 생존전략'도 냈다. '패권경쟁과 전쟁위기 속에서 새우가 아닌 돌고래가 되기 위한 전략'이 부제인 이 책은 2005년판 내용 중 특히 7장(미·중의 패권대결과 코리아의 선택)을 대폭 개정해 지난 12년간의 변화를 새로 정리했다. 배 위원은 "2005년에 느꼈던, 한반도 정세를 둘러싼 문제의식이 개정증보판을 낸 2017년에도 여전하다고 느꼈다"며 "여기에 7장을 '중화제국의 부활' 대목으로 시작하면서 초판에서 부족했던 부분을 채웠다"고 설명했다.
 
배 위원은 동아시아의 세력관계를 면밀하게 분석한 끝에 "거대해진 중국에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일본과 아세안, 한국의 힘을 모두 합해도 부족하다"며 "그래서 미국의 힘이 필요하다. 오바마정부에서는 이를 위해 '재균형정책(rebalancing policy)'을 펼쳤다"고 지적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대륙세력인 중국·러시아보다 해양세력인 미국·일본의 힘이 더욱 강하다. 그러나 동북아만 보면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힘은 이제 팽팽해지고 있다"고도 분석했다. 그는 "한국이 어떠한 외교안보정책을 펼치는가에 따라 동북아의 세력균형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섣불리 미일 동맹 체제에 편입되거나 반일·친중노선을 펼쳐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또한 일본이 세계패권국 미국의 동아시아 제1파트너라는 점을 상기시키며 한일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국이 남북문제와 북한 핵문제 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미국이 항상 일본의 의견을 수렴해 대 한반도 정책을 펴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견해다.
 
중국의 힘이 갈수록 커지는 점도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한다. 그는 "현재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중국은 14조달러, 일본은 4조달러"라며 "노무현 대통령이 말했던 '동북아균형자론'에 입각한다면, 현실주의적인 힘의 균형 차원에서 본다면 거대해진 중국에 균형을 맞추기 위한 일본의 역할강화와 호주·인도의 힘까지 결합시키는 미일 양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필연적"이라고 했다.
 
한일관계 발전이 한미관계 발전, 나아가 북미관계 개선에 매우 중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는 "남북관계와 한일관계 발전이 선순환해야 한다" "남북관계가 발전할수록 한일관계가 발전하고, 한일관계가 발전할수록 이를 토대로 남북관계가 더 발전토록 해야 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이 과정에서 세간의 '동북아균형자론'에 대한 오해 불식에도 나섰다. 노무현정부 당시 외교안보정책이 중국을 중시하는 동북아균형자론으로 대표되는 것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노 대통령은 누구보다도 한미관계 강화에 힘썼다는 것이다. 배 위원은 책 초판본에서도 "동북아의 균형자를 염두에 두되, 그 때까지 우리는 인간생활 일반과 마찬가지로 외교에서도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노 대통령이 2005년 들어 3월까지 동북아균형자론을 집중적으로 언급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이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통해 한미관계를 성숙한 단계로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당시에는 지지자들로부터 비판을 많이 받았지만 이를 통해 한미관계가 돈독해졌고 문재인정부 출범 후까지 효과가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도 내놨다. 노무현정부 임기 내내 미 행정부 수장이었던 조지 W.부시 대통령도 지난달 23일 노 대통령 10주기 추도식에 참석해 이라크 전쟁 파병에 사의를 표하고, 한미 FTA가 양국 경제에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는 향후 한국의 외교정책 수립 과정에서도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그는 "미국은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통일이 가까워질수록 한국이 중국 쪽으로 간다'고 생각한다"며 "한국은 미국에게 지속적으로 '코리아는 독자적인 위치가 있다. 우리는 통일이 되어도 반미를 하거나 친대륙·반해양으로 가지 않는다. 너희(미국)와의 관계를 계속적으로 강화해 나간다'고 강조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를 토대로 향후 통일 과정은 미일중러 모두와 관계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통일된 코리아는 주변국 모두와 적대하지 않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친미, 친중, 친일, 친러해야 한다. 미국의 힘을 인정하면서도 섣불리 중국에 반대하거나 일본과 적대해서는 안된다."
 
배기찬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은 인터뷰에서 "돈독한 한미관계를 바탕으로 중국과의 관계를 발전시키고 한일관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진/뉴시스
 
"미중 무역갈등, 기술·경제적 냉전 양상"
 
미중 무역갈등을 두고 배 위원은 "2차 세계대전 후 미소 간에 이데올로기적·정치적 전쟁이 있었다면 지금 미중 간에는 기술적·경제적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며 "한국은 미중 양국으로부터 줄서기를 강요당하는 중"이라고 언급했다. 우리 정부의 전략적인 대응이 필요할 때라고 지적한 그는 "우리는 70년 간 미국의 동맹국이자 해양세력의 일환이었다"면서도 "급부상한 중국과 지난 20여 년 간 형성해놓은 경제관계, 거기서 생길 수 있는 기회요인 등을 생각하면 중국을 적으로 만들 수는 없다"고 전제했다.
 
배 위원은 "지혜가 필요한 때다. 화웨이를 둘러싼 문제에서 중국에게 '너희와 가까운 유럽 각 국이 미국 쪽으로 가고 있지 않느냐. 기술적인 문제는 미국 특허와도 관련된 문제'라는 점을 주지시키고 중국을 설득해서 이해를 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해양국가이자 대륙국가인 '해륙국가'의 비전을 구체화할 필요성도 밝혔다. "지난 70년 간의 관성을 생각하면 한국은 그냥 해양세력으로 살아갈 수 있다. 또는 미중의 갈등 속에서 새우처럼, 미중 양국이 수를 두는 대로 놓여지는 바둑돌처럼 살 수도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우리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야 한다. 우리 스스로 비전을 정하고 한걸음 한걸음 나아간다면 우리는 돌고래가 될 수 있고 '4두마차'의 기수가 될 수 있다. 섬이나 반도국가가 아니라 해양과 대륙 모두로 뻗어나가는 해륙국가가 될 수 있다."
 
현재 시도지사협의회 남북교류협력특별위원회 위원도 맡고 있는 그는 향후 남북관계 발전방안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아보였다. 그는 "북한과의 교류는 중앙정부만이 아니라 지방정부, 민간이 삼두마차가 되어 전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터뷰 말미 배 위원은 기자가 준비해간 코리아 생존전략 책에 '세종처럼'이라는 글을 남겼다. 그는 책에서 세종대왕 통치시기를 '위대한 조선문명의 시대'로 칭하며 "국민 개개인이 하늘의 백성이라는 개념을 국가운영에 완전히 구현하고, 세계적 보편성과 코리아의 특수성을 통일시켰다"고 강조했다. 코리아의 역사와 현실을 토대로 새로운 제도를 만들고 상호존중과 관용으로 민주적 토론문화를 만들어 협력적 파트너십을 발휘했다는 생각이다.
 
배 위원은 책의 결론이자 인터뷰의 맺음말로 국민통합을 강조했다. "우리나라에는 주변 강대국의 원심력이 강하게 작용할 뿐만 아니라 지금 분단돼 있다. 가만 놔두면 저절로 분열한다. 그래서 목적의식을 갖고 통합 노력이 필요하다. 권력을 공유할 수 있는 정치제도를 만들고 대화와 타협의 사회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배기찬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오른쪽 두 번째)이 지난달 24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통일연구원 ‘신한반도체제의 비전과 과제’ 학술회의에서 다른 참석자의 발언을 듣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최한영 기자 visionch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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