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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앤드류 양'에 주목하자
2019-09-30 07:00:00 2019-09-30 07:00:00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2020년에 치러질 미국 대선은 이미 시작됐다. 그러나 미국 정치의 혼란스러움도 대한민국 정치 못지않아 보인다. 최근 미국의 민주당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절차를 시작하기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스캔들'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의 아들 헌터 바이든에 관한 사건을 조사해달라고 압력을 넣었다는 내용이다. 이런 식으로 가면 내년 미국 대선에서도 정책은 사라지고 진실 공방과 진영논리가 지배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 가운데 진행되는 민주당 대선후보 예비경선에서 앤드류 양은 단연 돋보이는 후보라고 할 수 있다. 정책대안을 이슈로 선거를 치르고 있기 때문이다. 사업가 출신인 그는 1975년생으로 대만계 미국인 2세다. 앤드류 양은 조 바이든 전 부통령,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과 같은 민주당의 쟁쟁한 후보들 사이에서 활약하고 있다. 그는 만18세 이상인 모든 미국인에게 월 1000달러의 기본소득(Freedom dividend)을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내걸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앤드류 양의 주장은 매우 명쾌하다. 기술발전과 자동화·정보화로 일자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대안은 기본소득이라는 것이다. 그는 소매점포나 콜센터, 제조업 등에서 일자리가 줄어드는 걸 예로 들면서 기존 산업에서 일자리가 감소하는 건 이민자가 고용을 빼앗기 때문이 아니라 기술발전 탓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사라지는 일자리를 가지고 이민자만 탓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은 가짜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앤드류 양은 조건 없이 지급하는 기본소득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기본소득을 지급할 재원은 아마존이나 페이스북처럼 기술발전의 수혜를 입은 기업들로부터 세금을 걷거나 기업들이 개인정보를 활용해서 벌어들이는 수익을 환수해 마련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앤드류 양은 낙수효과가 아니라 '분수효과'를 주창한다. 대기업과 자산가, 고소득자들이 돈을 많이 벌면 저소득층에게도 그 효과가 돌아간다는 것이 낙수효과였다. 그런데 현실 경제에서는 낙수효과가 일어나지 않고 있다.

대신 앤드류 양은 분수효과를 말한다. 기본소득이 모두에게 지급된다면 그걸 바탕으로 창의적 활동들이 가능해지고 수백만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문화활동이나 봉사활동, 정치참여도 증가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마치 분수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모두에게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새로운 경제와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기존의 경제성장 논리가 가진 문제점도 지적한다. 그간 경제성장률을 측정하는 지표로 사용됐던 국내총생산(GDP)은 허구라는 입장이다. 그는 장기간 통계를 분석했을 때 미국의 GDP는 늘어나고 있으나 미국인의 평균수명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GDP의 증가가 행복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래서 앤드류 양은 GDP가 아닌 새로운 평가지표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는데, 건강과 수명, 깨끗한 물과 공기 같은 것이 GDP로 표시되는 숫자보다 더 중요하다고 했다.

사실 앤드류 양이 주장하는 이런 내용이 완전히 새로운 건 아니다. 기본소득은 미국에서도 예전부터 언급된 바 있다. 18세기에는 미국 독립에 큰 영향을 미쳤던 토마스 페인과 같은 선구자가 기본소득을 주장했다. 20세기에 와서는 흑인 민권운동 지도자였던 마틴 루터 킹 목사가 기본소득을 주창했다. 1982년부터 미국 알래스카주에선 석유로부터 나오는 수입을 재원으로 해서 주민들에게 기본소득(주민배당)을 지급하고 있다. 그런데도 지금 시점에서 앤드류 양의 주장이 다시금 주목을 받는 건 오늘의 미국사회가 큰 변화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녹색당 같은 정당이 2016년 총선에서 기본소득을 정책으로 내세운 바 있다. 그리고 기후위기의 심각성이 강조되면서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기본소득을 지급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산업구조를 바꾸는 과정에서 탄소세(온실가스 배출에 부과하는 세금) 도입이 필요하고, 탄소세에서 발생하는 세금 수입을 국민에게 배당금으로 나눠주자는 말이다.

어쨌든 앤드류 양의 등장은 미국 정치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대한민국에서도 새로운 담론과 새로운 이슈를 놓고 경쟁하는 정치가 필요하다. 사회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방향을 놓고 치열하게 토론하는 정치가 필요하다. 정쟁만 반복하는 정치는 이제 지긋지긋하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변호사(haha96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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