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1989년 베이징, 2019년 홍콩
입력 : 2019-11-19 07:00:00 수정 : 2019-11-19 07:00:00
서명수 슈퍼차이나 대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은 '트라우마(trauma)'가 된다. '2019년 홍콩'은 '1989년 베이징' 톈안먼(天安門) 광장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톈안먼 사태는 당시 갑작스레 사망한 후야오방 전 총서기를 추모하러 톈안먼 광장에 나온 학생들의 시위가 계기가 됐다. 하지만 배후에는 개혁개방 이후 급속한 경제성장의 과실을 독식하던 태자당 등 소수 특권계급에 대한 불만과 비판이 있었다.

30년 전의 사건이지만 아직도 중국에서 톈안먼 사태는 절대 입 밖에 꺼내선 안 되는 금기어다. 그래서 바이두와 소후 등 중국 인터넷 포털에선 '톈안먼 사태'와 유혈진압이 벌어진 6월4일을 기억하는 '6.4' 등은 찾을 수 없는 단어가 됐다. 뿐만 아니라 당시 톈안먼 시위를 주도했던 인사들에 대해선 아직 복권이 이뤄지지 않았다. 학생들을 두둔하다가 덩샤오핑에 의해 실각한 자오쯔양 전 총서기는 17년간 가택연금 상태로 있다가 사망했다. 자오 전 총서기의 회고록은 홍콩에서 출간됐지만 본토에서는 금서로 지정됐다. 자오 전 총서기는 죽기 전 "중국 공산당은 모든 자원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부패할 수밖에 없다"며 공산당의 장기집권을 비판한 적이 있지만 생전에 그의 말이 외부로 흘러나온 적은 없었다.

반면 자오쯔양을 대신해 상하이 서기에서 갑자기 중앙무대로 올라온 장쩌민 전 주석은 톈안먼 사태를 강경하게 수습, 최고지도자에 올라 20년간 승승장구했다. 강경진압의 한 축인 리펑 전 총리 역시 빛나는 말년을 보냈다. 장쩌민이 구축한 상하이방의 지원에 힘입어 최고지도자에 오른 시진핑 주석 역시 승자의 역사를 이어갈 뿐이다.

그러나 톈안먼의 역사를 고스란히 묻어버려야 했던 동시대 중국인들은 가슴 한 켠에서 절망감을 느꼈을 것이다. '중국 공산당이 집권하는 한 다시는 중국에서 민주화라는 꽃을 피울 수 없다'는 아득한 절망이다. 그렇게 그들은 하나둘씩 희망을 접었다.
 
10년, 20년이 흘렀고 중국은 드디어 미국을 위협하는 강대국으로 성장했다. 빛의 속도로 성장하는 중국경제와 더불어 누구나 벼락부자가 될 수 있는 세상이 됐다. 경제적 성취만으로는 부족한 게 무엇인지 그들은 알고 있지만, 모두 이 모든 건 '마오 주석 덕분'이라고 칭송한다. 재물신이 된 마오는 중국 공산당의 상징이다. 공산당의 영도가 중국 인민들의 '원빠오(溫飽)'를 해결했고 부자가 되는 길을 열어주었다는 것이다. 마오 시대의 가장 큰 과오로 지적되는 문화대혁명에 대해서도 이미 당은 '(마오의) 공과가 반반'이라며 사면했다. 그렇게 문혁은 역사가 됐다.

강제로 잊혀야 하고 땅속에 묻어뒀던 톈안먼은 홍콩사태의 확산으로 서서히 중국 인민의 관심을 받고 있다. 공산당에게 톈안먼은 절대서 꺼내선 안 될 기억인데도 말이다. 2019년 홍콩은 공산당의 트라우마를 건드리고 있다. 송환법 반대로 촉발된 홍콩사태는 홍콩 당국이 송환법 제정을 철회하면서 한발 후퇴했지만 홍콩시민들의 시위는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 물론 홍콩시위가 진정된다면 톈안먼의 악몽이 다시 재현될 가능성은 줄어든다. 홍콩 민주화를 주장하는 시민과 학생들이 홍콩 경찰의 강경진압에 맞서지 않고 평화적 시위로 대응수위를 낮춘다면 홍콩 당국과 배후에 있는 중국 정부도 보다 유화적으로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24일로 예정된 지방선거를 앞두고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양측의 전면 충돌은 중국 정부의 개입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그럴 경우 제2의 톈안먼 사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지난달 말 열린 중국 공산당 4중전회에서 시진핑 주석은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을 만나 시위에 대한 강경대응을 주문했다. 시진핑 주석이 해외순방 중임에도 홍콩시위의 종식을 강력하게 촉구하고 나선 것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홍콩 역시 중국의 영토다. 1997년 중국에 반환되면서 합의한 일국양제가 관건이다. 1840년 아편전쟁 이래로 150년간 자유롭게 산 홍콩의 역사를 존중해주지 못한다면 홍콩의 미래는 안갯속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다. 홍콩이 영국에 조차된 것과 다시 중국에 반환된 것은 동시대의 역사다. 중국이 강대국이 되고 세계무대에서 다시 중화(中華)의 깃발을 흔든다고 해서 역사를 지울 수는 없다. 여전히 앞으로도 홍콩의 미래는 홍콩인들의 생존을 위해 보장되어야 한다. 그것이 조화로운 세계평화를 추구한다'고 공언한 시 주석의 '중국몽'이 아니었던가. 누구도 홍콩을 중국 땅이 아니라고 부정하지는 않고 있다.
 
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didero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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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병호

최병호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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