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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태의 경제편편)지금은 올바른 치유가 최선이다
2019-11-27 06:00:00 2019-11-27 06:00:00
정부가 위험한 금융상품에 대한 금융사의 무분별한 고객유치 행위를 막겠다고 나섰다. 지난 14일 발표된 '고위험 금융상품 투자자 보호 강화를 위한 종합 개선방안'의 골자를 보면 사모투자에 대한 최소 투자 금액이 1억원에서 3억원으로 상향 조정됐다. 구조가 복잡한 금융투자상품에 '고난도 금융투자상품' 개념이 도입된다. 판매할 때 녹취하고 숙려과정을 거쳐야 하는 고령투자자 기준이 70세 이상에서 65세 이상으로 낮아진다. 공모펀드가 사모펀드의 탈을 쓰고 판매되는 것이 금지되는 등 여러 방안이 제시됐다. 
  
이번 대책은 최근의 우리은행과 하나은행 등이 판매한 DLF와 라임자산운용의 펀드환매 연기사태 등 금융사고가 잇따라 일어났기 때문에 마련됐다. 무엇보다 은행에서 원금의 20% 이상 손실 위험이 있는 고난도 사모펀드 판매를 금지한 것이 눈에 띈다. 은행은 원금 손실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작은 공모펀드 위주로 판매하라는 취지다. 
 
금융사의 책임성 강화 차원에서 대형사고 발생 시 최고경영자(CEO) 등 경영진을 제재할 수 있는 근거도 신설된다. 모두가 당연한 조치이다. ‘왜 이제야~’ 하는 아쉬움을 새삼 느끼게 된다.  
 
지금까지 한국의 은행들에게는 고위험 상품에 제대로 설계할 실력도, 책임의식을 갖고 판매하겠다는 도덕성도 없었다. 때문에 다른 금융사가 설계한 고위험 상품을 별다른 책임의식 없이 잘 모르는 고객에게 무차별적으로 팔아왔다. 키코사태의 경우처럼 나중에 문제가 생겨도 응분의 책임을 다한 일이 별로 없다. 그러다 보니 만성적인 무사안일과 도덕불감증에 빠졌다.
 
지난 2015년 규제완화 조치로 무책임과 도덕불감증은 더욱 깊어졌다. 사모펀드는 지난 2015년 10월 단행된 사모펀드 규제완화조치 이후 크게 늘어났다. 당시 박근혜정부는 사모펀드 투자활성화를 위해 규제를 대폭 풀어버렸다. 자산운용사의 자기자본 요건을 낮추고 회사 설립요건을 인가제에서 등록제로 바꿨다. 
 
그 결과 사모펀드 투자가 현저하게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순전히 투자이익만을 내기 위한 사모펀드의 경우 2014년 173조원에서 올 상반기에는 380조원으로 장족의 발전을 이룩했다. 그러나 모험자본 투자와 재벌기업의 몰상식한 경영을 견제할 수 있는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 투자는 별로 늘어나지 않았다. 반면 죄없는 금융소비자만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인 채 눈물을 쏟아야 했다. 
 
세상의 모든 일은 다소의 부작용을 유발한다. 원래 기대했던 효과와 부작용은 사실 공존하는 것이 사물의 자연스런 이치다. 사람이 한 평생 살아가면서 기생충이나 세균을 비롯한 질병의 요인과 동행하듯이 말이다. 
 
그렇지만 부작용도 부작용 나름이다. 피할 수 없는 것도 있지만, 세심한 예방조치가 있었으면 겪지 않아도 될 문제도 적지 않다. 최근 물의를 일으킨 고위험 파생증권이나 사모펀드의 경우가 바로 이런 불필요한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대책은 그런 불필요한 부작용과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것이다. 여기에도 어느 정도 부작용이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예컨대 은행의 고위험 파생상품 판매가 금지됨에 따라 수수료 수익이 감소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서영수 키움증권 연구원은 "은행의 파생상품 판매를 단순히 불완전 판매를 넘어 상품의 본질적 결함으로 이해하고 규제했다"며 "파격적 조치"라고 평가했다. 그렇지만 은행의 수수료 수익이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리고 투자된 자금이 상당부분 이탈할 것이라고 서 연구원은 내다봤다. 
 
이 때문에 은행들이 요즘 반발하고 있다. 수십조원에 이르는 신탁상품 판매시장을 잃을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원욱 원내수석부대표도 "빈대 한 마리를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운다"고 거들었다. 
 
아마도 은행이 앞으로 고위험 파생증권을 판매하기가 과거에 비해 확실히 더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자업자득이다. 그동안 주어진 자유를 올바르게 누리지 못한 탓이다. 
 
그렇지만 당장 눈앞의 손실과 규제를 보고 속쓰리다고 여겨서는 안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추락한 고객 신뢰을 되살리기 위한 노력이다. 물론 은행의 반발 가운데 합리적인 것은 금융당국도 수용하는 데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만 은행 스스로 이번 기회에 냉엄한 성찰을 통해 부작용과 환부를 도려내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지금 은행들에게는 올바른 치유가 최고의 선이다. 그런 연후에 새 살을 돋아나게 해야 한다. 

차기태 언론인(folium@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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