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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정보 비공개는 부정부패의 시작이다"
2020-02-11 06:00:00 2020-02-11 06:00:00
결국 언론을 통해서 청와대의 울산시장선거개입사건 공소장이 공개되었다. 13명이나 기소되었고 무려 71쪽 분량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스크롤 압박을 견뎌내며 공소장을 차근차근 읽고 있다. 평소 같았으면 이 정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지난 4일 법무부가 공소장 비공개결정(정확히는 1장짜리 공소사실요지를 국회에 제출했다)하기 전까지는. 
 
이번 공소장공개논란은 국회가 법무부에 공소장제출을 요청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국회가 법무부에 공소장을 요구할 법적 근거는 있다. 국회에서의 증언ㆍ감정 등에 관한 법률에 ‘국회로부터 국가기관이 서류 등의 제출을 요구받은 경우 제출할 서류 등의 내용이 직무상 비밀에 속한다는 이유로 서류 등의 제출을 거부할 수 없다.’규정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국가기밀에 관한 사항은 거부할 수 있지만 울산시장선거개입사건 공소장이 국가기밀에 관한 사항이 아님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런데 법무부는 ‘국회에 제출한 공소장 전문이 형사재판 절차가 개시되기 전에 언론을 통해 공개되어 온 것은 국민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고 개인의 명예와 사생활을 침해하는 잘못된 관행으로 이러한 관행은 반드시 시정되어야 합니다’라고 이유를 밝혔다. 
 
미리 결론을 말하면 법무부의 주장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법무부가 내세우는 이유가 아무리 그럴 듯하다고 하더라도 국회의 요청을 거부하려면 법적근거가 있어야 하는 데 단지 법무부 내부에만 효력이 있는 훈령(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을 근거로 할 뿐이다. 
 
그동안 국회가 법무부에 공소장을 요청한 공소장은 일반인들의 형사사건이 아닌 국회의원과 같은 정치인, 대기업총수 등 공적인물이 기소되었거나 흉악한 살인범과 같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사건이다. 대검찰청이 발간한 2019년 검찰연감에 따르면 2018년 중에 검찰이 처리한 사건 중 기소한 인원이 719,980명에 달했다. 국회가 공소장을 요청한 인원은 0.1%도 안 될 것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기소된 99.9%의 공소장은 공개되어도 안 되고 우리가 알 이유도 없다. 
 
박근혜, 이명박 전 대통령, 양승태 전 대법원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같은 공적인물은 그들의 사생활보다 국민의 알권리가 우선한다. 그들이 어떤 이유로 검찰수사를 받았고 재판에 넘겨진 이유를 국민은 알권리가 있다. 더구나 공소를 제기하면 수사는 원칙적으로 종결되고 강제수사도 제한되므로 공소장이 공개되어도 공정한 재판받을 권리가 침해된다고 보기도 어렵다. 울산시장선거개입사건에 대해 기소된 피고인들의 사생활을 국민의 알권리보다 우선시한다면 헌법교과서에 실린 알권리는 단지 상징적인 문구로만 남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의 헌법상 기본권이 위축된다. 
 
법무부는 잘못된 관행은 시정되어야 한다고 하지만, 법무부가 국회에 공소장을 제출하기 시작한 것은 참여정부 시절인 2005년부터였다. 국민의 알 권리 보장 차원에서였다. 현 정부가 참여정부의 정책을 잘못된 관행이라고 하면 누가 납득할 수 있을까. 
 
어찌되었든 법무부는 일체 공개하지 않을 태세다. 덕분에 현재 검찰의 수사를 받는 대기업인 삼성(삼바), 코오롱(인보사) 등도 혜택을 볼 것이다. 뇌물을 받은, 자녀부정채용을 한 국회의원의 경우도 재판이 시작되기 전에는 알 수 없게 되었다. 
 
법무부의 이번 결정은 대중들로 하여금 정부가 뭔가 잘못한 것이 있는 거 아닌 가라는 의혹을 주기에 충분하다. 한마디로 실착이다. 현재까지 구속된 자도 한 명도 없고 송병기 부시장 같은 경우에는 영장기각도 된 마당에 차라리 원칙대로 공소장을 공개하여 검찰수사의 잘잘못을 따지는 공론의 장이 마련되었다면 어땠을까. 
 
혼란스러운 시절이다. 공적사안에 해당하면 내편이든 네편이든 동일한 기준이 적용되는 것이 성숙된 민주주의라고 알고 있는데 최근 들어 지켜지지 않고 있다. 탄핵된 박근혜 정권조차도 가장 큰 아킬레스건이었던 국정원 댓글사건수사를 방해하기 위해 채동욱 총장을 낙마시켰고 윤석열 수사팀장을 징계했지만, 공소장만은 전문 그대로 공개했다. 
 
부패와 부정한 결탁이 일어나는 것은 정보의 비공개로부터 시작된다.(“헌법을 쓰는 시간” 김진한 지음)
 
김한규 법무법인 '공감' 변호사·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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