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토마토칼럼)'포스트 코로나 시대' 막말정치의 종말
2020-04-29 06:00:00 2020-04-29 17:35:21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에게 그의 제자가 물었다.
어떻게 해야 말을 잘 할까요?”
소크라테스가 답했다.
말을 잘 하는 비결은 그 사람의 언어로 말하는 것이다.”
 
수천 년 전 민주주의자 소크라테스는 이미 알고 있었다. 말과 대화와 소통의 중요성을. 민주주의는 총과 칼이 아닌, 말과 글로 발전한다는 사실을. 결국 민주주의는 그 사람의 언어로 말할 때 더욱 풍성해진다는 것을.
 
21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여당의 압승으로 막을 내렸다. 예견된 결과였다. 이제 이 시대의 나침반은 과거와는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시대정신의 진화다. 그것은 우리보다 먼저 외국인들이 알아챘다. 며칠 전 미국 매체 뉴요커에는 한국은 이미 선진국인데 한국인들만 그 사실을 모른다는 칼럼이 실렸다.
 
솔직히 몰랐다. 그동안 우리 정치와 언론이 보여준 막장 드라마에 잊고 살았다. 시대정신을 따라오지 못하는 후진 정치와 언론이 우리의 눈과 귀를 막았다. 코로나 시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실감했다. 민주주의의 투명성이 코로나를 이겼다.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냐던 개발독재 시대의 말은 더 이상 유통되지 않는다. 그래서 막말 정치의 종말은 이번 선거의 자연스런 결과물 중 하나다.
 
돌이켜보면 지난 수년 간 광주민주화운동과 세월호 사건을 둘러싼 각종 막말들이 난무했다. ‘자신만의 언어로 타인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불행을 조롱하고, 폄훼하며, 왜곡했다. 분열의 언어로 무장해 편을 갈랐다.
 
막말 정치꾼들의 기원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권력을 가진 자들은 힘없는 국민들을 상대로 고소 고발을 일삼았다. 정권을 비판한다는 이유에서다. 국민 보호의 최일선에 있어야 할 국정원과 같은 권력기관이 각종 조작과 음모로 국민들을 낭떠러지로 몰아넣었다.
 
그러자 우리가 피 흘리며 지켰던 고결한 가치들, 그러니까 민주주의, 헌법정신, 이타심 등이 쥐가 갉아먹는 것처럼 서서히 멸실돼 갔다. 슬금슬금 뒷걸음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마음 속 도덕성의 수위는 점점 낮아져서 그 정도만 해도” “그 수준만 돼도라는 말로 위안을 삼았다. 명명백백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한 구렁이 담 넘듯망각의 저편으로 띄워 보냈다.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분간할 수조차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건도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닌 듯싶다. 당시 우리 사회에는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사위일체(四位一體)의 틀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무능하고 부패한 대통령, 그런 인물을 뽑아주는 유권자들, 배려와 양보의 자리에 대신 들어선 탐욕과 이기심, 그리고 이 모든 것에 빌붙어 먹고 사는 정치·자본·언론권력. 이런 마당에 무엇을 바라겠는가.
 
막말 정치꾼들은 총선에서 심판을 받으며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하게 됐지만 그들이 남긴 아픔은 현재진행형이다. 19세기 미국 시인 롱펠로우는 이렇게 말했다. “말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가슴에 수십 년간 화살처럼 꽂혀 있는 것이다라고. 그들의 진정한 사죄와 반성이 없다면 화살은 그대로 가슴에 남아있을 것이다.
 
막말의 정치를 떠나보낸 우리는 자연스레 21세기 선진국의 시대정신에 맞는 정치를 찾게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낙연 국회의원 당선자가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로 떠오른 것은 의미가 있다. 그의 언어를 신선하게 받아들이는 국민들이 많아서다. 아마도 그것은 우리 정치가 잃고 있었던 품격 있는 언어일 것이다. 좋은 말은 더 좋은 말을 낳는 법이다. 보다 많은 정치인들이 그 사람의 언어로 말하는 것을 보고 싶다.

이승형 산업부 에디터 sean1202@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