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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어부지리’ 영화 독립선언
2020-05-12 00:00:00 2020-05-12 00:00:00
‘코로나19’로 인한 변화의 바람은 영화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비대면 비접촉’, 즉 ‘언컨택트’가 어쩔 수 없는 흐름으로 떠오르면서 OTT서비스(Over-The-Top, 개방된 인터넷을 통해 방송이나 영화 등 미디어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의 시장성과 그 중요도가 대폭 확대 인식돼버렸다. 
 
전 세계에 팬데믹이 불어닥친 후 극장은 말 그대로 융단 폭격을 맞았다. 코로나19가 확산된 후 국내 극장 1일 전체 관객수는 1~3만 수준으로 급락했다. 성수기 대작 영화 한 편이 하루 100만에 육박한 관객을 동원한 점을 고려하면 ‘고사’란 단어도 무색하다. 이 시기에 넷플릭스를 포함한 OTT서비스 이용자 수가 급증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런 흐름은 영화계가 그간 구축해 온 큰 틀의 골격까지도 흔들어버릴 가능성을 들춰내 버렸다. 극장, 즉 국내 상영업은 1998년 강변CGV가 개관한 이후 단관 상영에서 멀티플렉스 상영 체제로 변화했다. 개봉일에 맞춰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물량 공세를 펼치는 이른바 ‘와이드릴리즈’ 방식이 국내에 도입된 것이다. 
 
이 방식은 대규모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 영화를 중심으로 메이저 투자 배급사가 영화 시장을 장악하고 이끌어온 동력이 됐다. 스크린독과점, 수직계열화 등 영화계에 풀리지 않은 해묵은 숙제가 사실상 상영업 변화, 이때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하지만 코로나19는 영화 콘텐츠를 대하는 관객의 소비 패턴을 바꿔버렸다. 이는 기존 영화 산업에서 필요충분조건이었던 극장(상영업)의 위치가 충분조건으로 변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영화 제작 과정에서도 변화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많은 논란을 남긴 후 넷플리스에서 개봉한 ‘사냥의 시간’이 영화계에 던져준 과제다. 이 영화는 당초 OTT서비스를 목적으로 제작된 영화가 아니었다. 때문에 완성된 콘텐츠는 대형 스크린에 걸 맞는 미장센(영화적 미학)을 메인 테마로 끌어왔다. 
 
영화적 구성과 연출 그리고 세트 미술 한계성을 드러낸단 점에서 대형 스크린이 아닌 인터넷 연결망을 통한 모니터 화면의 시각적 한계성은 절대적이다. 콘텐츠 연출에 있어 영화 연출과 TV 연출의 경계선이 명확하게 구분돼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된다. 
 
‘사냥의 시간’은 어쩔 수 없는 자구책에 따라 넷플릭스 상영을 결정했지만 이를 통해 국내 영화계는 새로운 선택지를 하나 더 부여 받았다. 제작사 입장에서 연출을 구성할 때 스크린 상영 또는 모니터 공개(OTT)에 대한 선택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영화계가 상영 포맷 변화 가능성을 처음으로 깨우쳤다. 이런 흐름은 극장(상영업)의 생존에 필수불가결한 전략변화를 요구할 것이다.
 
지금까지 극장은 영화를 소비하는 가장 전통적이고 올바른 형태였다. 하지만 OTT서비스가 하나의 소비 대안으로 떠올랐고 이미 시장에서 그 경제적 효과를 충분히 검증 받았다. ‘사냥의 시간’이 그것을 증명했다. 이제 남은 건 선택뿐이다. 영화가 극장을 버릴 것인지, 영화가 OTT를 선택할 것인지. 그 선택의 열쇠는 소비자가 쥐고 있다. 물론 소비자가 손에 쥔 열쇠를 빼앗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게 어느 쪽이든.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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