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국립폭스오퍼 심포니 (사진제공=Arte TV)
[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비엔나가 거기 있었다.
공연이 진행된 2시간 동안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을 가득 메운 관객은 마치 마법에 홀린 것처럼 비엔나 한복판에 가 있는 듯 했다.
앵콜로 브린디쉬(축배의 노래)를 소개하는 자막이 나오자마자 청중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환호했고, 혼연일체로 전주에 맞춰 박수로 호응했다. 비엔나의 문화를 관통하는 키워드인 '샤르메(Charme·고혹적이고 우아하다)'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이들의 무대에 모든 이들이 열광했고, 덩달아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단원들도 들뜨게 했다.
한국 관객에게 “폭스오퍼”가 확실하게 각인된 순간이었다.
◇빈 국립폭스오퍼 심포니 (사진제공=Arte TV)
◇관객을 사로잡은 황홀한 오리지널 비엔나 사운드
지난 11일 토요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빈 국립 폭스오퍼 심포니 신년음악회는 그간 여타 빈 연주단체의 신년음악회와는 그 격(格)이 다른 한 차원 높은 고순도 비엔나 문화를 생생히 전달했다.
공연장에 있던 관객 모두 TV중계가 아닌 두 눈과 귀로 직접 현장감 넘치는 실연(實演) 비엔나 신년음악회를 체험했고, 그 감동에 가슴 벅차오름을 누르지 못했을 것이다.
세계최고 오페레타 전당 빈 국립 폭스오퍼의 56명의 오케스트라 연주자와 지휘자, 남녀 성악가, 두 쌍의 발레팀은 콘서트홀을 가득 메운 청중 앞에서 그들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했고, 일본 공연 10년 연속 매진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충분히 증명했다.
특히 지휘자 올라 루드너는 한국 청중들의 호응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그는 “첫 곡부터 쏟아진 브라보 반응에 놀랐고, 브린디쉬(축배의 노래) 전주만 듣고도 환호하는 한국 청중의 음악적 깊이에 매우 감명받았다”고 말했다.
◇오페레타, 발레 등 비엔나만의 독특한 레퍼토리
빈 국립 폭스오퍼 심포니의 음악회는 국내에서 보기 힘든 오페레타 아리아와 정통 왈츠 레퍼토리로 구성됐다.
유명한 주페의 '경기병 서곡'으로 힘차게 포문을 연 1부는, 정통 비엔나 오케스트라의 특징인 비엔나 호른의 풍부한 울림과 한 치 오차 없는 금관 파트가 어우러져 완벽한 연주를 들려주었다.
이어 폭스오퍼 극장의 테너 종신단원 메자드 몬타제리가 비엔나의 대표적 오페레타 작곡가인 칼만의 '초롱초롱한 두 눈망울'을, 밴쿠버 출신의 소프라노 시피웨이 매킨지가 레하르의 오페레타 쥬디타 중에서 '뜨겁게 입맞춤하는 내 입술'을 열창했다.
또한 조각 같은 팔등신 몸매의 아름다운 남녀 발레 두 쌍이 슈트라우스의 왈츠 '술 여인 그리고 노래'에 맞추어 그림처럼 날렵한 춤사위를 선보여 관객의 눈을 사로잡았다.
빈 국립음대 교수이자 폭스오퍼 플룻 수석 비어깃 람슬은 바이올린 난곡으로 알려진 파가니니의 카프리스 24번을 플루트로 협연하여 갈채를 받았고, 몬타제리와 매킨지가 듀엣으로 레하르 '미소의 나라' 중 '누가 우리를 사랑에 빠지게 했나'를 완벽한 이중창으로 열창한 후 슈트라우스의 가속도 왈츠로 열기를 고조시킨 채 1부를 마무리했다.
◇빈 국립폭스오퍼 심포니 (사진제공=Arte TV)
◇돋보인 오케스트라의 자신감과 선곡 센스
2부는 비엔나의 현대작곡가 레즈니체크의 '돈나 디아나' 서곡으로 문을 열었고, 오페레타 '파가니니'의 '바이올린을 연주해주세요'에서는 지휘자 올라 루드너가 직접 바이올린을 잡고 마치 파가니니가 된 듯한 솔로 연주를 보였다. 이는 비엔나 스타일 신년음악회에서 자주 보이는 퍼포먼스로, 폭스오퍼 심포니 악장 출신인 그의 바이올린 실력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계속되는 슈톨츠와 칼만 등 비엔나 현대 오페레타 작곡가들의 아리아는 관객에게 생소한 레퍼토리였지만, 영화나 뮤지컬의 로맨틱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남녀 성악가의 호소력 짙은 노래와 오케스트라의 우아한 반주로 청중을 매료시켰다.
첫 내한 공연에서 관객에게 친숙하지 않은 레퍼토리를 선곡해 호응을 이끌어낸 것은 오케스트라의 자신감과 센스가 돋보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광고 음악에 널리 쓰여 유명해진 폰키엘리 '시간의 춤'에 이르러서는 현악기군의 화려하고 매끄러운 연주에 하프의 앙상블이 더해져 관객의 탄성을 자아냈다.
이날 성악곡 중에서 제일 친숙한 레하르의 '입술은 침묵하고'(메리 위도우)가 연주된 후, 프로그램의 마지막 곡이자 오스트리아 제2국가로 추앙받는 슈트라우스의 걸작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왈츠에 이르러서는, 비엔나의 오케스트라만이 할 수 있는 미묘한 리듬변화 표현과 우아한 사운드로 자신만만한 절정의 연주력을 과시하면서 인형 같은 두 쌍의 발레팀 무대를 더하여 ‘왈츠란 이런 것이다’라고 한국 관객에 보여주는 듯 했다.
커튼 콜에 쏟아지는 박수갈채 속에서 지휘자가 관객을 향해 한국어로 “새해 복 많이”라 외치고 단원들이 “받으세요”라 받아치는 퍼포먼스로 20년간 일본에서 쌓아온 아시아 관객에 대한 서비스 정신도 보였다.
앙코르 곡으로는 '헝가리 만세 폴카'에 이어 두 곡이 연주되었는데, 두 번째 곡 '축배의 노래' 제목이 스크린에 뜨자마자 관객 모두는 기다렸다는 듯이 환호했고, 이에 화답하듯 테너와 소프라노는 멋드러진 아리아를 선사했다.
그동안 빈 필의 신년음악회 중계에 익숙해진 수준 높은 관객들은, 마지막 앵콜곡인 '라데츠키 행진곡' 리듬에 맞춰 박수치며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한국 관객에 비엔나의 문화의 정수를 선사한 빈 국립 폭스오퍼 신년음악회. 올해는 단 한 번의 공연이라 아쉬움이 있지만 내년에는 보다 더 많은 연주와 새로운 레퍼토리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