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석 (사진제공=킹콩엔터테인먼트)
[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3년 전이었다. SBS 한 드라마 제작발표회가 끝나고 유연석 소속사 관계자를 만나면서 유연석도 같이 만났다. 관계자들이 여성이었던 터라 유연석이 무거운 짐을 힘들게 들고 있었다. 깜짝 놀랐다는 듯 "배우한테 이런 걸 시켜요?"라고 물으니 옆에 있던 유연석은 웃으며 "남자가 저 밖에 없고 뭐 하면 하는 거죠"라고 말했다.
순수한 그의 모습을 본 뒤 3년이 흐른 지난해 10월 대한민국에는 tvN <응답하라 1994>(이하 <응사>) 열풍이 불었었다. 모든 캐릭터가 사랑을 받았고, 숨은 디테일까지 이야기거리가 됐다. 고아라, 정우, 유연석, 김성균 등 배우들은 물론 신원호 PD와 같은 제작진도 핫이슈였다.
그간 많은 작품에서 조연으로 얼굴을 비치던 유연석은 <응사> 한방으로 대스타가 됐다. 그가 움직이면 기사가 됐고 화제가 됐다. 또 "여의도와 충무로의 시나리오는 정우와 유연석을 거친다"고 말도 돌았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둘의 차기작에 대한 관심이 대단했다.
정우는 <쎄시봉>을 통해 첫 사랑에 대한 풋풋함을 한 번 더 이어갔다면, 유연석은 <제보자>라는 완전히 다른 톤의 영화로 관객들을 맞이했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이어진'줄기세포 사태'를 모티브로한 영화가 <제보자>다. 유연석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진실을 외친 제보자 심민호를 연기했다.
<응사>의 칠봉이로서 엄청난 사랑을 받은 그가 그 이미지를 다시 한 번 사용할 법도 한데, 말수도 적고 절제된 행동을 하는 심민호로 돌아왔다. 완벽한 이미지 변신이라 할 수 있다.
"칠봉이로 워낙 사랑을 많이 받았었는데, 그 캐릭터와는 상반된 걸 하고 싶었어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 심민호는 칠봉이와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더라고요. 기존에 해보지 않았던 장르고, 임순례 감독님도 만나뵙고 싶었어요. 박해일 선배도 존경하던 선배여서 꼭 같이 작업해보고 싶었던 게 이유예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게 이미지 변신에 도전한 배우들이 늘 하는 말이고 사실이다. 스타가 됐지만 배우로서 더 정진하고 싶은 유연석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유연석 (사진제공=메가박스)
◇"나도 심민호처럼 한 번쯤은 용기낼 수 있지 않을까"
이 영화는 제작단계부터 잡음이 많았다. 이유는 아무래도 소재가 워낙 민감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법적인 분쟁이 끝나지 않은 사건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게는 인생이 걸려 있는 사건이고, 아직도 현재진행형인 사건이다.
임순례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의 뚝심이 영화를 만들어냈고, "당신은 진실 앞에서 얼마나 당당한가"라는 강렬한 메시지를 던진다.
그 중심에 있는 인물이 심민호다. 타이틀롤이기도 하다. "진실이 우선입니까? 국익이 우선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진 뒤로 진실 앞에서 떳떳한 인물로 나온다. 유연석은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라는 말이 맞음을 입증하는 연기다.
"심민호는 그렇게 긴 시간동안 얻어온 모든 것들을 포기하면서까지 진실을 쫓잖아요. 아픈 딸을 가진 아버지, 거대한 세력을 상대로 진실을 외치는 한 남자의 무게감을 표현하려고 더 집중했어요."
특히 눈에 띄는 장면이 "전 모든 걸 버리고 여기까지 왔어요"라고 윤민철(박해일 분)에게 외치는 장면이다. 감정을 절제하는 인물인 심민호가 유일하게 감정을 터뜨리는 부분이다.
유연석은 "인물이 가진 내면을 보여줘야 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대사를 하는 시퀀스가 심민호의 내면을 보여주는 장면이라 생각했다. 다른 장면에서는 절제하고 불필요한 감정을 없앴다면, 그 장면에서는 호소력 있게 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영화를 보고 취재진이 더 많이 반겼다. "과연 나는 진실 앞에 당당한가"라는 생각에 반성을 많이 했다는 기자들도 있었다. 유연석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요즘 영화들을 보면 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간다거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영화가 많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이 영화가 좋았던 점은 '내가 심민호라면'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고 말한 유연석이었다.
그에게 "그럼 실제 심민호가 된다면 심민호처럼 모든 걸 포기하고 진실을 외칠수 있을 것 같나"라고 물어봤다.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음~'을 두 세 번정도 한 유연석은 "쉽지 않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픈 딸아이라는 이유처럼 꼭 포기할 수 없는 무언가 한가지가 있다면 다른 것들은 포기할하고 용기를 내지 않을까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유연석 (사진제공=메가박스)
◇"지난 10년이 틀리지 않았구나"
지난해 유연석이 스타가 될 무렵 "어디서 저런 신인이 나왔냐"는 사람들도 있었다. 반짝스타라고 생각한 팬들도 적지 않았을테다. <건축학개론>에서 강남오빠로도 나왔고, <구가의 서>에서도 출연했지만, 존재감은 크게 돋보이지 않았다.
거슬러 올라가면 유연석은 10년전 영화 <올드보이>에서 유지태의 아역으로 데뷔했다. 이후 학교에서 연극활동에 매진했고, 군대도 다녀왔다. 그 무렵 지금의 소속사 창단시기와 맞물렸다. 김범 등과 함께 현 소속사의 창단 멤버다. 김범이 이전부터 큰 인기를 누려왔다면, 유연석은 이제서야 빛을 보는 케이스다. 10년 간의 무명시절을 두고 유연석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되는 세월"이라고 표현했다.
"<올드보이>를 하고 나서 군대 갔다오는 시간 동안 4년 공백이 있었어요. 주변 분들은 영화 잘됐는데 왜 학교에서 연극하고 있고, 군대갔다오고 그랬냐고 하시는데, 지금 돌이켜 봐도 그 때 그 시간들이 제가 지금 활동하는데 내공이 됐다고 생각해요. 물론 쉽지 않은 시간이었고, 힘든 시기였는데, 좋은 시간이었다고 생각해요.'
하는 거 마다 크게 터진다. 최근에는 tvN <꽃보다 청춘>에 출연해 화제를 불렀다. 유연석의 진심어린 행동이 팬들을 자극하는 듯 보였다. 단 1년 사이에 유연석의 입지는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비교할 수 없는 입지의 차이. "혹시 자기 자신에게서 변했다고 느끼는 건 없냐"고 물었다.
"저도 변했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러지 않기 쉽지 않잖아요. 그런데 막상 보면 제가 변한 거 보다도 주변에서의 시선과 기대감이 변했어요. 가만히 봐도 전 변한 게 많지 않아요. 광고도 많이 들어오고 작품의 분량이나 비중도 커졌죠. 그건 그거고 저는 굳이 변했다면 좀 더 신중해졌다는 거. 기대가 커지니까요."
담담했다. 사실 '스타병'이 연예인에게는 제일 무서운 병이다. 스타가 되자마자 하루 아침에 성격이 변한 연예인들을 수도 없이 많이 봤다. 그런 이들은 험난한 연예계에서 입지가 하락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유연석은 달랐다. 관계자도 "연석이는 변한 게 없어요. 예전이나 지금이나 일하기 정말 좋아요"라고 껄껄 웃게 만드는 그다.
"그간 10년이 틀리지 않았다는게 서른 살에 확신을 했어요. 열심히 살았다고 자신하고, 20대에 했던 것처럼만 살면 40대에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아요.(웃음)"
인고의 시간을 이겨내고 당당히 스타성을 지닌 배우로 거듭난 유연석. 3년 전 봤을 때의 순수함이 그대로 묻어있었다. "변하지 않았다"는 말처럼 그가 변함없이 성장해나간다면 어떨까. 40대에는 좋은 선배로서 귀감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