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함상범기자] 배우 차태현은 연기로 사람을 웃기는데 도가 튼 배우다. 언제부턴가 그가 나오는 영화는 항상 재미있고 밝았다. KBS2 예능 <1박2일>에서처럼 차태현 자체가 밝은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듯 했다. 영리한 선택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그가 너무 뛰어난 동체시력을 가져 온전한 생활이 불가능한 은둔형 외톨이로 관객들을 찾는다. 영화 <슬로우 비디오>다. 빠르게 지나가는 어떤 물체를 집중해서 보면 슬로우 비디오처럼 천천히 보이는 능력이다. 다만 뛸 수가 없다는 게 단점이다. 뛰다 보면 옆으로 넘어진다. 눈이 달리는 속도를 맞추지 못해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물론 픽션이다.
차태현은 영화 내내 선글라스를 끼고 나온다. 사회성이 부족해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대사를 진지하게 읊기도 한다. 밝고 유쾌한 차태현의 변신이 핵심인 영화다.
차태현을 지난 22일 삼청동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1박2일>에서처럼 유쾌했다. 웃기려고 덤비지 않는데 웃긴다.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1시간의 인터뷰였다.
놀라웠던 건 엄청난 솔직함이었다. 다소 민감할 수 있는 얘기를 그대로 꺼낸다. 불쾌하거나 거부감이 들지는 않는다. "워낙 솔직하니까요"라는 차태현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차태현 (사진제공=20세기폭스 코리아)
◇"김영탁 감독의 성장스토리도 있는 영화"
<슬로우 비디오>는 전작 <헬로우 고스트>(이하 <헬고>)에서 함께 작업한 김영탁 감독과 다시 한 번 호흡을 맞춘 영화다. 당시 영화 <황해>를 만나서도 300만이 넘는 스코어로 반전을 펼친 <헬고>라서인지 좋은 기억이 많았단다.
그러면서 그는 "탁(김영탁) 감독이 흥행을 떠나서 확실히 <헬고> 때보다 훨씬 더 잘 만들었어요. 영화가 주인공의 성장기가 있잖아요. 난 개인적으로 감독의 성장기를 보는 듯 했어요. 이햐! 뿌듯하더라니까"라며 웃어보였다.
사실 영화를 보면 대본보다 배우에게 관심이 더 쏠린다. 초반부 드라마를 통해 사랑을 배운 여장부(차태현 분)는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이상한 대사를 봉수미(남상미 분)에게 던진다. "빗 속에 너 있다"와 같은 오글거리는 대사들이다. 진지하게 말하는 장면에서 웃음 꽃이 핀다. 차태현이었기에 이 대사를 살렸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앞서 만난 남상미는 "감독님께 '태현 오빠한테 고마워해야돼요. 이 대사를 태현 오빠니까 살렸죠'라고 말했다"고 했다. 이 얘기를 그대로 전했다.
차태현은 "탁 감독이 고마워하고 있어요"라고 차분하게 말했다. 이어 "이상한게 탁 감독님 유머 코드가 잘 맞아요. 이상하게 웃기고 끌려요. 감독님 개그 코드가 오기도 생기게 해요. '이걸로도 내가 웃겨보겠다' 뭐 이런 거요"라고 말했다.
김영탁 감독에 대한 이야기가 더 흘렀다. 최근 두 사람은 MBC <라디오스타> 녹화에 참여했다. 당시 차태현은 "<과속스캔들>의 강형철 감독이 김영탁 감독보다 영화를 더 잘 만든다"고 했단다. 정말 그랬냐고 물었다. 대답은 역시 돌직구였다.
"그랬죠. 잘 만들잖아요. 강 감독이. 800만을 넘긴 감독이고, 탁 감독은 겨우 300만인데. 사실 TV에 나오고 할 감독은 아니지 않아요?"
기자들은 폭소를 터트렸다. 실제 그렇다고 해도 그렇게 말하기는 쉽지 않은건데, 거침없이 입담을 선보이는 차태현은 뭔가 달랐다. 두 사람간의 깊은 친분이 엿보였다.
차태현은 "탁 감독이 방송을 많이 안 해서인지 긴장을 많이했더라고요. 청심환을 먹었는데 너무 다운돼서 녹화는 좀 이상했어요"라며 "편집을 기대해봐야죠"라고 또 농을 던졌다.
남상미에 대해서도 말을 해달라고 했다. 꽤 진한 키스신까지 한 여배우 남상미에 대해서는 좋은 평이 대다수였다.
"나무랄 데가 없어요. 예의도 바르고, 전작 때문에 많이 지쳤을 때 이 시나리오를 봤나봐요. 엄청 좋아하더라고요. 첫 만남 때 아주 기대에 찬 모습으로 다가왔어요. 속으로 '허! 참 다행이다'라고 생각했죠. '여배우는 시나리오를 정말 잘 봤구나. 나는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라는 생각도 했어요."
진지한 얘기를 하다가도 웃음으로 빠져나가는 그의 탁월한 입담은 막을 수 없었다.
◇차태현 (사진제공=20세기폭스 코리아)
◇"어두운 영화? 안했다기 보다는 못 한 게 맞죠"
<슬로우 비디오> 인터뷰 때 차태현이 <엽기적인 그녀2>를 찍는다는 말이 나왔다. 이는 사실로 밝혀졌다. 당장 다음주부터 촬영에 들어간다고 한다. <엽기적인 그녀2>는 영화 제작자로 활동 중인 차태현 형의 새 작품이기도 하다.
"어휴 욕을 엄청 먹었어요. (전)지현이가 안 하니까요. 그래도 뭐 어쩔 수 있나요. 재밌게 만들어서 보여주는 수 밖에 없죠. 충성도도 높은 영화라서."
<엽기적인 그녀>는 2000년대 초반 신드롬을 부른 영화다. 그런 열풍을 <엽기적인 그녀2>로 다시 재현할 수 있을까. 아직까지는 고개를 흔들 전문가들이 많아 보인다. 차태현 역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열풍은 대한민국에서 다시는 일어나기 힘들 거라고 봐요. 그러니까 고민이 많았죠. 모르죠. 이상하게 나와서 욕먹을지도. 힘들게 생각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40대가 된 견우가 보고 싶었어요. 변화된 견우. 그러면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상하게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그랬어요."
아직도 차태현은 <엽기적인 그녀>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평가도 있다. 그 이후로 <과속스캔들>이라는 걸출한 작품을 만들었지만, <엽기적인 그녀>의 연장선이라는 말도 나온다. "견우에게서 벗어나고 싶지 않냐"고 물었다.
"사실 그렇지는 않아요. 뭔 연기를 해도 다 견우로 봐요. 말 타는 견우, 욕하는 견우. 사실 저는 무슨 연기를 해도 '차태현 화'하는 게 많았어요. 연극 연기를 하지 않았으니까. 주인공을 그렇게 시키는데 연기가 안 늘면 멍청한 거죠. 뭐 어쩌겠어요. 견우로 봐주시는 걸. 어울리니까 그렇게 봐주시겠죠."
이번 <슬로우 비디오>의 경우 차태현은 견우에게서 벗어난 느낌이 있다. 은둔형 외톨이가 된 차태현은 새롭다. 하지만 영화의 톤은 일관된다. 밝고 즐겁다. 감동을 주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따뜻하다.
어두운 영화를 하고 싶지는 않냐고 물어봤다.
"일단은 저한테 들어와야 하잖아요. 그런데 하정우 나온 <추격자>처럼 좋은 시나리오의 어두운 영화는 잘 안들어왔어요. 스릴러 중에 저한테 들어온 거는 단 한 작품도 영화화 된 게 없어요. 그러니까 안했다기보다는 못한 게 맞죠."
그럴 수도 있지만, 본인 자체가 어두운 영화를 하는 걸 꺼리기도 했다. 이전 인터뷰를 보면 그런 내용이 많았다. 밝은 영화 속에서 캐릭터에만 변화를 줬던 차태현이었다. 그를 두고 영리한 배우라고 하는 관계자들도 적지 않았다. 자신이 갈 방향을 정확하게 잡은 배우라는 느낌이었다.
"사실 작품 고를 때 성향이 막 기다리는 타입이 아니에요. 작품이 좋고 사람이 좋으면 그냥 했어요. 이거 끝나고 <엽기2>고 그다음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2>가 나올 수도 있는데, 그거까지 하고 나면 지겨울 것 같기도 하네요. 오늘 든 생각인데, 좀 기다렸다가 어두운 영화 한 편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1995년 KBS 슈퍼탤런트가 된 이후 벌써 20년차 배우다. 20년이라는 시간 동안 연기만 해왔다. 그런 그는 어떻게 작품을 고를까가 궁금했다. 대부분 시나리오를 최우선적으로 검토하지만, 차태현은 달랐다. 사람이었다.
차태현은 "드라마나 영화를 할 때 시나리오 외적인 것들이 더 많이 작용하는 것 같다"며 "<바보>가 잘 안됐잖다. 미안했다. <슬로우 비디오> 제작자가 그 영화 제작했다. 도와주고 싶었다. <챔프> 때 잘 안된 이환경 감독님도 늘 미안했었다. 그런데 <7번방의 선물>로 해냈다. 기쁜 마음으로 축하드리고 싶었다. 그렇게 결정한다. 김영탁 감독님은 아는 배우가 나 밖에 없어서 도와줄 수 밖에 없었다. 제일 먼저 나한테 말했고"라고 설명했다.
진심 같았다. 어쩌면 자신을 희생하는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분이 깊어도 시나리오가 좋지 않거나 할 이유가 보이지 않는다면 정중히 거절하는 게 충무로 풍토인데, 그냥 넘기지 못하는 차태현이었다.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사람이 물러서"라고 '허허' 웃는 차태현. 많은 사람들이 그를 좋아한다는 건 충무로에서 많이 들리는 이야기다. 왜 그런말이 도는지 알게 된 1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