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크게 작게 작게
페이스북 트윗터
(시론)메르스와 유언비어
입력 : 2015-06-17 오후 12:00:00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5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메르스에 대한 “과도한 불안감”, “과도한 불안심리”를 경제활동의 장애물로 지적했다. 그 다음날에도 대통령은 강남의 한 초등학교를 방문해서 “손 씻기 같은 건강습관만 잘 실천하면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민이 느끼는 메르스에 대한 체감온도는 정부와 현격한 차이가 있다. 메르스가 발생한 지 4주가 넘었지만 진정될 기미가 안 보인다. 감염 경로 및 방식, 잠복기, 4차 감염 가능성, 지병 여부에 따른 위험성 등 보건당국의 전망과 설명은 모두 빗나갔다. 정부의 비전문가 수준의 대처, 공공의 이익보다 병원(삼성서울병원)의 사익을 우선시한 정보은폐도 드러났다. 그러자 메르스 관련 루머 또는 정부 비판이 SNS를 중심으로 급속히 확산되었다.
 
법무부는 메르스와 관련해 악의적으로 허위사실이나 유언비어를 유포하는 사람은 엄단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은 한술 더 떠 ‘허위사실유포’ 혐의로 박원순 서울시장을 조사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다. 이는 박 시장에 대한 정치적 견제이자 시민 여론(알 권리, 말할 권리)에 대한 강력한 통제다. 대통령과 정부는 “정부가 말하는 것이 팩트다” , “유언비어에 동요해 과도한 공포심을 느끼기보다 차분하게 보건당국의 지침을 따르고 개인위생에 힘써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유언비어는 인류의 역사만큼 오래된 현상이다. 로마를 불태웠던(?) 황제 네로가 살던 그 시대도, 도망 노비를 쫓던 조선시대에도 유언비어는 존재했다. 과거의 권력자들도 세상에 관여하고 개입하는 말과 글을 헛소리라고 보고 단죄했다. 예수도 유언비어를 유포한 죄로 십자가에 못 박혔다가 부활하였다.
 
유언비어는 양면성이 있다. 유언비어는 정부가 우려하는 것과 같이 왜곡되고 조작된 커뮤니케이션의 병리적 현상이다. 그러나 유언비어는 사람들이 새로운 환경에 대처할 방법을 발전시키는 과정의 일부이며 여론에 수렴되지 못한 잔류의견으로 구성원의 욕구를 담아내는 잠재 여론의 성격도 가진다. 유언비어는 신뢰할 수 있는 공적인 정보유통이 부재하고, 개인이 상황규정에 필요한 정보를 소유하지 못하고, 공신력이 있는 정보원에 의해 확인이 없을 때, 상황규정에 도달하려는 비조직적 노력만 있게 될 때 발생하는 대중의 주체적인 상황정의인 것이다.
 
일례로 1980년 광주항쟁 당시 언론의 보도가 모두 진실이 아니듯 유언비어가 모두 거짓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학자들은 유언비어가 비공식적이고 불확실하지만, 사실과 다른 허구는 아니라고 말한다. 유언비어는 '소문'과 달리 정치경제와 같은 공적 문제를 대상으로 하며 '데마고그'와 달리 사실성과 보도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
 
유언비어의 전달과 확산에도 특정 회로가 존재한다. 유언비어는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 속에서 구성된다. 물론, 발생과 전달과정에서 유언비어는 보도, 설명, 신념, 의견과 같은 주관적 성격을 띠지만 정부와 극우세력이 걱정하는 것과 달리 사람들이 이를 그대로 수용하지는 않는다. 많은 경우 ‘공론의 장’에서 의견, 평가, 판단이라는 과정을 거쳐 근거와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은 거부되고 폐기되기도 한다.
 
메르스와 관련한 유언비어가 많이 발생한다는 것은 이 사안이 시민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유언비어의 유포와 확산의 집단변수는 유언비어 전달통로인 집단구조 뿐 아니라 집단의 심리상태, 화제에 대한 구성원의 이해관계, 관여도가 중요한 요소라고 말한다. 메르스 관련 유언비어가 전파되는 가장 큰 책임은 속 시원하게 궁금증을 풀어주지 못한 정부와 보건당국에 있다. 사실 유언비어의 유포량은 사건의 중요성과 이에 대한 보도의 모호성의 곱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시민은 마스크와 재갈을 원하지 않는다. 정부는 지금의 유언비어 현상을 정치적 반대자의 마타도어(黑色宣傳)로 매도할 것이 아니라 투명한 정보공개와 책임 있는 메르스 대응에 나서야 한다. 유언비어를 막는다고 SNS에 대한 통제와 감시를 강화하는 등 언론의 자유를 제약한다면 비제도적·비공식적인 여론현상은 더욱 확산·강화될 것이다.
 
이창언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문화교양학과 교수
손정협 기자


- 경제전문 멀티미디어 뉴스통신 뉴스토마토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