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 국내에 상륙한지도 한 달이 지났다.
먼 중동의 풍토병으로만 여겼던 메르스는 한국 사회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몸이 아파도 맘 편히 병원을 찾지 못하게 됐고, 매일 아침마다 새로운 확진자는 얼마나 늘었는지, 밤새 사망자는 없었는지 긴장된 마음으로 뉴스에 눈을 돌리게 됐다.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는 혹 기침이라도 하는 사람이 없는지 주위를 살피는가 하면, 고속버스나 기차 승객도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중국 여행객들로 번잡하던 명동은 한층 한산해졌고, 여행사들은 외국인 여행객의 예약 취소 사태에 발만 구르고 있다. 중소기업의 체감 경기는 지난해 세월호 사태 때보다도 더욱 악화됐고, 경제 성장률에도 확연한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이같은 외형적 타격보다도 더욱 심각한 것이 불안감과 불신의 만연이다. 발병 초기 정부의 대응이 늦어지면서 공포 확산을 조기에 잡는 데 실패한 것이 급격한 패닉 사태로 이어졌다. 서울시 등 일부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정보를 공개하고 대책마련에 나서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가 하면 대통령의 정보 공개 지시 시점을 놓고 빈축을 사기도 했다.
정부에 대한 신뢰는 이미 바닥으로 떨어졌다. 대통령 지지율 30%대가 무너진 것이 이를 설명한다. 세월호 대응 미숙에 이어 메르스 사태 확산에 이르기까지, 위기 대처에 근본적인 허점을 보이고 있는 것이 정부의 현 주소다. ‘컨트롤 타워가 없다‘는 비판이 거듭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 더 큰 절망을 낳고 있다.
국민들은 ‘각자도생’을 이야기하고 있다. 정부도 믿을 수 없으니, 스스로 알아서 살아날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각자도생이 현실화되는 순간, 그나마 우리 사회를 지탱해 왔던 시스템은 붕괴될 수 밖에 없다. 힘없고 약한 사람들은 안전망 밖으로 밀려나고, 강한 자가 자원을 독점하는 약육강식의 시대가 도래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이같은 최악의 결과를 막는 방법은 조속히 사회적 신뢰를 되살리는 것 밖에 없다. 정부가 나의 안전을 지켜 줄 것이라는 믿음, 내가 위기에 처했을 때 사회가 구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하다. 이는 말이나 글을 앞세워서 이뤄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현장을 몇 번 찾는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다. 국민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신속히 파악하고 즉각 해결할 수 있는 마인드와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이 문제가 이 정부의 성패를 가를 가장 중요한 과제임은 명백하지만, 이를 해낼 수 있을 거라 기대하기는 솔직히 어렵다. 지나온 절반의 임기동안 숱한 경고음도 무시하고 실패를 거듭해온 터라 국민들은 이미 체념 단계에 와 있다. 정부의 자세와 각오에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하는 이유다.
손정협 산업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