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에서 최근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은 아침 드라마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재계 5위인 대기업의 경영권이 하루 사이에 뒤바뀌는 운명에 접했다. 70여개에 달하는 계열사 임직원들은 숨 죽인채 언론을 통해 전해지는 소식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노령의 아버지를 사이에 둔 형제간의 권력 다툼’이라는 테마는 소설과 연극을 통해 오랜 기간동안 다양하게 다루어져 왔다. 그만큼 극적이고 흥미도 자아낸다.
하지만 문학작품에서나 나올 법한 사건이 우리 기업 역사에서는 유난히도 자주 등장한다. 기억에도 생생한 현대그룹 ‘왕자의 난’ 사건이 대표적이고, 그 이후에도 형제간 경영권 분쟁은 계속해서 신문지상을 장식해 왔다.
한국 기업이 형제간 경영권 분쟁을 이토록 빈번히 겪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족주의’에 머물러 있는 전근대적인 기업문화에서 찾아야 할 듯하다. 창업주들은 기업을 개인의 소유물로 여기고, 자신의 핏줄에게 모든 것을 물려주려 한다. 그 과정에서 후계자를 명확히 하지 않고 형제간에 비슷한 권력을 나누어줘, 분쟁의 불씨를 남긴다. 반면 기업을 함께 세우고, 이 자리까지 성장하는데 동고동락해온 임직원들은 후계구도에서 일찌감치 제외된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 CEO가 외부 영입인사인 팀 쿡에게 경영권을 양도하거나,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 자녀들에게는 경영승계를 하지 않겠다고 일찌감치 선언하는 일은 우리 기업과는 아직 무관하다.
기업이 창업주 당대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경영능력과 책임감을 갖춘 후임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현재의 경영환경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과거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현실에 안주할 경우에는 순식간에 기업의 존립이 위태로워 질 수 있다. 적임자를 찾기가 결코 쉽지 않기에 후보 집단은 최대한 풍부해야 한다. 자녀보다 우수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경영권이 주어져야 한다.
잘 나가던 기업이 경영 승계 과정에서 잡음에 휩싸이면서 좌초하는 경우를 그동안 숱하게 봐 왔다. 수천 수만 명에 달하는 임직원의 생계와 협력사의 운명을 뒤흔드는 것은 물론, 국민 경제에 크나큰 손실을 끼치는 결과를 낳았다. 기업주에게는 가족의 안위보다 기업의 운명이 우선시 돼야 한다. 회사는 개인의 것이 아니다.
손정협 산업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