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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주거독립사)⑥거실보다는 주방, 포르투갈
입력 : 2015-07-21 오전 10:08:24
토마토 미디어그룹에서는 광복 70주년에 기해 특집 다큐멘터리 '한국인 주거독립사' 를 준비중이다. 11월 방영 예정이며 3부작으로 기획된 본 다큐멘터리는 일본 강점기 이전과 이후달라진 우리의 주거공간을 살펴본다.(편집자)
 
일제 강점기와 6.25를 거치면서 한국은 급격한 도시화, 그리고 전쟁으로 파괴된 도시의 재건에 직면하게 된다. 아파트와 빌라 등 공동주거양식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한국. 이번에는 다른 나라 상황과 비교해볼까 한다. 한국보다 낮은 GDP와 최저임금, 그러나 그에 상대적으로 집값은 높다고 알려진 포르투갈부터 시작한다.
 
리스본의 좁은 골목. 사진/알토마토
리스본에서는 좌회전을 하기 힘들다. 마치 이곳은 경남 진해같다. 그에 비하면 진해는 양반이었다. 가는 곳곳에 동상이 서 있고 그곳은 어김없이 로터리가 조성되어 있다. 미로처럼 좁은 언덕길에 트램과트라이시클이 오르내리고, 그 좁은 길을 차량과 버스가 함께 쓴다. 로터리가 많은 것은 일방통행의 1차선 도로가 많아서일 것이라고 짐작해본다.
 
주택들의 지붕이 이룬 물결을 보니 북촌의 한옥지붕들도 떠오르고 산곡동, 초량동 언덕의 주택들도 생각난다. 역시 인구밀도가 높은 이곳 역시 공동주택형 거주형태가 대세다. 한국과 다른 점이라면 1700년대 발생했던 리스본 대지진 후 지어진 건물들에 2015년 현재까지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점 정도다. 이곳에서는 새 건물을 찾아보는 것이 한국처럼 쉽지 않다.
 
구릉지를 살린 건축. 지붕의 물결. 사진/알토마토
 
우리의 전통적 거주양식은 단층한옥이다. 하지만 리스본은 200년을 더 산 다층양식의 주거공간이 존재한다. 리스본의 중심지인 호시오 광장에 서서 그 풍경을 바라보면 건물이 이뤄내는 지층의 원근감에 경의로움을 느끼게 된다. 구릉지를 밀고 평탄하게 만드는 토목공사 없이 지형을 살려 그대로 집을 지었기에 가능한 물결이다.
 
하지만 경의로움을 넘어서는 경험은 그 이후에 가능하다. 좁은 길, 좁은 계단, 가파른 경사에 우뚝 선 건물들. 이 오래된 유물 안에서 현대인들의 일상이 과거처럼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순간, 편리한 주거의 기준이 순간 흔들리게 된다.
 
차와 사람과 트램, 심지어 자전거까지 함께 다니는 이 좁은 골목을 통해 이곳에 사는 이들의 살림살이들이 옮겨졌다는 생각을 해본다면. 집에 맞춰 살 줄 아는 낙천적인 포르투갈 사람들의 성격에 감탄하게 된다. 리스본 중앙에 살아야 하는 사람들은 주로 이곳에서 늦게까지 일을 하거나 아침 일찍 출근을 해야 하는 이들이다.
 
8만 유로 가격의 신축 주택.수영장이 있다. 사진/알토마토
 
포르투갈의 주택 가격은 지난 2년 동안 상승세에 있다. 이는 국제적인 부동산 경기 흐름과도 연관이 있다. 하지만 어느 국가든 오르는 곳이 오르고 오르지 않는 곳은 통계의 예외가 된다. 어디를 가나 주거를 선택하는 사람들의 기준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새다.
 
오래된 집이라서 싼 집은 없다. 새로 지은 집이라고 비싸지도 않다. 리스본을 포함한 포르투갈 전역에서도 직장과의 거리, 상태적인 인근 시세에 따라 집값이 결정된다. 하지만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오래된 집을 대하는 이들의 자세와 건축 시 지켜야 하는 최소면적의 기준이다(이 부분은 다큐멘터리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룰 예정이다).
 
포르투갈 곳곳에서는 건물 앞면만 남기고 뒤를 밀어버린 공사판들이 눈에 띈다. 혹은 오래된 건물에 현대식 건물을 증축하거나 붙여 지은 흔적도 보인다. 오래된 건축물은 법으로 보호받는 탓에 재건축이 쉽지 않다. 그리고이곳 법률에서는 한 사람당 필요한 최소면적을 정해놓았다. 가난하다고 해서 좁은 집에 살아야 한다는 공식보다는 인간적인 공식이다(한국에도 이 공식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코임브라 가정 부엌의 풍경. 사진/알토마토
 
“이 집에는 거실이 없어요.”
 
코임브라에서 만난 인터뷰이는 자신의 집을 이렇게 소개했다. 한국과 다른 또 하나는 입구에서부터 마주하는 복도와 가끔 생략되기도 하는 거실의 ‘가벼운 존재감’이다. 일렬로 방이 늘어선 구조의 주거용 공간은 들어가는 순간 방문자를 방황하게 한다. 하지만, 거실이 없어 TV가 없고 또한 볼 것은 오직 음식과 서로의 얼굴뿐인 주방에서는 서로에 대한 몰입도가 높아진다. 생각해보니 최근 지어진 한국의 아파트에서도 복도식 입구와 친목공간으로 주방의 역할이 확대되었다.
 
또 다른 인터뷰이의 집. 이곳은 방 하나에 거실이 있고 주방이 달린 작은 아파트다. 부부 둘이 단출히 사는 이곳에서도 주방이 눈에 띈다. 주방과 거실의 경계가 모호한 것이다. 마치 작은 음식점을 연상케 하듯, 주방은 거실로 틔어 있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신축 주택의 주방은 더욱 그 기능이 확대되었다. 입구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공간이자 외부의 풀장과 이어지는 공간이다.
 
흔히 응접실 또는 게스트룸, 리빙룸, 거실 등으로 불리는 공간의 접대 역할이 주방에 있다는 점은 부러운 점이다. 적어도 이곳에 오는 손님은 누구든 뭔가를 먹으며 이야기 하거나 하다못해 차 한잔이라도 나누며 서로에게 집중해볼 수 있을테니 말이다. 거실에서 TV를 보며 대화하는 우리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지 않을까 싶다.
 
이도화 알토마토PD
손정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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