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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주거독립사)⑤충정아파트, 그 아파트
입력 : 2015-07-10 오전 10:00:00
토마토 미디어그룹에서는 광복 70주년에 기해 특집 다큐멘터리 '한국인 주거독립사'를 준비중이다. 11월 방영 예정이며 3부작으로 기획된 본 다큐멘터리는 일본 강점기 이전과 이후 달라진 우리의 주거공간을 살펴본다.(편집자)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아파트를 사랑하는가? 혹은 그 획일성을 혐오하는가. 아파트는 좁은 땅에서 다세대의 동시거주를 가능하게 하는 주거공간이다. 한국처럼 수도권에 인구 절반가량이 몰려있는 나라라면, 특히 그 수도권이라면 아파트는 유일한 주거문제 해결책처럼 보일 수 있다. 이 다층구조의 아파트는 온돌 단층문화의 한국에 대체 언제, 왜 들어왔을까?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현존하는 한국 최초의 아파트로 불리는 충정아파트를 찾았다.
 
충정아파트. 사진/알토마토
 
건물이 지어진 것을 기준으로 현존 최초의 아파트를 구분한다면 당연 충정아파트가 최고령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주거목적으로 지어진 최초의 아파트를 찾는다면 이는 충정아파트가 아닐 수 있다. 우리가 아는 충정아파트는 일본 기업에서 직원숙소로, ‘료(寮: 기숙사)’의 형태로 지었다는 의견이 있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이렇게 바뀐다. ‘현존하는 최고령 아파트는 일반가정의 주거용이 아닌, 직원용 숙소에 대한 필요성으로 일본 강점기에 지어졌다.’ 실제로 충정아파트의 내부는 직원용 기숙사로 분류되는 ‘료’의 형태다. 건설 당시 충정아파트에는 공동 화장실과 식당 등이 있었다. 각 세대별 살림살이가 구분되는 아파트와는 확연히 다르다. 그러나 형태가 ‘료’였을 뿐, 실제로는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임대되었다고 한다. 화장실이 건물 안에 있다는 것, 그리고 보일러 시설이 갖춰진 건물이라는 점은 그 당시 한국인들에게는 새로운 일이었다.
 
 
확장된 도로. 나무 뒤에 숨은 충정아파트. 사진/알토마토
 
하지만 충정아파트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현존 최고 아파트라는 점을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그곳을 스쳐간 이들을 이야기하는 게 더욱 재미있다. 어쩌면 한국 근대사의 여러 단면을 담고 있는 건물의 의미가 최초 아파트라는 의미보다 클지도 모른다.
 
1930년대에 콘크리트로 건설된 이 건물은 장구한 나이만큼이나 얽힌 이야기도 많다. 숙소에서 호텔로 용도가 변경되면서 소유자가 바뀌기도 했고, 식민지에서 해방되면서는 무단점유를 당하기도 했다. 6.25 당시에는 인민군 재판소가 되었다. (포로를 수용하고 처형했다는 살벌한 소문도 들린다.) 그리고 6.25 후에는 김병조라는 이에게 건물 전체가 불하된다.
 
모든 이야기가 흥미진진하지만 이 부분이 가장 스펙터클하다. 전쟁에서 6명의 아들을 모두 잃었다고 주장하는 김병조에게 국가가 효자노릇을 하겠다며 건물을 주기로 한 것이다. 당시 풍전빌딩으로 불리던 이 건물은 미군 숙소 아파트로 쓰이던 상태였다. 그러나 미국 측도 여섯 아들을 잃은 김병조에게 호텔을 고스란히 넘긴다. 그는 '반공의 아버지'로 불리게 되었고 충정아파트는 코리아관광호텔이 되었다. 당시 시가로 그 건물은 5000만원이었다. 그러나 후일 김병조의 본명은 김병좌이며 그가 쌀배급을 타보려던 목적으로 없던 아들을 만들어내 전사신고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그는 사기죄로 구속되었다.
 
 
충정아파트 중정. 중앙난방을 위한 굴뚝이 보인다. 사진/알토마토
 
코리아관광호텔은 아파트로 수리를 거쳐 75년에 서울신탁을 통해 분양된다. 지금의 모습은 1979년 앞의 도로가 8차선으로 확장되면서 입구 부분이 사라진 모습이다.
 
“그때는 이리 지나가면서 옆이 목욕탕이었어요. 목욕하러 오게 되면, 지금은 잘려서 볼품없지만 예전에는 들어가는 입구가 괜찮았어요. 호텔로 지었기 때문에. 그런데 지금 봐서는 너무 초라하지 집이.”
 
이곳에서 오랫동안 부동산을 한 공인중개사의 말이다. 인근에 빌딩이 많지 않았던 60년대만 해도 충정아파트는 눈에 띄는 건물이었다. 하지만 빌딩 사이의 지금 모습은 섬과 같다. (2015년에 쳐다봐도 1960년 즈음이 느껴진다.) 과거에는 역사의 풍랑을 탔다면 지금은 사람들의 입방아를 탄다. 재개발을 두고 지루한 논쟁이 이어지는 중이다.
 
“예전의 영화에 여기가 캐스팅이 됐는데 주민 반대로 촬영이 안 됐어.”
 
층마다 모든 세대가 중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특이한 구조 때문에 영화 캐스팅이 여전히, 종종 들어오는 아파트다. 일반 주택보다 용적률이 높아 개발가치가 높은 준상업지구. 충정아파트는 현재 그곳에 서 있다. 그래서 재개발 논의는 실패하다가도 또다시 불이 붙고 그러기를 몇 차례, 지금은 그래도 순탄하게 진행될 것 같다고, 인근 공인중개사는 말한다. 명의자는 대부분 다른 지역에 살고, 세입자들이 싼 맛에, 그러나 뛰어난 교통환경과 독특한 분위기에 끌려 이곳에 자리잡는다.
 
안방과 부엌 사이 벽의 창문. 사진/알토마토
 
내부가 궁금했다. 길쪽이 아닌 뒤편을 바라보는 세대를 구경해보았다. 후면에 나무가 가득하다. 프랑스대사관이 있고 나무가 있어서 도로쪽보다는 살기 좋아보인다. 내부에는 벽장이 남아있다. 옛 아파트답게 부엌 쪽에는 파이프가 있고 부엌과 안방 사이벽에 창이 뚫려 있다. (이 부분은 정말 특이해보인다.) 현재 이곳에 사는 이의 80%가 세입자로 추정된다. 복도는 어둡고 집과 집 사이의 소리는 너무나 잘 들린다. 복도 외에는 장독을 놓을 베란다도 없고 빨래를 널 곳도 없다. 그러다보니 살림들이 밖으로 다들 나와있다. 적어도 지금의 아파트처럼 세대들이 각자를 꽁꽁 숨기고 살지는 못하겠구나 싶다.
 
도심가 인구팽창, 노후화, 인구이동 후 슬럼화를 겪는 것처럼, 충정아파트도 주거지로써 충분히 슬럼화되었다. 용적률이 570%에 달하는 준주거지역. 그곳에 선 5층짜리 충정아파트. 이 낡고 사연 많은 아파트가 재개발된다면, 충정로의 풍경도 사뭇 달라질 것이다. 아마도 이 자리에도 높은 건물이 새로 들어서서 거리가 일견 일관성 있는 거리로 바뀔 것이다. 궁서체로 박힌 현판을 뒤로하고 80세를 넘어서 세 자리 숫자를 바라보는 이 아파트를 내년에도 볼 수 있을까 생각해본다.
 
 
이도화 알토마토PD
손정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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