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실상부. 이름과 실상이 서로 부합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실제 우리 삶속에서는 이름 때문에 실상을 오해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지난 몇 년간 큰 손해를 보면서 몸소 체득한 사람들이 많지만 여전히 ‘적립식’이라는 말 때문에 오해하는 사람 또한 많은 ‘적립식 펀드’는 적금이 아니다. 적금과는 달리 원금이 보장되지 않는 위험도가 높은 주식투자 상품이다. 이러한 오해는 기업지배구조라는 용어의 인식에서 더욱 극명하게 나타난다. ‘지배’라는 말 때문에 ‘기업지배구조(corporate governance)’도 누가 기업을 지배 또는 소유하느냐의 문제 즉 소유구조로 오해받곤 한다. 그러나 소유구조는 기업지배구조 자체가 아니라 기업지배구조를 형성하고 그 토대가 되는 주요 요소 중 하나일 뿐이다.
기업지배구조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쉽지 않지만 대개 주주, 이사회, 경영자, 기타 이해관계자들의 상호작용 관계를 규율하는 메커니즘으로 일컬어진다. 기업 경영권의 창출, 행사, 감독 등 기업경영 활동 전반을 아우르는 시스템이라고도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자본과 노동 같은 회사자원을 적절하게 배분하고 활용하여 지속가능기업으로서 성장ㆍ발전을 추구하되 회사 내외부의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배려하도록 하는 회사 운영의 전체 틀이다. 따라서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한다는 것은 이러한 시스템이 원활하게 기능하여 지속가능한 성장을 지향하며 회사가치를 제고시키고 그 성과를 정당하게 이해관계를 가지는 당사자들이 공정하게 분배받도록 한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경영권 분쟁이 진행중인 L그룹의 경우 소유구조 즉 누가 지분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는 기업지배구조 측면에서도 중요한 사항이다. 그러나 L그룹의 기업지배구조가 문제된다고 할 때는 단지 주식지분이 누구에게 얼마나 있느냐의 문제보다 이러한 중요한 경영상의 리스크나 문제가 발생하였을 때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 통제 및 극복할 수 있는 규정과 이를 담당할 주체 등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고 이것이 실제 작동하느냐가 더욱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기업지배구조는 회사가치의 저하와 주주의 손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작동하여야 한다.
기업지배구조의 요소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소유구조 이외에 중요한 요소로 들 수 있는 것은 먼저 이사회의 독립적 구성과 운영이다. 이사회가 주주대표성을 가지도록 구성되어야 하며 경영진과 지배주주로부터 독립적인 사외이사가 구성원으로 참여하여야 한다. 그렇게 되어야 현대 이사회의 핵심역할인 경영진 감독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며 전체주주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다. 이사회는 기업의 경영목표와 기본전략을 결정하는 기능도 가지고 있으나 현대 기업에 있어 이사회의 기대 역할은 경영진 감독에 더욱 힘이 실리고 있다. 왜냐하면 복잡하고 치열한 경쟁 하에서 신속한 의사결정이 더욱 필요한 상황이기에 많은 경영의사 결정이 CEO를 정점으로 하는 경영진에게 맡겨져 있기 때문이다.
감사기구 등 내부 통제체제도 주요 요소 중 하나이다. 경영진의 경영활동이 적법한 절차를 거쳐 정당성을 확보하고 합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집행되었는지 감독하는 것이 핵심이다. 내부 감사기구는 경영진 및 지배주주로부터 독립적인 입장에서 성실하게 감사업무를 수행할 수 있어야 하며 주요 활동 내역은 공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경영투명성의 제고와 시장에 의한 경영감시는 최근에 더욱 강조되는 핵심적인 요소이다. 기업은 주주, 채권자, 잠재적 투자자 등 이해관계자에 대하여 그들의 의사결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항을 적극적으로 공시하여야 한다. 이를 통해 시장의 평가와 감시를 받고 보다 개선된 지배구조를 갖추어 나갈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기업지배구조 요소는 소수주주의 권리보호와 모든 주주에 대한 공평한 대우이다. 모든 주주는 보유주식의 수와 종류에 따라 공평한 권리를 부여받아야 한다. 회사는 모든 주주에게 권리행사에 필요한 정보를 사전에 충분히 제공하여야 하며 적절한 절차에 의하여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지금까지 회사 내부의 지배구조 요소들을 살펴보았다. 회사 외부에도 기업지배구조와 관련한 주요 요소가 있을까? 다음 글에서 함께 생각해 보기로 한다.
정재규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