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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연말 인사의 두가지 모습
입력 : 2015-12-08 오전 6:00:00
연말 인사철을 맞은 재계가 그 어느 때보다 냉혹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이미 예견은 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물갈이 폭이 상상 이상이라는 평가다. 조선, 해운 등 세계적인 불황에 실적이 부진한 기업은 물론, 나름 선방했다고 인정받는 회사들도 선제적으로 몸집 줄이기에 나선 모양새다. 어쩌면, 감원 경쟁에 들어갔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번 대기업 인사에서는 최고 경영자의 건재 속에 실무 임원들의 문책성 탈락이 두드러진다. CEO는 예상 밖으로 자리를 유지한 반면, 상무, 전무급 임원들은 유난히 많이 옷을 벗었다. 책임이 큰 사람은 살아남고, 그 밑에서 궂은 일을 한 사람은 짐을 싼다. 조직 안정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시각도 있다.
 
그나마 ‘샐러리맨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임원을 지내본 사람은 사정이 낫다. 임원은 '임시직원'의 줄임말이라고들 하니, 충격이 덜 할 수도 있겠다. 향후 있을 후속 인사에서는 고참 부장들의 대거 탈락이 예상된다. 아직 50도 안된 나이다. 위에서 까이고 밑에서 치이며 하루하루 전쟁 같은 일상을 치르느라 ‘인생 이모작’ 준비는 엄두도 못낸 세대다. 중고등학생 자녀를 두고 돈 들어갈 일이 한창 많을 때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진짜 비극은 이들에게 있다.
 
그런 가운데 다른 한쪽에서는 정반대 소식도 있다. 오너 3~4세들의 고속 승진은 그 어느 때보다도 활발하다. 기업 총수들의 30~40대 젊은 자녀들이 앞다투어 핵심 보직으로 진입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은 경제민주화 바람과 땅콩회항 사건 등으로 국민 여론을 의식할 수 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기업 승계에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될 만큼 사회 분위기가 달라진 것일까.
 
해당 기업들은 ‘실적에 따른 인사’라고 입을 모으고 있지만, 눈물과 땀이 밴 자리를 떠나야 하는 늙수그레한 가장들에게 오너 자녀들의 승진 잔치는 어떻게 비춰질까. 해외 유학 경험과 화려한 스펙을 갖췄다고는 하지만 경영능력은 채 검증되지 않은 이들 3~4세가 할아버지, 아버지의 신화를 이어갈 수 있을까.
 
한 기업을 경영한다는 것은 그 밑에 딸린 식구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일이다. 달아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무게를 감당해야 한다. 지금 망연한 심정으로 집으로 돌아갈 짐을 싸고 있는 수많은 고참 부장들이 회사 경영진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말인지도 모른다.
 
손정협 산업부장
손정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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