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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맛의 인문학)④아메리카노-제국주의의 기억 너머로 자유의 풍미가 세계를 덮다
입력 : 2016-03-03 오전 6:00:00
‘보스턴 차사건’의 여파로 식민지 미국인들은 홍차 대신 커피를 마시게 된다. 커피를 마시는 행위는 애국적인 것으로 간주되었고 홍차를 마시면 어쩐지 비애국적으로 비춰졌다는 얘기다. 커피와 애국심의 연결 또한 후대의 미화라는 지적이 있다. 어쨌거나 이때부터 미국은 홍차의 나라 영국과 달리 영국 식민지였음에도 커피의 나라로 변신한다. 사실 미국 독립의 가장 선명한 징표는 자유가 아니라, 커피다.
 
1773년 12월 16일 미국 보스턴 항구에서는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 사건이 일어난다. 보스턴 시민들이 항구 안에 정박 중인 동인도회사 선박 2척을 습격하여 배 안에 실려 있던 차(茶)상자 342개를 깨뜨려 모조리 바다에다 버렸다. 습격 시민들 가운데 일부는 인디언 복장을 하고 있었다. 물론 진짜 인디언은 아니었다. 우리에게 ‘보스턴 차사건’으로 알려져 있는 미국사의 한 장면이다.
 
이 사건은 미국 독립전쟁의 도화선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 본국의 무리한 과세에 반대하여 애국적 미국 시민이 봉기하고 이후 강해진 영국정부의 탄압에 맞서 미국 독립전쟁으로 진전하였다는 스토리 또한 잘 알려져 있다. “자유로운 민주주의 국가” 아메리카합중국의 일종의 건국‘신화’라 할 이 사건에는 모든 신화가 그렇듯 다소 왜곡이 가해졌다. 얘기를 더 진행하기 전에 명칭부터 짚고 넘어가면 1773년의 그 일을 우리가 ‘보스턴 차사건’으로 부르는 반면 미국에서는 ‘보스턴 티 파티[Boston Tea Party]’라고 부른다. ‘티 파티’라는 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명칭에는 후대의 윤색이 약간 들어가 있다. ‘티 파티’는 미국 정치에서 보수적 유권자를 뭉뚱그려 말하거나 그 집단의 운동을 의미하며, 조세저항운동이란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TEA’가 “이미 충분한 세금을 냈다(Taxed enough already)”의 머리글자로 활용될 때도 있다.
 
후대의 의미부여는 빼고 당시 보스턴에서 일어난 ‘파티’의 본질은, 그러나 널리 알려진 대로 “대표 없이 과세 없다”는 어떤 근원적인 민주주의의 열망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러한 ‘신화’적 열망 외에 숨겨진 탐욕은 그때의 분노를 설명하는 다른 주요 원인이다.
 
탐욕의 보스턴 차사건과 애국음료 커피
보스턴 항에 정박한 동인도회사 선박을 습격하도록 부추긴 세력은 차 밀수업자들이었다. 그때 미국 식민지에 들어오는 차는 영국 본국을 거쳐서 들어왔기에 구조적으로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시장논리상 밀수가 성행하였고, 밀수를 통해 많은 돈을 버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1773년 5월 통과된 영국의 홍차법(Tea Act)은 동인도회사가 미국 식민지에서 직접 그리고 독점적으로 차를 팔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면서 차에 세금을 물렸다. 이렇게 되면 미국의 차 수입가가 떨어져 보통의 식민지 미국인들은 혜택을 입을 수 있었다. 홍차법에 따라 가장 큰 타격을 입게 되는 이들은 차 밀수업자들이었다. 이들은 공식 유통경로를 다양하게 우회하여 미국 식민지에 싼 값에 차를 공급함으로써 오랫동안 이득을 취했는데, 동인도회사가 직접 식민지 미국에서 차를 판매하게 되자 하루아침에 쫄딱 망할 처지가 되었다. 동인도회사의 공급가가 밀수가보다 낮았기 때문이다. 당시 힘을 얻고 있던 반(反)영 분위기에 편승한 차 밀수업자들의 선동이 ‘보스턴 차사건’의 중요한 원인이었다는 사실은 미국독립의 흑역사이다.
 
후대에서 미화한 것과 달리 조지 워싱턴 등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을 포함하여 다수 미국인들은 ‘보스턴 차사건’에 경악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중 핵심 인물인 벤자민 프랭클린은 시민들과 함께 수장된 홍차값 변상운동을 펼쳐 실제로 영국 의회에 전달하였다.
 
안 그래도 산업혁명의 진전에 따라 시장확보 등의 이유로 식민지 미국에 대한 본국의 통제를 강화하려던 영국은 ‘보스턴 차사건’을 계기로 더욱 강경한 입장으로 돌아서게 된다. 그러한 맥락에서 프랭클린 등의 변상시도는 문전박대를 당하고, 대서양 양안의 긴장은 높아진다. ‘보스턴 차사건’의 후폭풍은 특히 미국 식민지 내 상류사회를 동요하게 만든다. 그동안 영국의 느슨한 식민지 정책으로 인해 식민지 권력의 파트너로, 사실상 식민지 지배계급으로 군림한 그들의 지위가 흔들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영국의 직접통치가 강해지면 기존 식민지 지배계급의 위상은 격하될 수밖에 없었다. 권력과 부의 존속을 원한 식민지 지배계급은 영국과의 갈등 심화에 따라 결국 미국 독립의 길의 선두에 서게 되고, 주요 ‘애국적’ 인사들을 ‘건국의 아버지’의 반열에 올려놓는다.
 
역사에서 보듯 이후 미국은 전쟁을 거쳐 아메리카합중국으로 탄생하고 자유롭고 정의로운 나라를 자처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때 출범한 “자유 아메리카”는 돈 많은 백인 남자들의 나라에 불과했다. 가난한 백인, 흑인, 인디언, 여성 등은 그 나라의 자랑스러운 국민 혹은 시민이 되지 못했다. 미국 독립혁명이 만들어낸 많은 변화 가운데 가장 큰 변화는 영국 국왕에서 현지의 백인 지주들로 지배자를 변경했다는 어찌 보면 변화 같지 않은 변화였다.
 
내용상으론 전혀 변화가 없는 지배자의 교체 말고 지금의 아메리카를 말하는 데 불가결한 변화가 바로 커피다. ‘보스턴 차사건’의 여파로 식민지 미국인들은 홍차 대신 커피를 마시게 된다. 커피를 마시는 행위는 애국적인 것으로 간주되었고 홍차를 마시면 어쩐지 비애국적으로 비춰졌다는 얘기다. 커피와 애국심의 연결 또한 후대의 미화라는 지적이 있다. ‘보스턴 차사건’ 이래 영국과의 대립으로 차 직수입이 불가능해져 홍차 값은 오른 반면 중남미 등지에서 재배가 가능한 커피 값은 상대적으로 쌌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어쨌거나 이때부터 미국은 홍차의 나라 영국과 달리 영국 식민지였음에도 커피의 나라로 변신한다. 사실 미국 독립의 가장 선명한 징표는 자유가 아니라, 커피다.
 
아메리카노, 복제품에서 원본으로
 
나는 하루에도 여러 잔의 커피를 마신다. 좀 과하게 마시는 편이지만 커피 때문에 건강을 해칠까 하는 걱정은 별로 없다. 그게 설탕 크림 빼고 블랙 커피로 먹기 때문에 커피문화로 인한 유해물질의 태반을 피해간다. 처음 커피와 인연은 갓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로 기억한다. 그때 커피는 인스턴트 커피였고, 여기에 “설탕 둘, 프리마 둘” 이런 식의 취향을 가미한 ‘다방커피’가 주류였다. 다방뿐 아니라 집에서도 대부분 ‘다방커피’를 마셨다.
 
아마도 당대 유행을 좇아 문학소년 흉내를 내었던 나는 어디서 유래한 겉멋인지 ‘아메리칸 스타일’의 커피로 커피인생을 시작하였다. 커피 가루를 조금만 뜨거운 물에 풀어 조금 연하게 마시는 ‘아메리칸’. 그래도 좀 쓴 편에 속했지만 모양을 내느라 참고 마시다 수 십 년이 지나다 보니 어느새 다른 이물질을 싫어하는 건강한 커피습관이 몸에 배게 되었다. 그때 이후로 내가 마신 커피는 ‘아메리칸’ ‘아메리칸 스타일’ ‘블랙 커피’ 등으로 명칭이 혼용되다 요즘은 어느 유명 커피체인에서 ‘아메리카노’를 출시한 뒤 이물질 없이 마시는 이 커피를 ‘아메리카노’로 통일해 부르는 모양이다. ‘10cm’란 가수의 ’아메리카노‘란 노래가 나름 결정타가 아니었을까 한다.
 
아메리카노는 이제 글로벌 스탠다드가 되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아메리칸 스타일 커피’는 주지하듯 물을 많이 타서 밍밍한 맛이다. ‘아메리칸’의 유래에 대해선 몇 가지 설이 있다. 유럽 상류층의 문화를 흉내 내고 싶었지만 물자가 부족해 연하게 먹었다는 설은, 아마도 ‘보스턴 차사건’ 이전 초기 식민지 시대 이야기이지 싶다. 천박한 양키문화라고 아메리카 문화를 비아냥거릴 때 동원될 법한 일화다.
 
또 다른 설은 커피가 ‘보스턴 차사건’으로 ‘국민음료’로 자리를 잡은 후 서부 개척기 등을 거치는 동안 열악한 환경을 창조적으로 극복하면서 그런 스타일의 미국식 문화로 발전시켰다는 설명이다. 예컨대 말을 타고 이동할 때는 볶은 상태이든 원두이든 불가피하게 오래된 커피를 먹을 수밖에 없었을 테고, 그런 환경에서 유럽처럼 제대로 구색을 갖춰 커피를 마시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즉 더 쓰거나 더 떫은 맛의 커피를 마실 만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자연스레 물을 많이 부어 희석한 커피를 음용하다가 하나의 문화로 굳어졌다는 설명이다.
 
지금의 아메리카노 또한 커피를 내린 뒤 뜨거운 물로 희석하여 제공되니 미국식 전통을 계승한 ‘아메리칸 스타일’이 맞긴 맞다. 하지만 물을 부어 희석하기 전 원두에서 추출된 최초의 커피는 많이 달라졌다. 고압의 고성능 커피머신에서 내린 커피의 풍미는, 과거 열악한 시절의 운치 있었을지 모르지만 빈약한 맛과는 비교를 불허한다. 나아가 아메리카노는 이제 글로벌 스탠다드가 되었다.
 
제국주의 취향?
 
여러 정파가 잠시 동거한 2012년의 통합진보당에서는 유시민씨가 관련된 ‘아메리카노 논쟁’이 일어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내분에 휩싸인 통진당에서 백승우 전 사무부총장이 유시민 전 공동대표를 공격하면서 유 전 대표의 커피 취향을 거론한 게 이른 바 '아메리카노 논쟁' 이다.
 
다른 내용은 넘어가고, 백 전 사무부총장이 "아메리카노 커피를 먹어야 회의를 할 수 있는 이 분들을 보면서 노동자 민중과 무슨 인연이 있는지 의아할 뿐"이라는 발언만 소개하고자 한다. “커피믹스 먹으면 진보, 아메리카노 먹으면 착취냐”는 반론이 제기되는 등 백 사무부총장의 완고함은 당내에서조차 적잖은 반발을 불러왔다. 유 전 대표 본인은 "그거 사실 이름이 그래서 그렇지 미국하고는 별 관계가 없는 싱거운 물커피"라고 해명했다. 해프닝으로 끝난 사건이지만, 유시민씨가 굳이 음료 이름을 들이대며 “미국과는 별 관계가 없다”고 변명해야 할 정도로 아메리카노에는 바로 그 이름으로 인한 미국 제국주의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영국의 제국주의에 맞선 독립과 자유의 음료가 이제는 스스로 제국주의의 담지자로 변모한 역사의 역설이다. 그러나 두 가지 모두 허위의식이고 조작된 이미지일 따름이다.
 
‘아메리카노 논쟁’ 이후 유시민씨는 그래도 “아메리카노 커피를 포기하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맞다. 아메리카노를 포기할 건 없다. 아메리카노가 미국문화인 건 맞지만, 아메리카노를 먹는다고 제국주의 취향이 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아메리카노는 아메리카노다.
 
안치용 토마토CSR연구소장
손정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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