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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책임)인권경영 수준은 기업이 아닌 국가의 수준
입력 : 2016-09-05 오전 6:00:00
소설가 정을병의 작품, 육조지(창작과 비평, 1974년 가을호)는 제목 그대로 조지는 이야기다. 그 내용을 인용한 기사나 기고문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다. 인용된 내용들이 조금씩 다르긴 하나 요약하면 이렇다. “형사(경찰)는 때려 조지고, 검사는 불러 조지고, 판사는 미뤄 조지고, 간수는 세어 조지고, 죄수(남편)는 먹어 조지고, 집구석(부인)은 팔아 조진다.”
 
예나 지금이나 감옥에 갇힌 남편은 가족이나 지인이 넣어주는 사식에 목메어 있을 법하다. 아내는 수입이 끊기거나 마땅치 않으니 집안 가재도구라도 팔아서 옥바라지를 해야 한다. 간수는 감방 드나들 때마다 죄수들 인원 체크하는 것을 반복할 것이고 경찰과 검찰의 강압수사는 전직 대통령, 재벌회장도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정도니 작품이 발표된 시점의 옛 이야기 쯤으로 웃어넘겨지지 않는다.
 
하나 남은 게 판사의 조지는 기술인데 늑장 판결이다. 억울한 피의자 입장은 말할 것도 없고 돈 없는 피해자 입장에서는 견디기 어려운 세월이다. 직장이 없어지고 경제적 궁핍과 가족해체, 자살로 이어지는 경우를 언론을 통해서 쉽게 접할 수 있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경찰과 검찰의 수사 착수나 진행이 늦어지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정의가 지연되는 것은 정의가 거부되는 것과 같다.”
 
피해자들은 누구나 평등하게 사법적 구제 시스템에 접근하고 신속하고 적절하게 구제를 받아야 한다.
 
올해 61, 유엔인권이사회 기업과 인권에 관한 실무그룹(UNWG)10일 간 한국의 기업과 인권(인권경영)’ 이행상황을 살펴보고 출국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 자리에서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사망사건에 대한 피해자 구제가 지나치게 늦어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사실 정의의 실현 없이는 희생자는 버려지고 범죄자는 어떤 처벌도 받지 않고 유유히 사라진다. 정의가 지연되더라도 결코 거부되어서는 안 된다.”(뉴스위크, 2009, 배우 안젤리나 졸리가 다르푸르 학살사태에 오바마 대통령의 즉각적인 행동을 촉구하면서 쓴 기고문에서)고 말하는 것이 당시에 더 적절한 표현이었을 것이다.
 
사법적 구제 주체는 국가다. 또한 국제인권조약들은 국가가 법제도와 정책 및 관행을 구축해 사회 구성원들의 권리 향유를 보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해외에 진출한 자국 기업들의 인권침해 연루 문제가 불거지면서 국내법의 역외적용을 통해 국가가 관할권을 행사할 것을 주문하기도 한다. 예로 유엔 경제·사회·문화적 규약을 감시하는 위원회는 자국의 국민과 기업이 특히 음식, , 건강에 관한 권리와 관련하여 다른 나라에서 권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조치해야 한다고 당사국에 권고하고 있다.
 
UNWG의 출국기자회견문을 보면 인권침해가 발생한 하청기업이나 적절한 인권실사 의무를 실행하지 않은 국민연금을 방문하지 않고 관련 정부부처나 대우인터내셔널, 조폐공사, 서울도시철도공사, 한국전력,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삼성전자, LG전자 등 원청 기업을 면담했다. 영향권에 기초해 공급망 인권책임을 강조한 것이다. 국가가 기업에 미치는 영향력은 따로 강조할 필요도 없다.
기업과 인권(인권경영)보호, 존중, 구제프레임워크에서 알 수 있듯이 기업 등 제 3자에 의한 인권침해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할 의무를 지닌 국가와 인권 존중을 위한 인권실사 책임을 가진 기업의 협력을 기반으로 구축된 패러다임이다. 무엇보다 국가가 기업에 기대하는 인권경영 수준을 명확하게 표명하고 그 실행을 위한 일관된 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국가인권위원회는 8월에 기업과 인권 전문관보직을 신설하고 담당자를 임명하였으며, 기업과 인권 국가인권정책 기본계획(NAP) 권고안을 마련해 이달 2일에 권고안을 정부에 통보하였다. 7일에는 홍일표 의원실과 공동으로 국회에서 관련 정부부처, 공공기관, 기업, 시민사회를 대상으로 NAP설명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정부부처 관련 국·과장들의 참여 정도가 정부의 기업과 인권에 대한 실행 의지와 정책적 일관성을 보여줄 시금석이 될 것이다.
 
김용구 기업책임시민센터 사무국장/국가인권위원회 기업과 인권 실무그룹 위원
손정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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