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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 바람)오다리
입력 : 2016-09-05 오전 6:00:00
“면접 시 다리가 벌어져 붙지 않는 사람은 면접관이 다리를 붙여보라고 할 수 있으니 유의하십시오.”
항공승무원 학원에 다니는 친구가 받아온 유인물에 적힌 문구는 눈을 의심하게 했다. 이미 휘어 벌어진 다리를 붙여보는 게 가능하긴 한가. 뒤에 이어진 친구의 말은 귀를 의심하게 했다.
 
“지금 다이어트 중이야. 학원 선생님이 3~4kg만 감량하자고 하셨어. 내 상체가 날씬한 편이 아니라서.”
1년 가까운 중국 어학연수기간 동안 인턴까지 하고 한국에 돌아온 친구는 얼마 전 HSK(한어수평고시) 6급 시험에 합격했다. 복학을 앞둔 친구는 학기 중에 중국어 회화 학원을 다니며 토익 시험을 봐야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다리 모양과 다이어트라니. 친구는 피부 관리와 치아미백을 받아야 할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4년제 대학 졸업장과 어학연수, 해외인턴, 어학시험 관련 스펙들은 몸매와 피부 상태, 치아 색 앞에서 기를 펴지 못하는 듯 했다.
 
항공승무원은 하늘의 꽃이라고 했던가. 항공운항과를 졸업하고 항공사에서 일하고 있는 또 다른 친구는 학교에 다니는 내내 꽃이 되기 위해 연습했다. 항공운항과 학생들은 아침 9시 수업을 듣기 위해 등교하는 학생들보다 한 시간 먼저 등교해 제복을 갖춰 입고 정문에서 “안녕하십니까. 어서 오십시오.”라고 허리 숙여 인사해야 했다. 화장하지 않고 등교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항상 7센티미터의 하이힐을 신어야 했고, 발이 구두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이유로 엘리베이터를 탈 수 없어 7층에 있는 강의실까지 걸어 다녔다. 발목에 물이 차 한의원에 다니던 동기들도 있었다.
 
대학 항공운항과들의 학과 소개를 보면 항공 승무원이 지녀야 할 경쟁력으로 ‘서비스 정신’, ‘지성과 용모 겸비’를 꼽는 걸 확인할 수 있다. 한 대학의 항공운항과는 “전문 교육원과 연계한 메이크업, 코디네이션 강좌를 통해 한층 더 세련되고 경쟁력 있는 인재 양성에 힘쓸 것”이라고 적어 그들이 생각하는 승무원의 경쟁력을 꽤나 솔직하게 밝혀두었다. 메이크업과 코디네이션이 항공승무원의 경쟁력이 된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승무원들은 승객들의 눈요기인 걸까. 이런 이야기는 승무원들에 대한 모욕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에 동의하지만, 항공사들이 직원의 외모를 서비스 범주에 포함시키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승무원 유니폼에 구두가 어울리겠냐, 운동화가 어울리겠냐?”
여성 승무원들은 왜 항상 구두를 신어야 하냐는 질문에 승무원인 친구가 웃으며 답했다. 항공사마다 규정은 다르지만 대부분의 국내 항공사 승무원들은 다리가 제일 예뻐 보이고 유니폼에 어울리는 7센티미터 하이힐을 신고 비행기에 오른다. 승무원들은 손과 다리에 흉터가 있으면 안 되며, 귓불에 붙는 진주귀걸이를 해야 한다.
 
지난 2013년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치마 유니폼 외에 바지를 선택해 착용할 수 있도록 하라’는 권고 조치를 받은 아시아나항공이 바지 유니폼을 구매한 여성승무원들에게 바지를 입지 말라고 권고했다는 일화는, 여승무원들의 다리 라인에 대한 항공사들의 집요한 고집을 대표적으로 보여준다. 국내 항공사들은 정녕 다리 라인을 강조하는 치마와 하이힐, 흉터 없이 곧게 뻗은 다리가 원활한 기내 서비스 제공에 일조한다고 믿는 것일까. 내가 모기 물린 자국이 숱한 오다리로도 땅콩 봉지를 잘 뜯는 걸 보면 이는 항공사의 착각임에 틀림없다.
 
박예람 바람저널리스트(www.baram.news)
손정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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