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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책임)한국 남녀 임금 격차 100 대 64…OECD서 압도적 1위
PwC ‘여성경제활동 지수 2017’ 보고서, 한국 여성 경제활동지수는 37.3으로 33개국 중 32위
입력 : 2017-03-13 오전 8:00:00
“우리가 행진하고 또 행진할 땐 남자들을 위해서도 싸우네. 왜냐하면 남자는 여성의 자식이고 우린 그들을 다시 돌보기 때문이지. 그런 우리가 마음과 몸이 모두 굶주리네. 그러니 우리에게 빵을 달라, 그리고 장미를 달라.”
 
1908년 2월 28일, 미국의 여성 섬유노동자 2만여명이 작업복을 벗고 거리로 나섰다. 역사상 처음으로 결성된 여성들의 대규모 시위대는 빵과 장미를 달라고 노래했다. 여기에서 빵은 생존권을, 장미는 참정권을 의미한다. 이를 계기로 1909년 2월 28일, 첫 번째 ‘여성의 날’이 선포됐다.
 
1910년 8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개최된 국제여성노동자회의에서 독일의 노동운동 지도자 클라라 제트킨과 알렉산드라 콜론타이는 전세계 규모의 여성의 날을 제안했다. 둘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이듬해인 1911년 3월 19일 오스트리아, 덴마크, 독일, 스위스 등에서 참정권, 일할 권리, 차별 철폐 등을 외치는 첫번째 ‘세계 여성의 날’ 행사가 개최됐다.
 
‘여성의 날’이 지금과 같은 3월 8일로 공식 결정된 것은 1975년이다. ‘세계 여성의 해’였던 1975년, UN은 매년 3월 8일을 ‘여성의 날’로 지정하기로 했다. 이때부터 ‘세계 여성의 날’은 전 세계 여성이 서로 연대하여 여성운동의 정신을 되살리고 아직도 남아 있는 정치적 불평등·임금 격차 등을 해소하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날로 정해졌다.
 
한국에서는 1920년 일제 강점기에 자유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 운동가들이 각각 ‘여성의 날’ 기념행사를 시작하면서 정착되었다. 해방 이후 사회 운동에 탄압적인 정책을 유지했던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집권 시절에는 공개적으로 진행되지 못하다가 1985년이 되어서야 3월 8일을 ‘세계 여성의 날’로 기념할 수 있었고, 제 1회 한국여성대회가 개최되었다. 이후 매년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전국여성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한국여성대회를 개최, 기념식과 여성축제, 거리행진, 여성문화제 등의 행사를 한다.
 
올해는 ‘세시스탑’ 행사가 펼쳐졌다. 정당과 시민사회 13개 단체로 꾸려진 ‘3.8 조기퇴근시위 3시 STOP 공동행동’은 3월 8일 오후 3시 광화문 광장에서 전국여성노동자대회를 개최했다. 한국의 남녀 임금격차는 100대 64에 달한다. 남자가 100만원을 벌 때 여자는 64만원을 버는 셈이다. 이를 노동시간으로 환산하면 여성은 매일 오후 세시부터는 무급으로 일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이 날 한국 여성들은 세시에 일을 그만두고 조퇴해 광화문 광장에 모여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했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명백한 차별의 증거, 성별임금격차를 해소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조기퇴근 공동행동이 주도하는 가운데 여성노동자들은 집회가 있었던 광화문 광장에서부터 보신각, 서울고용노동청, 청계로 방면으로 행진을 했다. 이어진 마무리 집회에서 이들은 성별 임금격차 해소, 일·돌봄·쉼의 균형, 여성에게 안전한 일터, 불안정 노동에 대한 사회 안전망 구축 등 여성 노동계 4대 의제를 제시했다. 조기퇴근 공동행동은 이를 중심으로 ‘대선의제 10만인 서명운동’에 참여할 것을 촉구했다.
 
남녀 임금격차 최대, OECD 평균의 2배 넘어
 
한국의 남녀 임금 격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지난달 21일 회계컨설팅 업체 PwC가 OECD 33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여성경제활동 지수 2017’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여성 경제활동지수는 37.3으로 33개국 중 32위에 머물렀다. 경제활동 지수는 남녀 임금 격차와 여성의 노동 참여율, 정규직 근로자 여성 비율 등 5가지 기준을 토대로 산출된다. 한국은 특히 남녀 임금 격차에서 36%로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이는 조사 대상국 평균 16%의 두배가 넘는 수치다. PwC는 현재 임금 격차 수준과 줄어드는 속도를 생각했을 때, 한국에서 임금 격차가 사라지려면 앞으로 300년이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남녀간 임금 격차는 여성의 경력단절을 주요 원인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여성이 이공계를 회피하기 때문에 고소득 직종에 취업하지 못한다’, ‘남성들이 위험한 업종에 종사하니 더 받는 게 당연하다’는 등의 반론이 있지만, 실상을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 2013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대 초반(20~24세)의 경우 남녀 임금 격차는 5만7468원, 20대 후반(25~29세)의 경우 16만597원이었다가 30대 후반부터 급격히 차이가 나기 시작해 50대에는 166만2037원까지 올라간다. 20대에 3%내외이던 임금 격차가 점차 증가해 40, 50대에선 여성이 남성 임금의 절반 정도밖에 받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남녀 임금 격차의 원인이 여성의 경력 단절에 있음을 잘 보여주는 수치다.
 
실제로 기혼 여성 둘 중 한 명은 경력단절을 경험한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6 경력단절 여성 등의 경제활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만 25~54세 기혼여성 4078명 중 경력단절을 경험한 이들은 1983명(48.6%)인 것으로 나타났다. 3년 전인 2013년 조사보다 경력단절 비중이 8.4%포인트 감소했지만 여전히 절반가량이 경력단절을 겪고 있었다.
 
한번 경력단절을 겪고 나면 다시 일자리를 얻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다, 일자리의 질도 이전보다 현저히 떨어진다. 경련단절 이후 재취업까지 걸리는 기간은 평균 8.4년이다. 경력단절 전후의 고용형태는 임시직 비중이 10.4%에서 24.5%로, 시간제 일자리 비중도 6.1%에서 28.9%로 높아졌다. 일자리가 불안정해지면서 경력단절 당시에 비해 재취업 시 임금은 평균 26만8000원 낮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가사부담은 대부분 여성의 몫
 
여성의 경제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맞벌이 부부가 늘고 있지만, 여전히 가사는 상당 부분 여성이 도맡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사는 여성이 할 일’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이 박혀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이 2014년 실시한 ‘성별·연령별·소득계층별 가사노동시간 조사’에 따르면 맞벌이 여성의 하루 평균 가사노동시간은 약 3시간 13분으로, 맞벌이 남성(약 43분)의 4.5배에 달했다. 미혼일 때는 남성의 가사노동 시간이 40분, 여성이 1시간 54분이던 게 결혼한 뒤에는 남성이 50분, 여성이 4시간 19분으로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여성 외벌이 통계를 눈여겨 볼만하다. 여성이 경제활동을 전담하는 경우에도 여성의 가사노동시간이 평균 2시간 39분으로 남편(평균 1시간 39분)보다 1시간 많았다. 이는 가사노동이 여성의 일이라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강하게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취업 유무와 관계없이 가사노동에 대한 부담이 여성에게 쏠리고 있는 셈이다.
 
여성 위주의 일·가정 양립제도가 근시안적이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출산휴가는 근로기준법에, 육아휴직은 남녀고용평등법에 근거하지만 정부는 이러한 제도를 통틀어 ‘모성보호제도’라고 부른다. 이는 ‘가사·육아는 여성의 몫’이라는 인식을 고착화하여 여성의 부담을 줄여주기는커녕 오히려 일·가정 양립을 어렵게 한다. 남성 참여를 이끌어내는 제도 개선을 마련하지 않으면 일하는 여성에게 가사노동의 이중부담을 떠안기는 정책이 될 수밖에 없다.
 
끊이지 않는 여성을 향한 폭력
 
여성들은 여성을 향한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 작년 5월 발생한 ‘강남역 살인사건’은 우리 사회가 여성을 향한 폭력에 새롭게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국내 여성 100명 중 21명은 신체적 성폭력을 경험했다. 여가부가 실시한 ‘2016 전국 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평생 한 번이라도 성추행이나 강간 등을 당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여성 비율이 21.3%였다. 같은 조사에서 남성은 1.2%만이 같은 피해를 당했다고 답했다.
 
성폭력에 관한 남녀 인식 차이도 큰 것으로 나타났다. ‘여자들이 조심하면 성폭력을 줄일 수 있다’는 문항에 여성 응답자의 42%가 동의한 반면 남성 응답자는 55.2%가 동의했다. ‘성폭력은 노출이 심한 옷차림 때문에 일어난다’는 문항에도 남성 응답자는 54.4%가 ‘그렇다’고 답했다. 여성 응답자의 동의율은 44.1%였다. 신상공개, 전자발찌 등으로 법적?제도적 차원에서 가해자 엄벌정책을 시행해왔던 것과 달리 사회적 인식은 더디게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남성들의 성폭력 범죄에 관한 인식은 상당히 왜곡돼 있었다. ‘어떤 여성들은 성폭행 당하는 것을 즐긴다’고 생각하는 남성도 8.7%나 됐다.
 
직장에서 당하는 성희롱도 심각한 수준이다. 한국여성민우회 일고민 상담실은 지난해 상담사례를 분석한 결과, 전체 391건 중 79%에 달하는 309건이 직장 내 성희롱 문제였다고 밝혔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에 따르면 피해자들은 성희롱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 ‘가해자에게 내려지는 처벌이 약하기 때문(79.1%)’이라고 응답했다. 다수의 회사가 성희롱을 공론화하지 않고 회사 내에서 무마시키려고 하는가 하면, 이를 고발한 피해자를 왕따시키거나 명예훼손으로 고발하는 등 오히려 불이익을 주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온라인에서의 ‘보이지 않는 폭력’도 문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15년 5월 14일부터 6월 24일까지 각종 인터넷 사이트와 방송을 모니터링한 결과 커뮤니티·카페 게시물 624개 중 성차별적 내용을 담은 게시물은 71개로 전체 게시글의 11.3%에 달했다. 또 웹 이용자가 포털 페이지에서 광고·영상기사·포토갤러리 등을 통해 성차별적 이미지를 볼 가능성은 27.6%였고, 기사를 공급한 출처 언론사의 페이지 720개 중 505개에 성차별적 영상이 포함돼 있었다.
 
‘세계 여성의 날’이 제정된 지 10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성 차별 해소에는 아직도 많은 과제가 남았다. 경제활동 참여율이 개선되었다고는 하나 외국과 비교하면 훨씬 낮은 수준인데다, 경력단절로 인해 비정규직·일용직 등 불안정한 일자리로 내몰리는 상황이다. 직업 유무와 관계 없이 가사부담은 여전히 ‘여성의 일’이며, 성폭력·가정폭력 등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는 끊이지 않고 발생한다. ‘여자라서’ 겪는 모든 종류의 부당함에서 벗어나기까지, 우리에겐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세계여성의 날 기념행사에서 정세균 국회의장과 강은희 여성가족부 장관 등 참석자들이 남성과 여성의 임금격차 해소를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조응형 KSRN기자
편집 KSRN집행위원회(www.ksrn.org)
손정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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