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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정국에 임하는 시민사회의 기본자세와 사회책임
입력 : 2017-03-13 오전 8:00:00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 파면되었다. 최순실씨의 사익추구를 지원하면서 기업재산권·경영권 침해 등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헌법과 국가공무원법과 공직자윤리법을 위반하였다고 헌재는 선고하였다.
 
박근혜씨는 대통령 연설문 표현을 일반국민이 이해할 수 있도록 최순실씨의 조언을 구한 것일 뿐 공무상 비밀누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청와대를 제집처럼 드나드는 40년 지기 대통령 친구가 일반인인지, 공직자 임명을 좌지우지하는 일반인도 있는지, 이 특별한 일반인이 박근혜씨 허락 없이 국정을 주무르고 재벌과 거래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 사람들 사이에 파다했다.
일찍이 플라톤은 “권력으로 하는 일을 보면 그 사람 성품을 알 수 있다” 말한 바 있다. 이렇듯 비선(秘線)조직으로 권력을 휘둘러 국가를 사유화하고 혼란을 야기한 책임 외에도, 세월호 침몰의 7시간 동안 생명권 보호를 위해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 기억도 해명도 못하는 지도자는 파면되어 마땅하다는 상식이 일반적이었고, 비록 헌재에서 이 부분까지 책임을 묻지 않았으나 파면을 피할 수 없었다. “모든 사람을 얼마 동안 속일 수는 있다. 또 몇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는 링컨의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 시민사회도 상존한다. 우리는 이 기회에 시민사회의 역할과 지향점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시민은 시(City)에 소속된 개인을 지칭함이 아니며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남용 되는 국민을 가리킴도 아니다. 통신수단의 발달로 인해 지역과 경계가 무의미한 시대에서 시민이란 국가에 얽매이지 않고 타인을 배려하면서 공생할 수 있는 광역질서의 창조자를 말한다.
 
이러한 시민들이 책임과 도덕의식을 갖추고 자발적, 주체적으로 참여하여 공익을 추구하면서 국가와 시장에 대한 감시를 지속하는 비정부 민간결사체가 시민사회이다. 사회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국가의 강력한 통제와 집행이 중요하다는 국가만능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크다. 국가의 간섭을 최소화하면서 개개인의 자유로운 경쟁이 가능한 시장 기능이 중요하다는 시장만능주의는 개인간 우열의 격차를 치유할 장치가 없다. 이러한 절대권력과 절대자본이 지나치게 가까워지면 부패는 필연이기에 이들 모두를 견제하면서 환경,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법률 등 각 분야에서 해법을 모색하고 대안을 제시할 역할이 시민사회에게 있는 것이다.
 
따라서 박근혜씨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던 상당수의 시민이 부패한 정경유착을 용납하지 않고 탄핵인용을 주장한 것은 매우 성숙한 시민사회의 모범을 보인 것이다. 반면 탄핵기각 시민사회는 관성적인 박정희시대 향수와 반공의식, 박정희 여식에 대한 동정에 사로잡혀 권력과 자본의 적폐를 지적함에 있어 능동적이지 못했고 일부는 관변단체의 역할을 자임하여 시민사회로서의 역할이 미흡했음은 사실이다.
 
탄핵은 이미 결정되었고 되돌릴 수 없으며 대선정국으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다. 30년 전 1987년 6월 민주항쟁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으로 마무리되었지만 민주시민의 역량이 김대중, 김영삼에 의해 반감되면서 본뜻이 퇴색되었다. 시민사회는 이러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자신들의 피땀과 노고를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에 대한 반복된 숙제에 직면했다.
 
몇 가지 노력이 필요하다. 먼저, 국가만능주의와 시장만능주의를 견제해야 하는 시민사회 공동의 목표가 최우선이다. 탄핵인용을 주장했건 탄핵기각을 주장했건 어떤 시민사회도 부패한 권력과 자본이 결탁되어 시민사회 전체의 이익이 훼손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탄핵을 앞두고 시민사회 간에 존재한 차이가 대선정국에서 차별로 악화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자칫 정치적 호불호에 의해서 시민사회의 본질과 기반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탄핵인용을 주장하며 촛불을 든 시민사회 모두가 친야(親野)는 아닌 것처럼 탄핵기각을 주장한 시민사회 또한 모두 친여(親與)는 아니며, 출마예정자에 대한 호불호도 다른 게 현실이므로 감정적 대립은 절대 자제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조 하에 대선에 임해야 한다. 국가만능주의와 시장만능주의를 견제해야 하는 시민사회 공동의 목표에 최대한 협력할 지도자가 누구인지, 정당 시스템은 어떠한지 살펴야 한다.
 
혹자는 정치에 대한 염증을 호소하며 선택을 거부하기도 하지만, 앞서 인용한 플라톤의 말을 다시 빌리면 “정치에 참여하기를 거부함으로써 받는 벌 중의 하나는 자신보다 못한 사람의 지배를 받기에” 선택을 포기해서는 안 될 일이다. 이것이 대선정국을 맞는 시민사회의 기본자세이며 사회책임이다.
 
송상훈 (사)푸른아시아 지속가능발전정책실 전문위원
손정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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