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 이래 처음으로 대통령이 파면되었다.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실세 1인에 의해서 국정시스템이 아무렇지 않게 무시되고, 재벌과 권력의 유착은 여전이 한국사회에서 강고하다는 것을 사실에 많은 국민은 좌절했다. 이런 박근혜 정권에서의 각종 부정, 탈법, 비리, 차별 및 편가르기 등이 드러나면서 받았던 국민들의 충격과 허탈함은 광화문에서 ‘이게 나라냐?’는 다섯 글자의 외침에 모든 것이 응축되어 있다.
필자가 이번 게이트에서 주목한 것은 청와대, 전경련 그리고 각 대기업들의 비리 게이트 경로이다. 청와대 경제수석은 전경련 부회장에게 재단을 설립하라는 압력을 넣었고, 전경련 부회장은 소요예산 실무를 전경련의 CSR 주무부서인 사회공헌팀에게 할당하였다. 다시 전경련의 해당 팀은 각 대기업의 CSR 주무팀에다 연락을 취하면서 대통령이 책정한 (사실은 최순실이 책정한) 금액을 얼마씩 내라고 연락을 취했다. 검찰 진술에 따르면 해당기업들은 재단의 구체적인 사업 목적, 운영 계획에 대한 자료로 고작 이메일로 한 장짜리 공문만 받았다. 그런데도 적게는 수억 원 많게는 수십억 원을 출연한 것이다. 각종 사고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과의 합의과정에서는 그리 오랜 기간 동안 피해 보상액을 두고 유족 측과 지리한 다툼을 벌이는 대기업 들이 말이다.
기업들마다 차이는 있지만, 각 기업들의 CSR조직은 단순히 계열사의 자금을 취합하여 전경련에 전달하는 역할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재단 자금 지원을 요청받을 당시 대부분의 기업은 모두 여러 경영상의 현안을 갖고 있다. 총수가 구속되거나 뇌물공여 건으로 재판을 앞둔 곳도 있었고, 또한 대부분 정부로부터 여러 사업의 인허가 건을 앞두고 있었다. 각 사정기관으로부터 조사를 받고 있거나 앞둔 곳도 많았다. 그리하여 재단에 출연금을 내는 과정을 활용하여, 어떤 기업의 CSR담당 임원은 자신들의 현안을 정리하여 청와대 비서관에 전달하고, 자신들의 민원해결 장이 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였다. 그리하여, 자신들의 총수와 대통령의 단독 면담이 이루어졌고, 단독면담을 가진 뒤의 이 기업은 이전에는 탈락했던 면세점의 추가선정에 포함되기도 하였다.
CSR을 포함한 기업의 모든 산하 위원회를 포괄하는 다른 기업 조직의 임원은 자신들의 총수 특별사면을 하루 전에 미리 전달받고 청와대 경제수석에게 ‘하늘같은 이 은혜를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문자를 보낸 것으로 검찰조사결과 드러났다. 결론적으로 보면 이번 게이트에서 드러났듯이, 각 기업의 CSR팀은 정경유착의 자금조달 경로로 사용됨과 동시에, 몇 기업의 CSR조직은 자신들의 이해를 관철시키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부정청탁의 특공대로서의 역할을 한 것이다.
왜 CSR 부서가 이런 기능을 하게 되었을까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필자는 우선 CSR에 대한 조직 내 인식과 활용방안을 꼽는다. 전경련의 조직도를 보더라도 사회공헌위원회는 있어도 CSR 혹은 지속가능위원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여전히 CSR과 사회공헌을 동일시 여기고, CSR을 기업경영의 필수적인 전략으로 보기보다는 하나의 프로그램으로만 인식하는 경향이 경영계 전반에서 팽배함을 알 수 있다. 이런 경향은 개별 기업에서도 발견된다. 이번 사태에서 확인되었듯이 사회공헌팀 혹은 홍보팀 (혹은 커뮤니케이션팀)이 조직내 CSR을 대표하는 곳이 아직도 많다. 그러다보니 CSR담당부서의 주요업무는 사회공헌, 대관업무, 홍보 등이다. 그래서 필요인력을 충원할때도 언론사 출신,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을 선호하고 있다고 헤드헌팅 전문가들을 말하고 있다.
근래 대부분의 한국 대기업들은 CSR보고서를 발간하고 있고, 자신들의 홈페이지 및 각종 SNS를 통해 자신들의 CSR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그런데 뒤로는 정경유착의 특공대로 혹은 대관업무의 기능으로 여기고 있는 이 현실을 어떻게 일반 국민들은 바라보고 있을까? 국민들을 대신해서 필자는 기업들에게 묻고 싶다. ‘이게 CSR이냐?’
박주원 CSR서울이니셔티브 운영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