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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책임)정책, 정치, 그리고 관료
입력 : 2017-08-07 오전 8:00:00
빨강, 노랑, 파랑 삼원색을 합하면 무슨 색이 나올까?(엄밀하게는 빛의 삼원색은 빨강, 초록 파랑이고, 색의 삼원색은 청록, 자홍, 노랑이다) 초등학교 시절 미술시간에 배웠던 삼원색은 강렬했고, 놀라웠다. 삼원색 빛을 합치면 백색이 되고, 삼원색 물감을 합치면 검은색이 된다고 했다. 호기심과 의심의 눈으로 바라본 실험의 결과도 그랬다. 신기했다. 그 강렬한 색들의 조합이 무미건조한 흰색과 검정이라니…. 그것도 빛은 흰색, 물감은 검정이라니…. 그렇게 배우고 시험보고 40여년이 지나 다시 삼원색을 떠올린다.
 
촛불의 강렬한 불꽃을 이어받은 빨강의 정치시대가 영원할 듯하더니, 국정위를 정점으로 어느 한 순간 노랑의 관료세상으로 바뀌었다. 이상을 꿈꾸는 파랑 정책은 빨강과 노랑의 언저리에서 잠시 머물다 어디론가 환영인 듯 사라졌다. 빨간 횃불이 파란 하늘로 날아올라 온 세상이 빨강과 파랑 천지인 듯 공약이 난무하다가 어둠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빨강과 파랑과 노랑이 만나 이내 백색인 듯 검정색인 듯 알 수 없는 것이 되었다. 무채색이다. 촛불 이후 짧고 강렬한 정책과 정치의 시기가 스쳐간 후 지루하고 답답한(혹자는 안정적이라고 느끼는) 관료의 시기로 되돌아 왔다.
 
대한민국과 인류를 구할 수 있을 듯 모든 희망과 상상력을 동원하며 즐겁게 밤새우던 정책그룹에게 어느 노련한 분이 한 말씀 툭 던졌다. “정치가 우선한다. 정책은 액세서리야. 결국 표되는 것만 공약이 돼. 너무 힘 빼지 마!” 그럼 정치는 무엇을 하는 걸까? 사람 사는 세상, 좀 더 나은 세상을 꿈꾸고 실현하기 위해 고민하는 것보다, 온갖 애드벌룬을 띄우고 무릎 꿇고 읍소해서라도 표를 모으는 것이 먼저인 걸 이해는 하겠는데…. 표를 구한 후에 정치는 무엇을 하는 걸까? 무엇을 준비하고 있었을까? 무엇을 지향하고 있었을까? 정치가는 무엇 하는 사람일까? 궁금증과 정치혐오증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일장춘몽 같은 선거와 공약의 짧은 시기가 지나고, 책임을 져야 하는 시기가 되었을 때, 정치는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알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관료가 있었다. ‘영혼 없는 존재’라고 자조하며 스스로를 낮추던 관료집단은 아주 공손하고 단호한 전문가 집단으로서 정치의 부족함을 여지없이 메우고 들어왔다. 전투에서 승리하고 환호하는 정치집단에게 패퇴하는 모습을 보이는 듯 하던 관료집단이 국정과제를 완성시키고 전쟁의 최종 승자가 된다. “결국 관료가 이깁니다. 많은 기대를 하지마세요”라고 말하던 어떤 이의 지나가는 말이 새삼 진심어린 충고였음을 깨닫는다.
 
그렇게 불안과 초조, 기대와 환호가 함께 했던 짧은 시기가 100대 국정과제와 함께 막을 내렸다. 이제 2막이 시작된다. 짧은 기간 꿈꾸며 행복했던 사람으로서 다시 희망을 품고 소망한다. 꿈꾸는 파랑의 정책집단, 치열한 승부사 빨강의 정치집단, 현실을 직시하고 인내하는 노랑의 관료집단이 공동책임으로 사회경제 제영역의 이해집단과 함께 대한민국호를 순항시켜야 한다. 파랑은 현실에 발 딛고 노랑과 섞여 초록을 만들고, 빨강은 열심히 공부하며 파랑과 섞여 자주색을 만들고, 노랑은 영혼을 되찾아 빨강과 논쟁하며 주황색을 만들어야 한다. 그 다양한 색 사이사이에 모든 사람과 기업이 제자리를 찾게 해야 한다. 국민 모두의 자리를 다툼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실현가능성 위에 미래를 디자인하는 자, 욕망을 넘어 올바른 세상을 웅변하는 자, 공공의 이익을 위해 헌신하는 자. 지난 대통령 선거를 겪으면서 학자, 정치인, 관료에 대한 야무진 기대다. 각자 선명한 자기의 색깔을 당당하게 드러내며 본연의 사회적 책임에 충실하고, 다른 색깔과 과감하게 섞이며 또 다른 색을 만들어 다양성을 포용하는 학자! 정치인! 관료! 꿈일까?
 
박영범 지역농업네트워크협동조합 이사장
손정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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